[놀먹자 치앙마이:로건 3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 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놀고 먹고 잡니다. 셋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한 달을 기록합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 송강호의 대사다. 나는 계획을 좋아한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계획 잡고 계획 실행하는데 쓴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 시뮬레이션하는 순간이 행복하다. 다양한 상상을 하며 A안과 B안을 고민한다. 때로는 Z안까지도 고민한다.
휴대폰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앱은 캘린더다. 일단위 계획, 주 단위 계획부터, 연간 계획과 인생 계획까지 캘린더 앱에 빽빽이 적어놓는다. 내 삶의 일대기는 모두 캘린더 앱에 아카이빙 되고 있다.
약속 있으면 지하철 앱을 활용해 몇 시 몇 분에 어떤 게이트에서 타야 환승이 편한지 적어 놓는다. 자동차 보험 주행거리 특약 혜택을 받기 위해 매달 예상 주행거리를 적어 놓는다. 2020년대에는 이직할 수도 있으니 옮길 회사를 알아보는 일정도 적어 놓았다.
모로는 나와 정반대다. 즉흥적인 걸 좋아한다. 계획대로 움직이는 걸 어려워하고 답답해한다. 세상 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 계획 세우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할 때보다 여행할 때 이런 양극단의 성향이 극명히 대비된다. 연애 초기에는 모로가 나에게 맞춰줬던 것 같다. 내가 계획을 빡빡하게 짜면 무계획인 모로가 따르곤 했다. 모로는 그때를 회상하며 힘들었다고 한다.
제이가 태어난 이후 무계획 성향의 모로 쪽으로 기울었다. 영유아와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 어디서 돌발 변수가 나올지 모른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제이와 함께하는 계획은 ‘하루 종일 호텔 스테이’와 같이 변수에 대응하기 적절한 환경 설정에 집중했다.
치앙마이에서도 계획을 구체적으로 잡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살아야 하기에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적응하는 기간에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보다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주말에만 열리는 ‘러스틱 마켓’ 다녀왔다. 8시부터 12시까지만 반짝 열리는 마켓이다. 아침 일찍 움직였더니 카페인이 당겼다. 드립 커피를 주문했는데, 세월아 네월아 커피 만드는데 한참 걸렸다. 원두의 무게를 재고, 조심스럽게 갈더니, 물의 온도를 맞추는데만 한참 걸렸다.
좀 빨리 해달라고 요청하려 했지만 카페 이름 보고 말을 멈췄다. 'Slow Bar'. 20분이나 기다려 받은 커피(50바트, 2000원) 맛은 제법 괜찮았다. 오랜 시간 공 들인 커피인데 맛없으면 이상하다.
커피를 마시고 마켓을 쓱 둘러본 후, 나는 제이와 중앙에 마련된 작은 공연장에 앉아 쉬었다. 러스틱 마켓은 예쁜 옷이나 소품을 주로 파는 곳이다. 모로는 “다른 마켓과 달리 엣지 있고 느낌 있는 물건들이 많아 매주 와야겠다”라고 했지만, 내가 흥미를 가질 만한 것들은 많지 않았다.
모로에게 1시간 정도 혼자 쇼핑할 시간을 주었다. 나는 제이와 공연을 보고, 30바트(1200원) 주고 산 무지개 링을 가지고 놀았다.
모로는 ‘어디서도 팔지 않는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들’ 사 왔다. 만족한 모로는 나에게 오후 단독 자유 시간을 허락했다. 내가 좋아하는 분단위 여행이 가능하게 됐다.
1시간 간격으로 계획을 짰다. 13시 치앙마이의 대형 백화점 마야몰 방문, 15시 라테 세계 챔피언이 운영하는 ‘리스트레토’ 카페 방문, 16시 한국인 평이 좋은 ‘푸파야 마사지’ 두 시간 동안 아로마 오일 마사지, 18시 카우쏘이(태국 북부 음식, 카레면) 먹을 수 있는 ‘카우쏘이 님만’ 식당 방문, 19시 치앙마이에서 최고의 연주를 한다는 재즈바 ‘노스게이트’ 방문, 빽빽한 계획을 짜니 마음이 포근해졌다.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마야몰을 둘러보고 지하 푸트코드에서 50바트(2000원) 짜리 팟타이를 사 먹었다. 양은 적지만 배가 다 채워지지 않아 좋았다. 다른 걸 더 먹을 수 있으니까.
세계 라테 아트 대회에서 대상을 수차례 탔다는 리스트레토 카페에서 라테를 먹었다. 유명한 곳이라 사람이 많았다. 100바트(4000원)로 다른 카페의 2배 가격이다. 치앙마이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커피가 4000원이면 비싸게 느껴진다. 회사 1층에 있는 카페의 라테 맛과 비슷했다.
식당은 한국인 리뷰 많은 곳을 피하지만, 마사지는 다르다. 한국인들은 미용 서비스에 민감하다. 구글 맵에서 한국인 리뷰가 많은 곳을 골랐다. 결과는 대 성공. 마사지받는 2시간 동안 온몸이 해제됐고 조립됐다. 600바트(24000원)다.
카우쏘이는 내가 워낙 카레를 좋아해서 맛있게 먹었다. 99바트(4000원)이었고 역시나 양은 적었다. 마지막 하이하이트 ‘노스게이트 재즈바’를 위해 배를 비워두었다.
사실 이번 계획의 하이라이트는 재즈바다. 재즈바로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오후 7시에 오픈한다는 구글 맵의 정보를 보고 19시부터 역산해서 다른 계획을 짰다.
50바트(2000원)에 그랩 바이크(오토바이 뒤에 타고 이동하는 서비스) 타고 정확히 19시에 노스게이트에 도착했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재즈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람이 많아 거리에 서서 공연 본다는 후기가 무색하게, 아무도 없었다. 기타를 튜닝하는 기타리스트와 서빙하는 직원 1~2명만 있었다.
물어보니 바를 여는 시간은 19시지만, 공연은 21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맥주 마시며 기다리라고 한다. 건강을 위해 술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 2시간이나 혼술하며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1시간 공연 보고 20시에 귀가하려 했는데, 계획이 틀어지자 혼돈에 빠졌다. 모로에게 톡을 보냈다. “집이 최고야, 그냥 들어와”라는 답이 왔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았던 제이는 20시도 되지 않아 잠들었다. 멜론으로 재즈를 들으며, 모로와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때론 계획하지 않은 일도 참 좋다.
로건의 픽
마야몰 푸드코트 팟타이 (50바트 / 2000원)
태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른 기름을 쓰는 걸까? 볶은 요리 만의 뚜렷한 매력이 있다. 맛은 상당히 좋지만 건강엔 매우 안좋을 것 같은 그런 맛이다. 로컬 음식점이 아닌, 백화점에서도 특유의 ‘싼 기름’ 맛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태국 음식점에서는 경험 하기 힘든 맛이다. 어쨌든 내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