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건 Dec 08. 2019

물 안에선 누구나 평등하니까

[놀먹자 치앙마이:로건 4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 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놀고 먹고 잡니다. 셋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한 달을 기록합니다.


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제이도 물놀이를 좋아한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숙소 기준은 수영장이 1순위였다.


제이는 아직 피부가 예민하고 면역이 약한 7살이다. 수질 관리가 잘 되면 좋겠다. 사람이 많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 한국 사람이 적으면 좋겠다. 치앙마이도 겨울인지라 추울 수 있다. 햇빛이 잘 들면 좋겠다.


한 달 살기 숙소인 니바스 치앙마이 아파트먼트는 이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곳이었다. 물이 정말 깨끗하다. 소독약 냄새도 안 나고 매일 아침마다 수질 관리를 한다. 제이는 나흘간 매일 놀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캐리XX 베이에 가서 구내염 걸린 적이 있다)


사람이 많이 없다. 제일 많았던 적이 우리 가족까지 5명 정도다. 풀빌라처럼 편하게 놀았다. 나무가 많아서 숲에 있는 것 같다. 새소리가 들려 좋다. 다람쥐와 청설모도 보았다.


테이블이 있어서 간단한 작업이 가능하다. 제이가 물에서 노는 동안 노트북으로 잠깐 일을 보거나 글을 쓸 수 있다. 수영하고 태닝 하면서 간간이 일도 하는 '디지털 노매드'도 몇몇 보았다.


수영장과 아파트먼트의 직원분들이 정말 친절하다. 볼 때마다 "사와디카(캅)" 인사해준다. 고급 리조트에 와있는 듯하다.

수영장에서 코딩하는 '디지털 노매드'


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이유는 세 가지다.


1) 어릴 적 운동을 참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구기 종목을 많이 했다.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딱히 놀거리가 많지 않아서 대부분 아웃도어 스포츠를 하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야구, 축구, 농구 다 못했다. 야구할 때는 9번 타자 좌익수(그렇게 멀리까지 공이 잘 안 온다), 축구할 때는 사이드 수비수(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 이런 거 없다)를 도맡았다. 그나마 키는 커서 농구할 땐 가운데 서있으면 되는 센터를 종종 맡았다.


운동 못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수영을 권하셨다. 수영은 신세계였다.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3개월 만에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모두 마스터했다.


속도가 빨라 앞사람 다리에 자꾸 부딪히자 선생님은 월반을 시켜줬다. 6개월 만에 상급반 라인을 탈 수 있었다. 수영하면서, 나는 운동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니라 구기 종목에 소질이 없다는 걸 알았다. 기록 종목에 취미를 갖게 됐다. 성인이 돼서는 걷기와 자전거 타기도 한다. 지구력과 근지구력이 좋아 곧 잘한다.


제이는 치앙마이 오기 두 달 전 어린이집을 그만두었다. 일곱 살이라 몇 달만 있으면 졸업이지만 매일 아침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를 마냥 보낼 수만은 없었다.


어린이집은 놀이 중심이라 제이가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서 수학 과외를 시키고 코딩 놀이를 했더니 제이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듯 제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영을 잘한다

2) 1년 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허리 통증이 생겼다. 앉아 있을 땐 괜찮은데, 걷고 난 후 5분 정도 지나면, 다리가 저리면서 통증이 온다. 잠시 쉬면 괜찮아지다가 걸으면 또 아프다. 걷는 걸 좋아해서 하루 1만 보 이상씩 걷는 나에게 이 통증은 꽤나 불편하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


정형외과에서 도수치료를 30번 넘게 받았다. 디스크는 아니라는데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통증도 사라지지 않았다. 만성 통증이 됐다. 계속 함께 가야 할 '반려 질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에 들어가면 고통이 사라진다. 우주를 유영하듯 뛰어다닌다. 마음껏 걷는 소중함을 느낀다. 물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됐다.



3) 물 안에서는 제이와 재밌게 놀 수 있다. 평소에 제이와 함께 놀 때는 '멀티 페르소나'가 필요하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나와야 한다. 진정한 나라면, 제이와 같이 오목을 두거나 팔씨름을 할 때 어이없이 져주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수영장에서 우리는 똑같은 처지가 된다. 함께 물에 둥둥 떠있을 땐, 제이도 나도 행복하다. 공 하나를 잡기 위해 달려가는 속도도 비슷하다. 잠수 대결할 때 내가 굳이 져주지 않아도 된다. 물 안에서 우리는 평등하다.


제이가 좀 더 크면, 나보다 힘이 세지고 빨라질 것이다. 나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다. 그리고 제이도 '멀티 페스소나' 필요할 것이다. 나를 위해 져주는 일이 많을 것이다. 내가 우리 부모님께 그랬듯이.


서로 평등하게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의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로건의 픽

망고 5개 (50바트 / 2000원)


수영장으로 찬양한 숙소, 니바스 아파트먼트는 현지인 마을에 있어 더 좋다. 매주 월요일 오후에 '먼데이 파머스 마켓'이 열린다. 숙소에서 2분 거리다. 현지인이 찾는 시장이라 바가지 없고, 흥정과 호객도 없다. 두 손 무섭게 일주일치 장을 봤는데, 485바트, 2만 원도 쓰지 않았다. 망고가 1kg에 35바트, 5개 사니 50바트다. 1개에 400원 꼴이다. 한국의 10분의 1, 혹은 20분의 1 가격이다. 원없이 먹는다.



이전 03화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