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건 Dec 11. 2019

취향마이 치앙마이

[놀먹자 치앙마이:로건 6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 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놀고 먹고 잡니다. 셋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한 달을 기록합니다.


나는 디지털 최적화 인간이다. 종이에 글 쓰는 걸 잘 못한다. 모로는 아날로그 최적화 인간이다. 공책 들고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적는다.


나는 매일 하루 한 편씩 랩탑으로 쓰고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업로드해둔다. 내가 다섯 편 쓰는 동안 모로는 하나도 업로드 안 했다. "언제 올릴 거냐" 핀잔주었다. 그러자 모로는 1시간 만에 다섯 편의 글을 브런치에 업로드했다. 공책에 쓴 글을 옮겨 적으니 순식간이다. 금세 글을 써내는 모로가 약간 존경스러웠다.


아침부터 모로와 제이는 다투었다. 제이가 모로의 공책을 집어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매일 치앙마이 여행기를 쓰고 있는 소중한 공책을 집어던졌으니 모로의 심기가 불편했다.


모로는 사과를 요구했다. 제이가 "엄마 미안해요" 사과만 하면 끝날 일인데, 고집을 부렸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며 사과를 거부했다. 모로는 꾸짖었다. 사과하지 않으면 오늘 제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치 상태가 20~30분 이어지더니, 결국은 제이가 "화해해요"라며 사과했다. 물론 둘이 진짜 다툰 것이 아니다. 모로의 훈육 과정이다. 나 같았으면 굳이 사과받을 필요 없으니 넘어갔을 텐데, 모로는 단호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모로가 매우 존경스러웠다.


(자세한 내용은 제이 3편에)


다툼과 대치, 사과가 이어지자 제이의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아침에 그렇게 나가기 싫어하던 제이가 순순히 나간다고 했다. 우리 셋은 치앙마이에 와서 처음으로 여행자처럼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삼자 협의가 잘 됐다. 각자 취향에 따라 세 곳을 차례로 방문하기로 했다. 모로의 취향 반캉왓 예술인 마을, 나의 취향 No.39 카페, 제이의 취향 치앙마이 동물원.


반캉왓 예술인 마을에 도착했다. 옛날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과일 샐러드를 먹었다. 골목골목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서 사진 찍기 좋았다. 모로가 느낌 있는 숍을 구경하는 동안 제이와 나는 사진 찍으며 돌아다녔다. 마을 가운데 노천극장 같은 잔디밭이 있다. 몇 바퀴씩 돌면서 서로 교차할 때마다 '하이파이브' 하며 놀았다.


모로는 "느낌은 있지만 딱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모호한 이야기를 하더니 하나도 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다 느낌 있어 보이던데 느낌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가 보다. 그러더니 "나중에 다시 와서 또 봐야겠다"라고 했다. 한 달 살기니 가능한 여유다.


걸어서 10분 거리, 나의 취향 No.39 카페에 갔다. 30대 후반이 되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부터 나는 누울 자리만 있으면 눕고 싶어 진다. 30대 초반까지는 '여행은 경험'이란 생각에 갖가지 액티비티를 다 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경치 좋은 곳 보면서 맛있는 거 먹는게 제일 좋다.


치앙마이를 태깅한 인스타그램 콘텐츠 보면 꼭 등장하는 곳이 No.39 카페다. 숲 속 호수를 끼고 있는 카페인데 누울 수 있는 평상이 보였다. 거기에 꼭 누워보고 싶었다. 평상은 두 개뿐인데, 다행히 한 자리 남아있었다. 나와 제이는 재빠르게 자리를 맡았고, 모로는 커피를 주문하러 다녀왔다. 이럴 땐 호흡이 잘 맞는 편이다.


민트색 호수를 바라보며 누워있으니 눈이 정화됐다. 마음도 싹 비워지는 느낌이다. 치앙마이 오기 전, 마흔을 앞두고 향후 진로 문제(?)로 깊은 고민이 있었다. 마침 이 카페에 있던 시간에,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마지막 메일이 왔다. 홀가분했다.



평상 옆에는 2층짜리 오두막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난간에 걸터앉아서 사진 찍곤 했다. 사진 찍어주는 사람은 호수 건너편까지 부지런히 달려가서 찍어야 한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닌데 '인생샷'을 위해 상부상조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계속 누워있고 싶었는데, 1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니 제이가 지루해했다. "언제 주(zoo)에 가요?" 하며 계속 치근댔다. 나는 3시간이고 4시간이고 누워있을 수 있는 아재인데, 일찍 일어나려니 아쉬웠다.


커피 2잔, 아이스티 1잔, 햄버거 2개, 감자튀김 2개, 730바트(약 3만 원) 자리값은 충분히 냈다. 한국 돌아가기 전에 또 와야지 다짐했다. 다음엔 오두막 2층에서 인생샷 찍어야지.



마지막 코스는 치앙마이 동물원이다. 제이는 신이 났다. (비록 자고 있었지만) 판다 보고, 코알라 보고, 하얀 사자 보고, 펭귄 보고, 사슴에게 먹이 줬다. 제이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동물원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하나 있었다. 판다 두 마리가 있다고 알고 왔는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판다 죽었나? 왜 없지?"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판다 한 마리가 최근에 죽었다고 한다. R.I.P 추모의 글을 남기는 게시판이 있었다. 뭔가 슬펐다.



아침에 위기가 있었지만 전화위복이 됐고, 우리 셋은 각자 취향에 맞게 알찬 하루를 보냈다. 각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치앙마이는 '취향마이’다.



로건의 픽

반캉왓 추로스 (40바트 / 1600원)


추로스는 원래 맛있는 음식이다. 스페인 갔을 때 '추로스가 이렇게 맛있었나' 깜짝 놀랐다. 갓 만들 걸 먹어보면 추로스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반캉왓에서도 주문 즉시 만들어주는 따끈한 추로스를 맛볼 수 있다. 그동안 놀이공원에서 차갑게 말라비틀어진 양산품만 먹어서 선입견 생겼다. 추로스에게 사과하자.












이전 05화 여행이 일상이 되는 공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