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의 대단한 위세

by tripall

2008년에 친구와 캄보디아 여행을 하기로 했다. 1년간의 미대륙 여행 후 5년 만에 하는 해외여행이었다. 그동안 자유로운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오랜 공백기간의 감을 되살리는 시간도 필요했고 앙코르와트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여행사 패키지로 4박 5일, 이어서 우리끼리 9일간 더 다니기로 했다.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긴 한데 시작하기가 겁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패키지를 한 후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행 전 준비해야 할 여러 가지 중 일부를 여행사에서 해줄 것이고, 싼 패키지 상품은 왕복 항공권 가격보다 더 저렴한 경우도 있다. 패키지 일정에 참여하는 동안 어느 정도 현지 적응이 되어 낯선 곳에서 느낄 두려움도 줄어들 것이다.

나도 패키지 상품으로 해외에 다녀온 적이 있긴 하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아니었다. 따라만 다니니까 어느 땐 어디에 갔다 왔는지 모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시간에 쫓기듯 다니는 게 싫었다. 여행이란 관광지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내는 과정이 있어야 더 재미있다. 모두 짜놓은 일정이 편할 것 같으나 편하기만 하지 않았던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패키지여행에서는 무엇보다도 가이드가 만족도를 좌우한다. 열네 명 정도인 우리 일행의 가이드는 30대 정도 되는 남자였다. 이 사람의 성품을 처음 드러낸 건 뒷좌석에 앉은 대학생 두 명에게 한 말이었다.

“내가 니 발 보고 얘기하라는 거냐?”

아마도 미니버스 뒤 가운데에서 다리를 꼬고 앉았나 보다. 여행 와서 다리도 마음대로 꼬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자신보다 어려도 그렇게 예의 없이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가이드는 서비스 제공자 역할을 해야 하는 건데. 정 불만이면 그들에게 가서 살짝 말해도 될 것을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말할 때 모두 지나치다고 생각했겠지만 별 얘기 없이 넘어갔다. 그 학생들조차도. 여행 초기부터 기분 나쁘게 하면 여행 내내 분위기가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던 것 같다. 그때 우리가 불만을 말했다면 그 이후 가이드의 행동이 달라졌을까?

가이드의 기본 업무인 설명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앙코르와트에서 우리 일행이 모인 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맘대로 설명을 시작해 놓고선 나중에 온 사람들이 하는 질문에 짜증을 냈다. 조그만 목소리로 설명해서 가까이 가서 귀 기울여야 알아들을 정도였다. 사원 벽의 다양한 부조에서도 설명할 거리가 많은 곳인데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른 여행사의 한국인 가이드가 설명하는 걸 듣는 게 나았다. 그런 식으로 대충 해서 일정을 일찍 끝내고 나면 옵션 관광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다니는 곳도 대부분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이었다. 5일간 식사가 숙소에서 먹는 아침을 빼면 거의 한식이었다. 같은 한국식당을 두 번 가기도 했다. 현지식이라 한 것도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샤부샤부 요리였다. 라텍스며 보석점으로 쇼핑하러 다닐 때는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상점에서 시간을 더 보내도록 했고 점심식사 후 추가주문이 있어 다시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환전할 곳 좀 알려 달라고 한 것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아 그 상점 주변에서 내가 찾아서 환전했다.

숙소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고 하고 뚝뚝이 타는 것도 위험하다며 엄포를 놓아 일정 이외의 시간에도 개인행동을 못 하도록 했다. 유적지 안에서도 보고 싶은 곳을 가려고 하면 위험하다며 가지 못하게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곳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가이드로서 가장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은 일몰이 보기 좋다는 프놈바켕에 갔을 때이다. 가이드는 이곳이 가기 위험하다고 말하며 우리를 가지 않는 쪽으로 유도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고 싶어 하자 씨엠립 마지막 날에 가게 했다. 그 전날은 날씨가 좋았는데 옵션으로 마사지를 받도록 했고, 그날은 오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몰을 보는 곳이라면 날씨 좋은 날에 가고 마사지는 아무 날이나 상관없는 건데 그런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마사지 옵션이 있는 전날에 발마사지를 받아서 그다음 날 굳이 마사지를 또 받을 필요도 없었다. 프놈바켕이 위험하다고 계속 말해왔고 비까지 오는데 가이드는 우리와 같이 가지 않았다. 일행 중에 나이 든 분이 있었고, 올라가는 계단이 폭이 좁아 걷기에 편치 않았는데 안전을 고려한 조치나 안내가 없었다. 어떤 상황이든 일정을 같이 하며 안내하는 게 가이드의 업무이고, 더군다나 위험하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내가 더 필요한데, 자기는 가지 말라고 했으니 책임도 없다는 식이다.

그날 밤 패키지 일행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그동안 쌓인 가이드에 대한 불만이 터졌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여행을 망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귀국해서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일정 마지막 날 프놈펜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친구와 나는 일행과 헤어졌다. 우리는 바다가 있는 남쪽으로 여행을 계속해서 다른 일행들이 귀국한 후 무엇을 했고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몰랐다. 단지 중간에 주민등록번호를 보내달란 문자를 받았고 알려준 것 말곤 한 게 없다. 계좌번호는 그때 알려주었는지 후에 알려주었는지 기억나지 않은데 어쨌든 나중에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아마도 가이드비와 물 비용으로 걷은 돈이었던 거 같다. 우리는 아무 일도 안 하고 돈을 받아서 그 일로 애쓴 분들에게 미안했다. 그 돈을 받았어도 개운한 감은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테니까. 우리에게는 재미없는 여행이 되었고 가이드에게는 재수 없는 일이 된 것 같다. 이 일이 교훈이 되어 그다음 관광객에겐 가이드답게 행동했을까?

배낭여행할 때는 짠돌이처럼 아끼면서도 패키지여행에서는 어느 정도 쓰면서 다니려는 생각이 있다. 꼭 하고 싶은 게 아니어도 옵션을 해주고 물건도 웬만하면 사주고 그런다. 하루 마시는 물 비용으로 지나친 돈을 걷은 걸 알면서도 가이드가 자신의 역할만 잘했다면 그냥 팁으로 얹어주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가이드가 하는 역할이 안내자가 아니라 대장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것도 인간이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위세만 부릴 줄 아는 그런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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