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행을 그리 원하지 않았던 것은 보통의 한국인이 일본에게 느끼는 민족 감정이 주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을 여행한 것은 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한참 지난 2010년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그것도 여행을 제안한 동행자의 의견에 따른 결정이었다. 친구가 장기간 여행할 수 없었고 그렇다면 가까운 곳으로 가는 편이 나아서 일본으로 가는 것에 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겨울이었고 그나마 따뜻한 일본의 남쪽 지방으로 가기로 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배를 탔다. 배 안에 대중목욕탕이 있었던 게 특이했다.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으로 가는 배여서 그런 건지. 밤 10시 반에 출항해서 다음 날 아침 6시에 도착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나와서 출국수속을 받았다. 벳푸, 구마모토, 나가사키, 사세보, 우레시노 온천, 카라츠로 해서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와 귀국했다.
그 겨울 일본에는 눈이 많이 왔다. 일본의 남부지역은 눈이 별로 안 온다고 들었는데 아소산 부근에서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을 버스 안에서 구경했다. 결국 버스가 계속 가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구마모토에서 시마바라 가는 배를 타려고 계획했는데 바람 때문에 배가 취소되어 나가사키로 갔다. 나가사키 가는 버스도 눈이 계속 내려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나가사키에 그렇게 눈이 많이 온 게 처음이라며 현지 사람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그 눈 때문에 버스가 출발하지 않아 운젠 가는 걸 취소하고 사세보로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친구가 여행일정을 짰는데 그것대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 몇 차례 벌어졌다. 이런 일처럼 여행하다 보면 변동되는 일이 생겨서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다니는 게 맘이 더 편하다. 현지에 도착해서 방을 직접 보고 결정할 수 있는 점도 더 낫다. 그럴 때 가장 걱정되는 상황은 낯선 곳에 밤에 도착하는 경우이다. 버스터미널이나 역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으면 다행인데, 없으면 그 밤에 숙소를 찾아 헤매야 하고 밤이어서 불안한 마음에 아무 숙소나 정하게 되기도 한다. 가격이 비싸건 방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건 어쩔 수 없이.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빈방이 없을 수도 있고.
일본여행 중 밤에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일이 일어났다. 혼자가 아니라서 밤에 도착해도 덜 무섭긴 했다. 카라츠 버스터미널에서부터 물어물어 숙소를 찾아가고 있는데 좀처럼 숙소가 될만한 건물이 보이질 않았다. 제법 많이 걸었다. 어두운 거리를 지나가기도 해서 숙소가 영 안 나오나 싶을 때 멀찍이 있는 간판에서 ‘호테루(ホテル)’라고 쓰여있는 걸 보았다. 드디어 찾았구나 하며 반가웠는데 이상한 건 간판에 같이 적혀 있는 호텔 전화번호 뒷자리가 4444인 점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4자를 피하지 않는가 보다 생각하고 그 건물을 향해 갔다.
호텔에 가까워지자 그 밤에 하얀 장갑을 끼고 차량을 안내하는 사람이 길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람조차 없는 한적한 길을 걸어온 터라 사람을 본 것도 반가웠고, 차량을 통제할 만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안심이 되었다.
호텔 입구의 문을 열려고 하는데 그 문 앞에 서 있는 남자 직원도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호텔 로비가 좀 색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의 갈급한 사정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의구심을 갖기도 전에 문을 열어준 사람에게 물었다.
“헤야가 아리마스까? (방 있습니까?)”
배낭 메고 들어선 내 모습보다 나의 이 질문에 그 남자는 더 당황했다. 그가 하는 말은 못 알아들어도 하얀 장갑으로 손사래 치는 것을 보며 그제야 이곳이 어떤 호텔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장례식장이었다. 전화번호에서 눈치챘어야 했는데 일본은 다르겠거니 생각하며 넘어갔다. 장례식장에 호텔이란 단어를 사용하리란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쉴 수 있는 곳이란 의미로 호텔이라고 했을까? 밤에 어떤 행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호텔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가라앉은 분위기도 그런 이유였다. 거기서 나와 다른 호텔을 찾아 걸으면서도 장례식장에 가서 방이 있냐고 물어본 것이 너무 어이없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죽고 싶으니 방 하나 마련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하는 의미가 되는 건가.
그때는 죽음과 꽤 거리감이 있다고 여겨서 더 웃게 되었는지 모른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은 죽음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삶 한쪽에 늘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만이 아니라 죽은 이들이 머무는 곳에다가도 호텔이란 이름을 쓴 것처럼, 삶과 죽음이 아주 다른 세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거라고. 삶이 그렇듯 죽음도 하나의 여행 같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게 두렵긴 하지만 그 점이 누군가에겐 호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겠다. 죽음을 떠나가는 배에 비유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죽음이란, 배가 수평선을 넘어가서 눈앞에서 사라지는 거라고. 이쪽에서는 사라졌지만 저쪽에서는 나타난 것이다.
다른 여행처럼 이 여행에서도 새로운 것을 만나며 즐길 수 있을까? 여행 중에 낯선 곳에 가서 호텔 방을 얻어 지내는 것처럼 죽어서도 나만의 방이 있고 내가 맘에 드는 방을 고를 수 있다면 좋겠다.
장례식장까지 가서 방을 찾던 그날 밤 결국은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를 찾아다녔다. 역 주변의 호텔들이 비싼 편이었다. 한 비즈니스호텔에서 가격을 깎아준다고 해서 묵기로 했다. 시설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쏙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우리의 방이 있다는 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