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의 왕 두리안의 맛

by tripall

두리안(durian)은 냄새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드는 과일이다. 두리(duri)는 인도네시아 말로 가시라는 뜻으로 가시처럼 삐죽삐죽 나와 있는 모양에서 이름 지어졌을 거다. 두리안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겠지만 지금 싫어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란 장담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물론 아예 먹어보지도 않는다면 변화가 없는 게 당연하지만. 어떤 시도도 해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두리안을 먹은 건 1996년 태국을 여행할 때이다. 숙소마다 거의 두리안을 갖고 들어오지 말란 말이 쓰여있어서 더 먹어보고 싶었다. 시도할 기회가 있어서 한 통을 샀지만 둘이서도 다 먹지 못하고 버리고 말았다. 모양새도 그렇고 물컹한 느낌도 모두 낯설었다. 무슨 맛인지 몰랐다.

두 번째는 2001년 말 인도네시아 칼리만탄(보르네오) 섬에서였다. 그 섬이 두리안의 원산지여서 그런지 두리안이 흔히 보였다. 조그만 두리안 하나를 혼자서 다 먹었다. 맛이 있었으니 다 먹었을 텐데, 그때는 맛보다는 먹고 나서 배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두리안을 많이 먹으면 그럴 수 있다고 나중에 현지인에게서 들었다. 그 섬에 있는 동안 두리안을 더 사지 않았던 걸 보면 아주 맛있던 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 우리나라에 유학 갔다 온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에게 한국에 있는 동안 뭐가 제일 먹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두리안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두리안을 먹을 수 있지만 2000년대만 해도 두리안을 파는 곳이 없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2년 있는 동안 먹고 싶었던 게 짜장면과 돈가스였다. 자카르타에 한국식당도 있고 한국 슈퍼도 있어서 웬만한 음식은 먹을 수 있었는데 짜장면과 돈가스집이 없었다.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으니 더 먹고 싶어진다. 그때의 나는 두리안을 그 정도로 좋아했던 게 아니어서 그 학생의 말에 공감하기보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두리안을 꽤 좋아하나 보다 생각했다.

열대 과일이 맛있는 게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밋밋한 식감이다. 우리나라 과일은 씹는 맛이 좋고, 시거나 달거나 한 맛이 확실해서 우리 과일이 더 맛있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맛의 기준도 우리 과일에 더 익숙해서 그럴 수 있다. 지금은 그 밋밋하게 씹히는 맛도 맛있다고 느끼니까.

두리안의 맛을 안 것은 세 번째 먹어본 말레이시아 사라왁(보르네오섬)에서였다. 정년퇴직하고 이 지역의 세리안(Serian)에 와서 악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음악선교를 하는 분을 언니가 알고 있었다. 2011년 12월, 그분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그 집에 가서 며칠 묵었다. 그분이 하는 활동에도 같이 참여하면서 중국인 목사가 운영하는 교회도 방문하고, 전통양식인 롱하우스에 사는 이반족과 비다유족 마을도 방문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날 이동하다가 길거리에 자리를 깔고 몇 개 팔려고 내놓은 두리안을 보았다. 그 자리에서 먹어보니 맛있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맛 중에 최고였다. 확실히 과일은 신선할 때 가장 맛있다. 더 사 가려고 상인이 안내하는 농장으로 갔다. 거기서 츰쁘닥(cempedak)을 먹게 되었다. 이 과일은 두리안과 같은 종류인데 두리안보다 더 길고 노란빛이 많으며 가시 대신 울퉁불퉁 튀어나온 모양이다. 겉은 두리안보다 큰데 안에 과육은 작게 여러 개가 들어있었다. 맛은 두리안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인데 이것도 아주 맛있었다. 츰쁘닥은 거의 없었는지 두리안을 주로 사 와서 이틀 더 그곳에서 묵는 동안 실컷 먹었다. 씨를 빼고 냉동하면 귀국할 때 가져갈 수도 있다는데 우리는 말레이시아 본토 쪽으로 여행을 더 할 거라서 거기서 먹는 거로 만족해야 했다.

그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동안 두리안이 먹고 싶었다. 온라인 구매로 사서 먹어본 두리안은 맛이 없진 않은데 현지에서 먹은 그 맛에는 한참 모자랐다. 가격도 상당히 비싸다. 그래도 두리안은 먹으려면 살 수 있는데 츰쁘닥은 그날 이후로 못 먹었다. 이제는 두리안이 들어간 아이스크림도 맛있다. 그 고약한 냄새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여행하면서 식성이 많이 바뀌었다. 못 먹는 것도 많았고 가리는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다 먹는다. 베트남 국숫집이나 외국 식당에서 독특한 향이 나면 먹고 싶어진다. 향이 강한 야채가 좋고, 고수도 좋아한다. 인도에서 현지 음식을 먹을 때 강한 향신료 때문에 처음에는 식사를 잘하지 못했다. 나는 그나마 초록색 향신료를 옆으로 밀어놓고 먹으려 하는데 같이 갔던 친구들은 아예 먹질 못했다. 그런데 한 달 후 돌아올 즈음엔 그 냄새가 식욕을 당겼다. 여행하면서 세상을 향해 더 열려가는 나를 보는 게 기쁘다. 그게 음식에 대한 선입관을 깨는 것이든 다름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이든.

지금은 외국에 나가면 현지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고 과일이나 과자도 가능하면 거기서만 먹을 수 있을 것들을 더 먹으려 한다. 여행의 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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