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를 멋지게 추고 싶어

by tripall

중남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사람들이 정열적일 거라는 생각에서 중남미 여행에 대한 꿈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곳을 2003년에 장기간 여행하면서 어느 정도 갈망은 해소되었다. 그러다가 2015년에 아르헨티나에 가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하면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라는 수도 명칭에서 뭔지 모를 야릇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탱고가 생각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란 글자 그대로의 뜻은 좋은 공기, 좋은 바람일 뿐인데 그 공기와 바람에서도 탱고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탱고의 본고장에 가서 멋지게 탱고를 추고 싶었다.

여행 준비로 돈을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갖 여행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관련한 역사나 문학, 예술 정보를 찾는 사람도 있겠고, 그곳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춤을 추고 싶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탱고의 나라인 만큼 여러 곳에서 탱고를 출 테고 그때 나도 함께 어울려서 어느 정도 출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첫 번째 중남미 여행에서 느꼈던 것 중의 하나가 춤이 일상화되었다는 점이다. 전문 댄서가 아닌 일반인들이 춤추는 것을 자주 봤고, 광장에서도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나와서 춤추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탱고를 배울 곳을 찾아야 했다. 스포츠댄스를 배운 적은 있으나 탱고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댄스강의하는 곳들을 직접 들어가 보면서 분위기를 살폈다. 도농복합도시답게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데가 많았다. 마침내 버스를 타고 가야만 하는 곳에서 적당한 교습소와 강사를 찾아냈다.

지도하시는 분에게 아르헨티나에 가서 탱고를 추고 싶단 말을 하며 탱고 수업이 따로 없다면 개인교습을 받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대단한 투자다. 단기간에 배우려면 그 정도의 투자라도 해야 하겠다 싶었다. 강사는 단체반에서 먼저 해보라고 했고 그의 조언을 따랐다.

두 달이 지나도 내가 배우고자 하는 탱고를 강습하지 않았다. 결국 그 강사와 다시 얘기를 나누어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했다. 탱고는 너무 형식적인 춤이라 내가 좋아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나는 왈츠같이 격식을 갖춰 추는 춤보다는 자유롭고 흥겨운 차차차가 더 좋다. 그래도 열심히 배워서 어느 정도 기초는 끝냈고 계획했던 교습기간도 끝나는 날이었다.

그날 강사에게서 들은 말은 춤을 배우며 지낸 나의 몇 달을, 그리고 내가 이번 여행에서 기대했던 재미를 사라지게 했다. 탱고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아르헨티나 탱고와 유럽식 탱고. 그리고 두 탱고는 완전히 다르다고. 새롭게 알게 된 정보이지만 그것까지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배운 탱고가 유럽 탱고라는 것이다.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비싼 개인교습 비용을 지불하고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울 수도 있었지만 여행 시작하는 날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직장에서 2주간의 휴가를 내기 위해 미리 해둬야 할 일들로 여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사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물론 그 강사가 의도적인 것이 아닐 수 있었다. 내가 아르헨티나에 가겠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으나, 적어도 두 가지 탱고가 있다면 강습을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어떤 것을 배우겠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큰맘 먹고 내게 부린 사치스러운 투자는 그렇게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멋진 건물들이 많아서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에는 건물과 조형물 사진이 많았다. 백 년도 더 된 건물들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역시 탱고는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탱고의 발상지라고 하는 라보카(La Boca)와 탱고 바가 많은 산텔모(San Telmo)가 유명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도 탱고를 공연하는 곳이 많았고 강습하는 곳도 있었다. 한 군데(Confiteria Ideal)에서 한 시간 동안 하는 강습을 듣고 겨우 기본이 되는 오초 스텝을 배웠다. 그러나 자신 있게 나가서 추지는 못했다. 그 정도로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여행 내내 보는 탱고에 만족해야 했다.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탱고라지만 그들의 감정을 공감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춤을 췄다면 더 깊이 이해할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도 아코디언처럼 생긴 반도네온 소리를 처음 들었고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유명한 곡 ‘리베르 탱고’의 연주와 춤 공연을 보면서 그 멋을 조금은 알 듯했다. 우리의 ‘한’이란 정서를 잘 표현하는 대금이나 해금처럼 반도네온에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매력이 있어 탱고와 잘 어울렸다. 반도네온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애환이 담긴 춤을 추게 될 것 같다. 신나서 추는 춤이라기보다는 춤이라도 춰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춤. 그래서 탱고는 인생과 다를 게 없다고 하나 보다. 신나서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저 살아가는 거지.

여행에서 돌아와 탱고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며 그런 감정들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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