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가 끌린 건 언제부터였는지 확실치 않다. 체게바라에 관련한 책을 읽고 나서인지, 쿠바의 나이 든 뮤지션을 다룬 다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고 나서인지, 1959년 쿠바혁명 이후 미국의 경제 제재로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인지. 2017년 6월에 쿠바에서 한 달간 생활하며 이 모든 것들을 다 느낄 수 있었다.
아바나(Havana)에 도착해서 얻은 숙소는 백 년도 더 된 집이라고 했다. 호텔처럼 집을 숙소로 사용하도록 허가받아 영업하는 곳을 쿠바에서는 까사(casa)라고 불렀다. 내가 묵은 까사는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지금 주인은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건물 안의 구조가 복잡한 것도 옛날 느낌이 들고, 내 방에 나무로 된 문에서부터 역사가 있어 보였다. 그 숙소 주변 건물들이 다 그 정도 된 것 같다. 이삼 층이거나 그보다 더 높은 오래된 건물들이 길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기 좋았다. 이건 여행자가 느끼는 감정이고 실제로 사는 사람들은 다를 것이다. 실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며 보게 된 낡은 건물들에서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이것이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기에. 미국의 봉쇄와 소련의 지원이 끊긴 어려운 시대를 견뎌내기 위해. 길에 다니는 차들은 시대물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차들이다. 길쭉하고 큰 편이며 색이 다양했다. 올드카 투어로 비싼 요금을 받아 영업하는 차들도 많았다.
쿠바혁명을 상징하는 체게바라는 아바나 혁명광장에 있는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얼굴을 조성해 놓아 쉽게 눈에 띈다. 체게바라는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 셔츠에 그려져 있는 것 말고도 쿠바의 돈에도 있고 그림으로도 자주 보였다. 쿠바인들만이 아니라 그를 아는 전 세계 사람들은 쿠바를 그와 떼어놓을 수 없다. 체게바라를 상품화하는 게 관광사업이 가장 큰 수입원인 쿠바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본다. 쿠바 시가(잎담배)가 주요 상품으로 팔리는 데도 그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혁명으로 인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상들을 볼 때 쿠바인들에겐 혁명에 대한 애증이 공존할 것 같다.
아바나에서 비냘레스(Viñales)로 가는 차편을 숙소에서 예약해 줬다. 꼴렉티보 택시라고 하는 이 교통편은 역시 오래된 차였다. 숙소마다 들려 열두 명을 태운 게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오전 아홉 시쯤이다. 에어컨도 없이 뙤약볕 아래 달렸다. 게다가 가는 도중에 차가 고장이 났다. 운전기사는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도중에 담배 농장과 경치가 좋다는 곳에 들려주었다. 그렇게 150킬로 되는 거리를 하루 종일 이동한 셈이다.
차로 오는 동안 너무 더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일행 중에 생리하는 사람이 있었던 건지 갑자기 생리를 시작했다. 폐경이 된 줄 알고 생리대를 준비하지 않아서 구입해야 했다. 당연히 슈퍼같이 물건 파는 곳에서 팔겠거니 하고 들어갔는데 생리대가 없었다. 쿠바에서는 물건들이 슈퍼 진열대를 모두 채운 곳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2014년에 미국과 국교정상화가 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생필품이 넉넉하지 않은가 보다. 생리대란 스페인어 단어를 찾아서 가게 주인에게 보여주며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주유소 위치를 가르쳐주며 거기에 딸린 가게로 가보라고 해서 찾아갔으나 거기에도 없었다.
그렇게 묻고 가게를 찾아다니기를 다섯 차례도 더 했다. 생리대를 파는 곳이 없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비냘레스가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이 지역의 여자들은 생리를 안 하는 게 아닐 텐데.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고 싶었다. 나도 그들의 비법을 따라 해야 할 상황이니. 못 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을 고민하며 생리대 찾기를 계속하다가 드디어 약국에서 구할 수 있었다. 가격은 좀 비쌌으나 그 가격의 배를 주고도 샀을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물건들 사이에 생리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생리대를 구하러 다니면서 쿠바가 얼마나 공산품이 부족한지 실감했다.
쿠바의 상황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는 말을 몇 차례 들었다. 특히 숙소 주인 같은 돈이 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많았다. 성공한 혁명에 대한 자부심은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설 만큼 단단하지 못한가 보다. 그래서이겠지만 대화를 나눈 사람들 중에 해외에 가족들이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았고 국제 커플이 많기도 했다. 처음 본 나에게도 결혼하자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폐경 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하는 생리는 불편하면서 동시에 반갑기도 한 이중의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내 감정이 쿠바인들이 혁명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거라고 보면 지나친 비교일까.
쿠바사람들은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음악과 춤을 즐기는 것 같다. 나는 살사의 기본 스텝을 아바나에서 배워 여러 도시에서 춤출 기회가 많았다. 그 정도로 이런 장소들이 흔하고 사람들로 붐볐다. 쿠바음악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나오는 노래들처럼 노래는 그저 흘러나오는 듯 부르고, 반복되는 구절과 타악기의 리듬은 몸을 들썩이게 한다. 그들이 하는 노래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게 아니라 옆집 사람이 부르는 것 마냥 부담스럽지 않다. 그 음악에 맞춰 추는 춤도 의도적이기보다 자연스럽다. 살면서 하는 행동의 하나처럼 일상화된 것 같다. 쿠바음악은 살사만이 아니라 룸바, 맘보, 차차차 댄스의 중심이 되는 음악이기도 하다. 음악 외에도 그림이나 사진, 건축물들을 보면 쿠바사람들은 예술 감각이 좋은 것 같다.
매체에서 접한 정보로 구성됐던 쿠바의 막연한 느낌은 여행에서 겪은 일들로 하나하나의 장면이 되어 실체감 있게 남아 있다. 올드카의 행렬, 슈퍼에 텅 빈 진열대들, 알선비를 받으려고 열심히 숙소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 아바나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클럽으로 안내해 준 까사 주인, 여행자와 현지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따로 있어서 혼동스러웠던 나,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들의 멋지게 꼬불거리는 머리카락, 다양한 칵테일의 맛, 같이 춤췄던 트롬본 연주자, 한국어를 공부하고 가수 엑소를 좋아하던 대학생, 바라코아에서 마신 초콜릿 차.
무조건 외워야 했던 지리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라며 수도며 나에겐 낯선 단어일 뿐이어서 암기 공식을 만들거나 하지 않으면 그 많은 명칭을 외우기가 어려웠다. 여행을 다녀오면 굳이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도시가 많다. 마치 평평한 지도에 있던 나라가 양각으로 드러나며 그곳이 손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밋밋했을 나의 삶이 여행을 통해 올록볼록 다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