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유럽을 가본 적이 없다. 유럽의 물가가 비싸서 뒤로 미뤄진 점도 있지만 여러 나라가 모여 있으니 가는 김에 오래 있으면서 주변 나라도 볼 생각이다 보니 기회를 잡지 못했다.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 2021년에 적금이 만기 되면 유럽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여행은 돈과 시간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하는데, 둘 다 있고 내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 일이 생길 줄이야. 더 걱정스러운 건 이런 일이 마지막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나라를 폐쇄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니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가 보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험이 못했던 걸 서둘러하게 만든다. 나도 유럽의 한 나라라도 우선 가봐야겠단 생각이다.
국내여행은 별 부담이 없어 혼자서도 친구들과도 잘 다녔다. 코로나로 해외에 나가지 못할 때 떠나고 싶은 욕구를 국내여행으로 가라앉혔다. 우리나라 안에서나마 폐쇄되는 곳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기차역이 있고 멀지 않으면서 가본 적이 없는 곳을 찾다가 옥천을 봤다. 2021년 10월에 2박 3일 일정으로 언니와 옥천에 갔다. 별 정보 없이 낯선 이름으로만 선택한 여행지였는데 볼만한 곳이 많았다. 구읍 일대는 옛날 건물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걸어 다니며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옥천에는 정지용(1902~1950) 시인을 테마로 해서 조성된 곳이 많았다. 정지용 생가와 정지용 문학관, 지용 문학공원이 있고 향수 호수길이 있다. ‘향수’는 정지용의 대표 시인데 노래로도 불렸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이렇게 시작하는 시이다. 마을 여기저기서 보이는 이 구절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 다녔다. 벽화며 전등이며 거리 이름, 가게 이름들이 정지용 시인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옥천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곳은 이지당이다. 나무를 그대로 드러내고 흰색 칠이 된 건물은 청렴한 선비처럼 단순하면서도 단정했다. 나무의 구부러짐을 그대로 사용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게 마음을 끌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싸우다가 죽은 조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고 서당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말에서 두 개의 지가 있다는 의미에서 이지당(二止堂)이라 하였다고. 이 말은 옛 시에서 인용한 말로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 밝은 행실은 따르지 않을 수 없다’란 뜻으로 조헌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고 보인다. 그런데 나는 자꾸 二止에서 easy가 떠올랐다. 그냥 편하게 있을 만한 곳, 쉬고 싶게 하는 곳이었다.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경치도 좋아 바라보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거기서 5킬로 남짓을 걸어서 부소담악에 갔다. 이곳은 아름다운 하천으로 꼽힐 만큼 유명한 곳인데 우리가 갔을 때는 물이 적어서 그런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지당의 매력이 강했나 보다.
옥천을 떠나는 날 오전에 용암사로 갔다. 버스 편이 자주 있지 않아 걸어서 가기 시작했는데 지나가는 버스도 택시도 보이지 않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돌아오는 차편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얻어 탈 만한 차가 있을까 해서 용암사에 도착해서는 주차장부터 봤다. 카니발 같은 차가 한 대 있었는데 우리가 석탑을 보러 갔을 때 이미 출발했다. 아직 볼 것이 많아서 그 차를 얻어 타는 건 포기하고 계속 절 구경을 했다.
입구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두 개의 삼층석탑이 있는데 두 석탑이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걸 다른 데서 본 기억이 없다. 절 자체가 높은 지대에 있어 절 마당에서는 마을이 다 내려다보였다. 새해 일출을 보러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한다. 절 뒤로 전망대 가는 곳을 난간과 계단으로 해놓았다. 그 길을 따라 산을 더 올라가면 마애불도 있고 전경은 더 좋았다. 크지 않은 절이지만 부족함 없이 다 갖춰져 있는 것 같았다.
전망대를 다녀오니 한 커플이 와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타고 온 차가 트럭이라 우리가 앉을 자리가 없을 것 같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 한참 더 구경할 것 같아 우리는 터벅터벅 절에서 내려왔다. 한 20분 남짓 걸었을까, 그 트럭이 우리 옆으로 서면서 타겠는지 우리의 의향을 물었다. 낯선 차를 얻어 타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낯선 사람을 태우는 것도 조심스러운 경향이 심해져서 이런 호의는 드물었다. 먼저 제안해 준 게 너무나 고마웠다. 운전석 뒤편으로 앉을 자리가 있었다. 그분이 따놓은 연시도 있어서 그것까지 얻어 먹었다. 그 당시 옥천에는 대봉이 달린 감나무가 여기저기서 보였다.
우리를 숙소 앞까지 태워 주었다. 감사하는 마음에 커피라도 사드리고 싶어서 얘기를 꺼냈지만 한사코 거절하는데,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는 게 아니어서 어쩌지 못했다. 그날 하루 더 묵으면 저녁때라도 시간을 내보라고 할 텐데 우리는 그날 오후 기차를 예매해 두었다. 전화번호를 달라고 할까 하다가 지키지 못할 헛인사를 하고 싶지 않아 선뜻 그러지 못했다. 몇 달 후 다시 옥천에 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옥천에 도착한 날, 구읍을 돌아다니다가 전통문화체험관을 보았다. 그 울타리 안에 식당과 찻집이 있고, 체험관도 있고 무엇보다도 깨끗하게 보이는 한옥으로 된 숙소가 있었다. 이미 숙소를 정해 놓아서 다음 날이라도 거기 숙소로 옮기려고 문의했다. 그랬더니 그날도 그다음 날도 모두 예약이 찼다고 했다.
그 전통문화체험관 한옥에서 묵고 싶어서 2022년 3월에 옥천을 다시 갔다. 운치 있을 것 같아 일부러 툇마루 딸린 방으로 예약했는데 아직 쌀쌀한 봄이어서 마루에 나와 있기엔 일렀다. 두 번째 방문이라 덜 돌아다니고 시간이 여유로웠다. 그러니 히치하이킹 시켜준 그분이 다시 생각났다. 감사함을 갚을 기회인데 연락할 수 있는 아무 단서가 없었다. 빚진 느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