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아는 게 많아졌는데 이 정도의 인지도가 생긴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외국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은 알아도 한국은 몰랐다. 간혹 한국을 아는 사람들은 이어서 이렇게 물었다. “South Korea, North Korea?” 적어도 남북이 나눠져 있다는 걸 안단 얘기다. 그렇게 우리는 위험한 국가로 알려졌다.
분단된 채 두 세대가 지나고 있다. 어느 한순간 남북이 막혀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은 그렇게 가족들과 나눠진 채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야 했다. 정치와 이데올로기, 강대국의 이권, 이런 것들로 이산가족들이 만날 기회는 거의 사라졌다. 양쪽의 체제를 그대로 인정한 채 서로 왕래하는 것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조금씩이라도 교류가 있는 게 중요하기에 2000년대 들어 시작한 개성공단 사업과 현대아산이 추진한 금강산 관광은 아주 좋은 시도였다. 아쉽게 이 사업들이 중단되었고 10년이 넘어가는데 재개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궁금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곳. 북한에 관한 정보는 감춰지고 조작돼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되기도 했다. 여행이란 게 아무리 열심히 다닌다 해도 일부를 아는 정도인데, 한정된 장소만 볼 수밖에 없다 해도 직접 북한을 가보고 싶었다. 2007년 설날 연휴에 육로로 금강산에 가는 2박 3일 일정을 신청했다. 그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공휴일 이외에는 쉴 수 없어서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고, 그나마 긴 연휴가 설날과 추석이었다.
서울 시청 근처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고성으로 갔다. 남측 검문소와 북측 검문소를 통과하고 금강산 입구에 도착했다. 온정각 주변에는 설날이라고 청사초롱처럼 붉고 푸른색의 소원등이 줄지어 걸려 있어 우리를 환영하는 듯했다. 우리는 설날에 등을 걸지 않지만 북한도 설을 기념한다는 게 동질감을 주었다. 청사초롱은 우리도 행사 때 많이 사용하는 등이어서 친숙하기도 했다. 온정각 오른쪽에 있는 외금강 호텔이 내 숙소다. 그 당시 남한 방문객이 세 개의 호텔을 사용했던 것 같다. 물 위에 떠 있는 호텔 해금강에서 묵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저녁식사 때 북한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걸 고르느라고 낯설어 보이는 털게 요리를 시켰다. 게가 털이 달려있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듣기론 우리 강원도 지방에도 털게가 있다고 한다. 바다조차 남북이 구분되어 있지만 털게에겐 별 의미가 없긴 하겠다. 저녁 먹고 온천에 갔는데 아팠던 무릎이 다음 날 아무렇지 않았다. 좋아질 때가 돼서 그런 건지 온천물이 효과가 있던 건지 확실치 않다.
다음 날 금강산 등반을 했다. 가는 버스에서 보이는 적송이 보기 좋았다. 옥류동 구룡연, 상팔담, 삼선봉, 만물상 입구까지 갔다. 돌산으로 둘러싸인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볼 수 있었다면 참 멋졌을 텐데 눈이 내려 시야가 흐렸다. 그래도 희미하게 나타나며 모습을 보이는 바위들은 정말 금강산이구나 싶을 정도로 볼만했다. 그다음 날은 해금강 주위로 돌았다.
한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을 인솔하는 북한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사실 내게는 다 모르는 사람이어서 누가 관광객이고 누가 북쪽 사람인지 말하지 않으면 구분되지 않았다. 인솔자 중 한 젊은 여자와 말할 기회가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며 얘기가 오간 후 내게 물었다.
“<황진이> 보셨어요?”
“아, 송혜교 나오는 거요? 봤어요.”
“영화 말고 드라마요. 하지원이 황진이고요.”
“티브이가 없어서요. 황진이란 드라마가 있는지 몰랐어요.”
누가 북쪽 사람이고 누가 남쪽 사람인지 이 대화로 알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북한 쪽이라고 답할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연예계 소식은 우리 남한사람들끼리도 흔히 나누는 대화 소재이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온갖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어서 황진이가 영화 말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는데, 오히려 그쪽 젊은이들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걸 숨기거나 몰래 말하거나 하지 않았다.
설날 아침에 차례상을 준비했다고 차례를 지낼 사람은 온정각이었나 어떤 장소로 오라고 했다. 이런 자리를 준비한 그 배려가 무척 고마웠다. 정말로 한국적 정서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이 큰집이어서 제사도 자주 돌아왔고 명절에는 친척들이 모여 북적거렸다. 그러나 엄마가 편찮으셨을 때도 그랬지만 1년여 전에 돌아가시고 나니 명절의 의미가 없어졌다. 집에서 혼자 간단히 상을 차리고 향을 태우며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긴 한다. 관광하러 온 곳에서 차례상까지 차려준다니 인사드리는 것도 좋겠다 싶어 차례를 지내려는 사람들 줄에 섰다. 줄이 제법 길었다. 차례상은 집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던 상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여러 음식을 갖추고 정성스레 놓여 있었다.
천천히 차례가 다가와 내 앞에 있던 남자가 신발을 벗고 차례상 앞으로 갔다. 절을 하는데 그 남자의 양말바닥에 구멍이 보였다. 그런데 그게 나의 뭔가를 자극했는지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여행할 때 가끔 뜻하지 않은 시점에 코가 찡해지거나 눈물이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어떤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린 건지 모르겠다.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 같은 걸까?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서글픔이 그 뚫어진 양말에서 새어 나온 걸까? 조용히 절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감정이 명절의 흥겨움이 아니라 고향을 떠난 쓸쓸함 같은 게 느껴져선가?
눈물을 잘 누르고 부모님께 절을 올렸다. 금강산까지 찾아오실 수 있으려나?
나의 여행은 낯설고 새로운 걸 찾아다니며 그것과 만나는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금강산 여행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점을 찾고 그걸 보는 게 즐거웠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장 큰 동질감은 남과 북이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한정된 장소에서 일정한 사람들만 만났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을 금강산에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