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알려주던 남자가 갑자기

by tripall

여행한 곳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좌우되는 요인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멋진 경관이거나 유적지가 인상적이었어도 현지인들이 장삿속으로 대한 경험만 있다면 그곳은 그리 좋게 기억되지 않는다. 그런 곳을 여행하는 중이었다면 얼른 떠나고 싶을 것이다.

그동안 방문했던 나라 중 가장 친절하다고 꼽을만한 나라는 콜롬비아다. 여행할 때 들은 설명이 적절한 건지 모르겠지만 중미에서 남미로 가는 입구에 있는 이 나라는 서양의 접근이 쉬었을 테고 그만큼 인종적으로 유럽계통의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피부색이 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다른 중남미국가 보다 더 정열적이라고 여겨진 건 지나가는 나에게도 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서다.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그런다. 물론 정열과 친절을 같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관련은 있을 것 같다.

길눈이 어두워 길을 헤매는 적이 많다. 배낭여행자로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자질이지만 그러고도 계속 낯선 길을 찾아다니고 있다. 어느 정도 심하냐면 같은 곳에서 반복해서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 곳과 나온 곳이 다르면 전혀 방향을 잡지 못한다. 도로표지판이나 이정표가 잘 되어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곳이 훨씬 많았다. 그러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인포메이션 센터나 숙소, 경찰서에 들어가 지도를 얻으려고 하고, 길에서는 여러 차례 길을 물으며 다닌다. 그럴 때마다 가장 적극적으로 가르쳐준 건 콜롬비아 사람들이다. 내가 물어보고 있는 상대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그 말을 들은 사람까지 가세해서 알려준다. 한번은 길에서 길을 묻는데 길가에 있는 가게 주인이 나와서 설명해 준 적도 있다. 정열적인 성격이 한몫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같이 가주기도 하고 닫혀 있는 곳은 열어서 보여주기도 한다.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에 있을 때(2003년 7월 2일)이다. 심야버스로 깔리(Cali)에 갈 것이라 큰 배낭은 숙소에 맡겨놓고 작은 배낭에는 다른 날보다 좀 더 많은 물건을 담고 보고타 관광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다는 몬테세라에 가려고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중이었다. 미니버스가 계속 지나가는 걸 보니 그걸 탔으면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일이 줄었을 텐데, 큰 버스를 탄 게 그날 운명을 결정한 선택이었다. 이 길이 위험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면 조심했을 텐데 별생각 없이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대부분 대도시에 가면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보고타도 역시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던 도시였는데 떠나는 날까지 별일이 없어서 방심했던 면도 있었을 것이다. 배낭을 앞으로나 뒤로 확실하게 메지 않고 한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었으니.

케이블카 타는 곳을 못 찾아 걸어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길을 물어 확인했다. 낮이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내 가방을 낚아챘고 가방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도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고개를 드니 방금 길을 묻고 지나쳐온 남자가 내 배낭을 잡고 있었고 나는 한쪽 줄을 잡고 있었다. 콜롬비아에 들어온 지 거의 한 달이 돼가고 있을 때니 콜롬비아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인식이 남아 있어서 처음엔 그 남자가 뭘 더 알려주려고 다시 온 건가 생각했다. 그러나 곧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손가락이 뭔가에 베인 것처럼 아팠다. 대낮인데도 소리쳐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실 대낮이란 것조차 전혀 생각지 못했고 그러고 있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있었다. 잡고 있던 배낭 줄을 그냥 놔주었다. 그러자마자 그놈은 가방과 거기에 걸려있는 내 잠바까지 들고 달아났다. 누군가가 바로 올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버티고 있었을 것을. 지나가던 차에서 한 남자가 내려 같이 그놈이 간 곳을 쫓아 뛰어갔다. 한 둔덕에 오르자 그 남자는 그 지역은 위험하다며 더 못 가게 했다. 마침 온 경찰차로 주변을 돌았으나 그놈도 내 배낭도 보이지 않았다.

배낭에는 돈 될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내겐 다 필요한 것들이지만. 가이드북도 내 안경도 한영 전자수첩도 돈이 될까 싶다. 고작 싸구려 카메라 정도나 팔 수 있으려나. 가방과 옷 정도 얻으려고 그런 짓을 한 건 아닐 텐데. 그날로 바로 안경을 맞추고 카메라를 샀다. 수도인 보고타가 그나마 물건이 더 많고 쌀 것 같아서. 필름 인화한 곳에서 받았던 보조가방으로 배낭을 대신했다.

여행하면서 소매치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눈앞에서 배낭째 뺏긴 건 처음이었다. 필요한 물건들을 다시 사야 하는 금전적, 시간적 번거로움이 있었는데도 중국 시안에서 소매치기당한 때만큼 화가 치밀지 않았다. 잃어버린 건 훨씬 많은데도. 그 이유 역시 사람들 같다. 지나가다 도와주려고 차에서 나왔던 남자와 주변을 돌아준 경찰의 반응이 강도짓 한 그놈에 대한 미움을 어느 정도 상쇄시켰나 보다.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할 깔리에 대한 정보를 적어 논 것도 그 가방과 함께 없어져 번거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그 이후에도 잃어버린 물건으로 불편할 때마다 화가 나긴 했지만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보름 정도 더 콜롬비아를 여행했다. 여전히 콜롬비아는 아름다운 경치와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에 대한 기억보다 친절한 사람들로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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