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 호주와 뉴질랜드가 있는 남반구 사이에 적도가 있다. 위도가 정 중간인 0도 지점이다. 적도(赤道)라는 말에서 뜨거움이 느껴진다. 한자로 붉은 적자를 써서 그런가?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일 거다. 적도지역에서는 해가 바로 위로 통과하고 일년 내내 덥고 습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뜨거울 것 같긴 한데 해발고도에 따라 꼭 그런 건 아니다. 적도에 있는 에콰도르의 카얌베 산에는 만년설이 있다고 하니.
세계지도를 보면 적도가 지나가는 대륙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이다. 6대륙 중 유럽과 북아메리카는 북반구에 있고 오세아니아는 적도 아래에 있어서 적도가 지나가는 나라가 없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대륙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보니 의도한 건 아닌데 세 대륙 모두에서 적도를 지나가게 되었다.
아프리카에는 적도에 위치한 나라가 여럿인데 내가 처음 적도를 지나간 곳은 케냐에서였다. 1997년 1월 10일, 나쿠루 호수에서 핑크빛 띠를 두른 것처럼 보이는 플라밍고 무리를 보고 나서 나이베리 강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적도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에서 스웨터를 입고 있는 걸 보면 뜨거운 날씨는 전혀 아니었다. 그날 일기에는 ‘해 바로 아래인 곳인데 고지대라 많이 덥지 않았다. 이곳은 오히려 푸르르고 생활하기에 좋아 보였다. 적도가 이러리라고 상상하진 못 했다.’라는 느낌이 적혀 있다.
다음 날 케냐의 나이베리 강에서 우간다 부자갈리 폭포를 향해 가면서 또 우간다의 적도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다. 겉옷을 벗고 찍은 걸 보면 이곳이 더 온도가 높았을 것 같은데 주변 나무는 푸르른 게 우리의 여름 풍경 같았다. 그날 일기에는 적도에 대한 얘기를 적지 않았다. 그 전날 이미 적도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기 때문에 두 번째는 그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던가 보다. 게다가 그날은 우리의 이동수단인 트럭이 자꾸 고장이 나서 불편했던 게 더 중요한 이슈였다.
아시아 대륙에서 적도가 지나가는 곳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이다.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이 적도에 걸쳐 있는데 내가 지나갔던 곳은 먼저 2001년 8월 수마트라 섬의 부킷띵기에서였을 것이다. 거기서 있는 동안 투어 프로그램으로 주변 지역을 돌았을 때 적도지역을 지나쳤을 텐데 여기는 적도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었다. 깔리만탄 섬에서도 역시 사마린다에서 강 주변 마을을 여행했을 때 적도를 지났을 텐데 그걸 얘깃거리에 올리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슬라웨시 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적도가 표시 나게 줄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적도라고 해서 유별나게 다른 것도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적도가 인도네시아의 여러 곳에 걸쳐 있어서 더 그럴 수 있겠다. 세 군데 섬에서 적도를 지나갔지만 적도 표지판을 본 적은 없었다.
남아메리카에도 몇 개의 나라가 적도에 걸쳐 있는데 그중 에콰도르의 적도기준점(Mitad del Mundo)으로 갔다. 에콰도르가 스페인어로 적도를 뜻한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는 적도를 가는 게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찾아갔다. 2003년 7월 20일, 수도 키토(Quito)에서 버스를 타고 갔다. 이곳은 적도를 나라이름으로 내세운 만큼 적도기점을 관광사업화 했다. 표지판 하나 있던 아프리카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먼저 입장료가 있었고, 레스토랑, 화랑, 민예품점이 무척 많았다. 중간에 있는 광장에서는 춤과 노래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일요일마다 공연이 있다고 해서 일요일에 맞춰서 간 거다. 광장을 지나면 지구의를 얹은 탑, 적도 기념비가 거대하게 서 있고 그 안이 박물관이다. 다른 박물관들도 있는데 거의가 입장료를 내야 했다. 주차장에 가득한 차도 그렇고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아 이름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았다. ‘적도의 햇빛은 센데 기온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적도의 꽃도 색다른 게 없었다.’ 그날 일기에서는 소설 ‘적도의 꽃’에서 의미하는 게 뭘까 궁금해했다. 그러면서 에콰도르의 다른 지역과 그리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도는 상징적이라 하겠다. 에콰도르나 아프리카의 표지처럼 굳이 써놓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 인도네시아처럼 전혀 개의치 않고 살아가도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는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변 지역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곳이다. 적도라고 해서 유난히 뜨거운 것도 아니고 적도지역이 모두 뜨거운 것도 아니다. 위도가 0도라는 건 하나의 공통점일 뿐 나라별, 위치별로 실제의 상황은 제각각이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처럼 하나를 전체화 하면 잘못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런 데서 사고가 경직되기 쉽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글을 배우면서 막 시를 쓰기 시작한 할머니들의 작품과 학교에 갓 들어간 아이들의 시가 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왜일까? 학교에서는 시적 표현들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냥 외워야 했으니 시는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이 되었고 시를 쓰는 게 어렵다고 느끼게 했다. 정해진 답만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생각할 여지가 많은 교육, 그 공백을 꿈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교육이면 좋겠다. ‘적도가 뜨겁다’는 것도 왜 뜨거울지, 왜 뜨겁지 않은지 조사하고 발표하며 스스로 결론을 찾아 나가면 이 하나만으로도 재미있는 수업이 될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탐험가, 여행가, 지구물리학자, 천문학자나 더 다양한 꿈을 꾸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학사일정 상 이런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핑계를 댄다면 적어도 확실치도 않은 답 하나만 제시할 게 아니라 가능성 있는 답을 모두 알려주기라도 해야 한다. 불만스럽게 말한 교육이 내가 경험했던 아주 옛날얘기라고 한다면 지금은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