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에서 콜롬비아까지 8일간의 요트 여행

by tripall

미대륙 여행을 육로로만 가보겠다는 생각은 파나마에서 막혔다. 파나마 동쪽은 밀림지대로 차가 갈 수 없다고 한다. 섬이 아닌데 차가 못 가는 곳도 있다. 그럼 콜롬비아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했는데 개인 요트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요트를 타본 적이 없어 새로운 경험이라는 게 좋고, 영화에서 본 요트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 뱃길은 육로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몇 시간대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는 비행기와는 달리 거리와 시간대가 비슷하게 이동하는 배는 육로이동으로 친다. 배낭여행자 법이라는 게 있는 건 아니니까 암묵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다.

요트 주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놓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마침 대니스라는 미국인 요트 선장이 와있었다. 우리 숙소에서 가겠다는 사람이 다섯 명이었고 우리는 바로 다음 날이라도 떠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니스는 사람을 더 모으고 싶어 했고 서류 작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날 오후 다섯 시에 숙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해서 시내를 구경하다가 급하게 돌아왔더니 그다음 날 아침으로 약속이 변경되었다. 그 아침시간 약속에도 늦게야 나타난 선장의 불성실함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른 요트 주인의 답신은 없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날 아침 선장에게 여권과 돈을 주었고 요트가 출발하는 건 그날 밤에서 그다음 날 아침으로 미뤄졌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요트 여행하는 사람들과 같이 콜론으로 가 파나마 요트 클럽에 도착했다. 바에서 선장을 기다렸고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우리를 콜롬비아로 데려다줄 요트와 대면했다. 요트는 작았다. 열한 명까지 잘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선장의 욕심이다. 럭셔리하곤 거리가 먼 생계형 요트였다. 한쪽 끝쪽이 내가 쓸 곳인데 후미라 천장이 낮아 잠자리에서는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요트에서 첫날밤을 불편하게 잤다. 필요한 물건들이 들어오고 오후 세 시에 출발했다. 자꾸 늦어지다가 떠나는 거라 모두 다행인 듯한 기분이었다. 2003년 5월 30일이었다.

여행자는 모두 여덟 명으로 호주사람 세 명, 영국사람 네 명, 그리고 나.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 다른 언어권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어울리기가 좀 나았을 것 같은데. 선장은 뭘 안내하고 설명하고 그러질 않았다. 그러니 일의 진행파악이 더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일부러 챙겨서 정보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어서 세부적인 내용을 놓칠 때가 있었다. 영국인 중에는 한국에서 입양되었는데 일본 이름을 쓰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의 모호한 정체성에 걸맞은 성격으로 전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요트로 여행하는 8일 동안 그리 편안한 여행동반자들은 아니었다. 그중 한 커플은 오토바이로 알래스카부터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다양하게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좋은데 좁은 데크에 오토바이 두 대가 있으니 더 답답했다. 분위기를 내고 앉아 있을 곳이 없었다.

배가 이동하는 동안 계속 멀미를 했다. 멀미하지 않아도 흔들리는 데선 책을 읽지 못하는데 멀미까지 하니 누워 있거나 자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멀미를 해도 선장은 거기에 대해 어떤 대책도 어떤 관심도 없었다. 선장이라면 갖출 리더십이나 배려 같은 걸 전혀 볼 수 없었다. 중간중간 파나마의 해변마을에 들르지 않았다면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카리브해를 끼고 가며 아름다운 산블라스 제도에 있는 몇 개의 섬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영하고 스노클링 하고 해변을 걷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다. 우기인데도 멋진 일몰을 여러 차례 보았다.

체체메는 섬이 예뻤고 야자나무가 조화롭게 자라 있었다. 큰 섬에는 다섯 가구가 작은 섬에는 세 가구가 산다고 했다. 쿠나 원주민은 초가집을 짓고 나무로 담을 해놓았다. 여자들은 코걸이, 귀걸이에 발에도 칭칭 장신구를 달고 있었고 전통의상도 화려했다. 물속에서 본 동물 중 가장 멋있던 커다란 잿빛 가오리를 이 바다에서 봤다.

토르투가 섬에서는 여러 모양의 산호초와 다양한 색의 물고기들을 보았다. 럼콕을 마시며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도 하고 저녁 식사 후 별구경과 멀리서 치는 번개도 구경했다. 요트 주변에 일 미터도 넘는 베라쿠다가 돌아다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산블라스 제도 중 세 번째 들른 나르가나 섬은 코라손 섬과 다리로 이어져 있는데 먼저 들렸던 두 섬과 현대 문명의 중간에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초가와 대나무를 이용한 전통양식의 집이 있는가 하면 양철 지붕을 얹은 집도 있고 시멘트로 지은 집도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들이 적었다. 집집마다 안테나가 올라가 있고 교회, 레스토랑, 당구장, 농구장이 보였다. 문명이라고 말하는 삶으로의 변화는 오염을 동반하는 건지 마을 앞의 바닷물은 더러웠다. 여전히 주변 풍경은 아름다운데.

거기서 28시간을 달려 콜롬비아로 오는 도중에 돌고래를 봤다. 돌고래들은 뛰어오르기도 하며 한동안 요트와 함께 헤엄치기도 했다. 요트를 피하느라 급하게 도망가는 물고기들의 지느러미가 멀어져 가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육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홀로 날고 있는 갈매기는 나 같단 생각이 들었다. 고향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서 어딘가를 향해 혼자서 가고 있는.

6월 5일 오후 네 시가 넘어 콜롬비아에 속한 로사리오 섬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은 건데 이민국을 거치지 않으니까 다른 나라에 온 게 실감 나지 않았다. 화폐단위가 페소로 바뀐 것을 보고 콜롬비아이긴 하구나 했다. 다음 날 오후에 다시 출발하여 네 시간 후 우리의 목적지인 카르타헤나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은 여기서 받는데 그게 오래 걸리는 건지 추가비용을 더 받으려는 선장의 속셈으로 그런 건지 여권을 돌려받는데 이틀이 걸렸다.

즐겁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어도 요트 여행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경험을 앞으로 또 할 가능성은 아주 낮고, 8일 동안 본 자연의 아름다움은 나에게 좋은 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1년간 아메리카 대륙을 헤매고 다닐 때도 재미있는 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게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게 내놓고 증빙할 수는 없지만 이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건 확실하다. 굳이 눈에 보이는 이점을 들라고 한다면 적어도 내 버킷리스트가 가벼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keyword
이전 03화벨리즈 국경에서의 실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