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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빛이 던지는 것들

그림자와 함께 걷는다.

by 행복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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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h - GR3X


빛이 남긴 조각들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더 따뜻한 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저 그림자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바닥에 남긴 흔적일지도 모른다.


길어진다는 것

해가 기울면 그림자는 점점 길어진다. 마치 삶의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것처럼. 예전에는 키가 크고 싶었다. 나도 언젠가 저 높은 선반 위의 물건을 손쉽게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키가 커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은 내 그림자가 한없이 작아지고, 또 어떤 날은 혼자 감당하기 힘들 만큼 길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함께 걸을 수 있다면

가끔, 길 위에서 다른 사람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부드럽게 섞이는 걸 볼 때가 있다. 우연히 옆을 스치던 사람이거나, 오래 함께 걸어온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림자는 말이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묵묵히 서로를 감싸준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림자처럼 잠시라도 곁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햇빛이 옅어지고 그림자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이 사라진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해가 다시 떠오르면 그림자는 또 생길 테니까. 어떤 날은 길게, 어떤 날은 짧게. 어쨌든 나는 계속 걷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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