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옥상에서 바라본 아침
도시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빛이 닿는 곳과 닿지 않는 곳.
마닐라는 그 대비가 유난히 선명한 도시다.
흑백 사진 속 마닐라는 낯설다.
어딘가 거칠고, 단단하고, 말수가 적다.
햇빛이 드리운 풍경마저도 무채색 필터를 두르면 낯선 도시의 골격만 남는다.
건물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서 있고, 거리의 온도는 느껴지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색깔을 가진 지붕들, 공기 중에 흐릿하게 떠 있는 스모그, 한낮의 열기가 스며든 거리. 같은 풍경인데도 색이 입혀지자 마닐라는 한층 부드러워진다.
도시를 바라본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우리는 종종 도시의 화려한 면을 보면서도, 그 이면을 애써 지나친다. 마닐라는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 같다.
고층 빌딩들 너머로 여전히 이어지는 오래된 거리, 부유함과 가난이 맞닿아 있는 풍경.
이 도시를 이해하려면 어느 한쪽만 볼 수는 없다.
빛과 그림자가 얽힌 곳. 그 한가운데를 걸으며, 우리는 도시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