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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마주친 마닐라 밤거리 - 사진으로 담는다

사람들의 친근한 목소리가 좋은 밤

by 행복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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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h GR3X
by Ricoh GR3X

시장, 질서 없는 조화

과일이 수북이 쌓인 좌판 위로 손이 오간다.

바나나는 가지런히 놓였고, 감귤은 그물망에 매달려 무게를 견디고 있다.

망고 더미 사이로 흘러나오는 과육의 단내가 묵직하게 코끝에 스친다.

과일을 고르는 손길도, 흥정을 주고받는 목소리도 익숙한 리듬을 가진다.

한쪽에서는 칼이 수박을 가르고, 반대편에서는 누군가 거스름돈을 세고 있다.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 안에는 분명한 질서가 있다. 시장은 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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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h GR3X

빛과 어둠이 얽힌 거리

마닐라의 밤은 가볍지 않다. 빛과 어둠이 뒤섞여 묵직한 공기를 만들고, 거리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네온사인이 벽을 타고 흐르고, 시장 골목의 희미한 전구가 과일 더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람들은 이 불완전한 빛 속에서 방향을 찾고, 누군가는 트라이시클에 몸을 싣는다.

나는 그 틈을 걸으며 이 도시의 결을 더듬는다.


트라이시클 한 대가 번쩍이는 철제 몸체를 흔들며 멈춘다.

한 여자가 몸을 숙여 올라탄다.

가방에는 큼직한 글씨로 적혀 있다. "WOMAN."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고, 운전사는 거칠게 핸들을 틀며 다시 출발한다. 속도는 빠르고, 불빛은 창문을 스치며 흩어진다. 이 도시는 멈추는 법이 없다. 나는 그 흐름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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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h GR3X

도시는 흐른다

지프니가 엔진을 울리며 어둠 속으로 미끄러진다.

도로는 바람처럼 질주하는 불빛들로 채워지고, 간판 아래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서 있다. 거리의 온도는 낮과 다르다. 더 조용하면서도, 더 생생하다.


마닐라는 그런 도시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흐르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들은 묵직하다. 나는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긴다. 이 밤의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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