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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 나만의 의식

시칠리아 여행기 01 : 여행 준비

by 이지

청소는 우리의 생활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과이다.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에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세상만사 늘어지기만 한다. 설거지를 하는 것조차 회사에서 온 힘을 빼고 돌아온 나에겐 너무도 벅찬 일과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온 집안이 넘쳐나는 물건들로 정신이 없다. 옷장은 옷장대로 엉망이고 여기저기 내가 새로 들여놓은 물건들이 가득 찼다. 물건들이 계속 쌓여 한계치를 넘곤 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방학 때는 여행을 다녀왔다. 취업을 한 후에도 휴가를 내어 꼭 여행을 다녔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집에 머물며 여행을 준비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자연스럽게 지저분해진 집 여기저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매해 여행을 다니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을 정리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여행 전 집 정리가 나만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청소


창문을 모두 열고 가구와 가전 위의 먼지를 털어낸다. 방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책상과 식탁에 널브러져 있는 짐들을 분류하여 박스와 서랍장에 담는다. 옷장과 행거 여기저기 걸려있는 옷들을 다시 옷걸이에 걸고 입지 않을 듯한 옷들은 한쪽 편에 모아 둔다.


화장실에 다 사용한 샴푸통과 버려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락스를 뿌려 화장실 바닥의 곰팡이를 제거한다. 락스를 뿌리고 10분만 지나면 누런 때가 벗겨진다. 샤워기와 솔로 누런 구정물을 밀어버린다. 수건은 모두 빨아 수납장에 넣어둔다.


1년 동안 요리를 하며 생긴 찌든 때를 락스로 닦아 낸다. 엄마가 때마다 보내준 반찬과 오래된 음식들은 모두 정리해 버린다. 설거지를 한 후 그릇은 찬장에 올려 정리하고 엄마의 반찬통은 한편에 쌓아둔다. 이불은 빨아 말리면 뽀송뽀송한 이불이 되어 다시 침대 위에 자리를 잡는다. 마지막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나면 청소가 모두 끝이 난다.


나만의 의식


한 도시에 길게 머무는 여행이 좋았다. 숙소 앞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나서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와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 좋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처럼 여행을 하다 보면 그 도시의 삶을 살아 볼 수 있다. 한 도시에서 길게 머무는 것이 좋았고 긴 여행을 위해 최소 두 주에서 최대 한 달 정도는 집을 비워야 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우기 전에 집을 청소하여 깔끔한 상태로 만들었다. 청소를 하고 나면 힘이 들긴 했지만 나의 삶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을 위한 나의 짐은 캐리어 1개와 백팩이 전부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터전인 집에는 수없이 많은 짐들이 있다. 인생이란 긴 여행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소유하게 된다. 집, 자동차, 옷 등 많은 물건들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내가 사는 이 집이 인생의 캐리어인 셈이다. 평소 정리를 하지 않고 살았다면 버려야 할 물건들이 넘쳐날 것이고 정리를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힘든 일이지만 1년에 한 번 정도 집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리를 마치고 나면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며, 앞으로의 삶도 정돈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짧게는 3일, 길게는 한 달의 여행을 위해 여행 짐을 싸듯 내 인생의 캐리어를 한 번씩 정리하는 것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란 여행을 준비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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