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02 : 여행 준비
대학교에 입학하자 모든 목표를 잃어 욕심도 목표도 딱히 없이 빈둥빈둥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곧 입대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하게 되었다. 평생 처음 겪는 일이며 앞으로도 다시없을 경험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생각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도 사람들을 따라 열심히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부대에 있는 도서관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사색의 시간이 늘어갔다. 목표도 하나씩 생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세운 계획은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많은 여행 서적과 잡지를 읽으며 막연했지만 제대하고 꼭 유럽 배낭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대 후 우연히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대상자로 선정되어 금전적 지원을 받아 유럽으로 떠나게 되었다. 학교의 도움으로 유럽 배낭여행이라는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배낭여행 경험이라곤 한 번 없는 친구 3명과 함께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며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쳤다. 그 후 3주 동안 유럽을 일주했다. 고생 끝에 다녀온 여행은 우리의 진한 추억이 되었고 그 이후로 여행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술 한 번만 마셔도 5만 원, 10만 원은 기본으로 나간다. 술을 몇 번만 안 먹으면 최소한의 여행 경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행경비를 모았다. 책과 잡지를 찾아 읽고 여행 팟캐스트를 들으며 다음 여행지를 결정했다. 첫 배낭여행 후 나는 생활 속에서 여행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여행을 즐겨 다니다 보니 캐리어 짐을 싸고 푸는 일에 익숙해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짐을 싸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를 이동하기 위해 캐리어를 싸고 풀기를 반복하다 보니 짐 싸기의 달인이 되었다. 편하게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여행 박스를 만들었다. 박스 안에는 여권, 여행용 지갑, 자물쇠, 여행용 파우치 등을 담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박스를 열어보면 여행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쉽게 준비할 수 있었다.
캐리어를 꺼내고 박스에서 여행용 물품을 먼저 챙긴다. 세면백에 샴푸, 바디샴푸, 면도기와 샤워타월을 챙긴다. 여권과 여권 분실에 대비해 여권 사본, 여권 사진 2장을 챙긴다. 비행기에서 사용할 슬리퍼, 귀마개, 칫솔, 작은 치약은 백팩에 담는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는 이코노미 좌석도 칫솔, 치약, 슬리퍼가 제공되지만 그 외에 항공은 대부분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챙겨야 한다.) 핸드폰 충전기, 보조 배터리와 태블릿 PC는 필수로 챙겨야 한다. 긴 비행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 위한 필수품이다.
옷을 챙기다 보면 이 옷, 저 옷 모두 입을 생각에 많이 챙기게 된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 2~3개의 옷만 계속 입게 되기 때문에 옷은 최대한 줄여 짐을 싸야 한다. 새롭게 옷을 꺼내는 귀찮음도 있을 것이고 매일 정신없는 여행 중에는 편한 옷에만 손이 가기 마련이다. 옷들은 종류별로 여행용 파우지에 개어 넣는다. 속옷과 양말과 같이 자주 찾게 되는 것들은 끈이 달린 주머니에 담는다. 신발은 슬리퍼 1개, 운동화 2개를 준비한다. 신발은 신발주머니에 따로 담아 챙긴다.
여행의 목적지나 기간에 상관없이 캐리어의 절반만 채우고 나머지 절반은 비워둔다. 여행을 위한 짐은 가벼운 것이 좋다. 빈 공간이 있어야 돌아올 때 새로운 것을 담아 올 수 있다. 여행 중에는 사고 싶은 것들이 넘쳐난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에게 줄 선물들은 물론 사고 싶은 것들이 넘쳐난다. 난생처음 보고, 처음 먹어보는 것들 투성이다. 어렸을 때 어린이날 받았던 과자 선물 세트처럼 캐리어에 선물을 가득 채운다.
짐을 싼 후에 집을 나서기 전에 집을 한번 둘러본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집을 정리하고 내가 매일 사용하는 키와 지갑을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당분간 비우게 될 정리된 방과 내 물건들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여행을 하는 기간 동안에 오직 이 캐리어와 백팩 하나가 나의 전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