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04 : 여행의 준비
가방과 캐리어를 챙겨 집을 나섰다. 1월의 새벽은 고요했고 차가운 냄새가 났다. 10분 거리의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겨울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비행기에서 편하게 있기 위해 운동복에 얇은 겉옷을 걸쳤더니 조금 쌀쌀했다. 최근 발급받은 신용카드의 공항 라운지 혜택을 사용하기 위해 평소 공항으로 출발하는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발했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공항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탑승을 하기 위해 버스 안을 얼핏 보았더니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서서라도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기사님에게 물었다.
“기사님, 자리 있나요?”
“예약했어요? 자리 없어요. 예약 안 하면 못 타요.”
얼마 전부터 공항버스가 예약제로 바뀌었다는 것을 완전히 깜빡해버린 것이다. 공항버스를 보내고 멍해졌다.
버스 예약을 못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골프 가방을 들고 있는 아저씨 한 분도 나처럼 예약을 못한 듯했다.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다급하게 스마트폰 어플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버스 예약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 돼요?”
“우선 버스 예약 어플 설치하시고 예약을 하셔야 해요. 저도 지금 어플 설치 중이에요.”
아저씨는 어떤 어플을 설치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약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 같았다.
“제가 먼저 해보고 도와드릴게요.”
"고마워요.”
얼른 버스를 예약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1시간 후의 다다음 버스를 예약할 수 있었다. 아저씨의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받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빨리 다음 버스가 들어왔다.
아저씨는 버스에서 내려온 기사님에게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기사님, 2자리 있어요? 예약 안 했는데..”
“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기사님은 승객들의 캐리어를 모두 싣고 자리를 확인했다.
“두 자리가 있네요. 캐리어 넣고 탑승하세요.”
아저씨와 나는 서로의 눈을 보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느긋하게 앉아 노래를 들으며 비행기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공항에 도착하면 2시간 넘게 여유가 있었다. 라운지에서 한 시간 정도는 쉴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공항으로 가는 길은 막혔고, 체크인을 마치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학생들의 방학기간인 1월이어서인지 공항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 30분 정도는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을까 싶어 라운지를 찾았다. 그 사이 여행을 같이 떠나기로 한 A형이 공항에 도착했다.
“OO야, 어디야 나 공항 도착해서 체크인 중이야.”
“형, 저는 지금 라운지로 가고 있어요. 얼추 시간 맞을 것 같아요. 게이트 앞에서 만나요.”
라운지를 찾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인천공항의 비행기 탑승구는 굉장히 길고 넓었다. 6번 게이트까지 갔다가 허탕을 치고 반대편의 50번 게이트까지 가서야 라운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A형은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우여곡절 끝에 라운지에 도착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새벽부터 출발한 탓에 배가 많이 고팠다. 컵라면 하나를 끓이고 유리잔에 양주를 따랐다. 10분 만에 양주 한 잔과 컵라면을 해치웠다. '아... 아쉬워라.' 여유 있게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급하게 짐을 챙겨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행기 게이트 앞에서 A형을 만났다.
“사람들 다 탑승했어. 우리가 마지막이야. 얼른 타자.”
라운지에서 비행기 게이트까지 오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늦지 않기 위해 빨리 걷다 보니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오랜만에 A형을 만났고, 자리를 잡고 앉아 A형과 수다를 떨었다. 곧 비행기가 이륙했고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머물며 동네의 골목을 걸어보기도 하고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이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여행지의 주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마트와 시장에는 식재료를 사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내가 사는 서울이나 세계 곳곳의 도시 속 사람들의 삶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다. 잠시지만 새로운 도시에서 그들의 문화를 겪으며 살아보는 과정은 꽤나 흥미롭다.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새롭고 신나는 일이지만 바쁜 일정으로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행을 마무리하는 저녁쯤에는 피곤하고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여행에서 가장 설레고 편안한 순간은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과 북적거리는 공항 안의 설레는 사람들 속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순간 그리고 비행기에 앉아 있는 이 시간일지 모른다.
캐리어와 백백을 챙겨 집을 나서 공항버스에 오른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항에 내려 체크인을 한 후에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다. 게이트에 앉아 인천으로 들어오는 비행기와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탄 비행기가 이륙한다.
여행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일상의 시작이다. 편안한 비행기에 앉아 짧게는 5시간 길게는 14시간 여행을 준비한다. 함께 여행할 사람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여행 책자를 보며 계획을 세워본다. 기내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기도 한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 화장실 앞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린다. 이 모든 것들이 설레고 편안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