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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Oct 23. 2021

수상도시 베네치아에서의 생맥주

유럽 여행기 05 : 이탈리아 베네치아

이탈리아 베네치아

시원한 생맥주를 한 잔 할 때마다 생각나는 도시가 있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만 접했던 베네치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좁은 골목들을 따라 세워진 집들과 수로 위를 떠다니는 곤돌라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수중도시 답게 작은 물길마다 다리로 연결된 것이 또 하나의 장관을 만들었고 다리 아래로는 곤돌라들이 관광객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나르고 있었다. 넓은 물길은 큰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배를 이용해서 건널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1월의 베네치아는 최근에 많은 비가 왔었는지 도시는 물에 잠겼었다고 했다. 넓은 광장에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설치해 놓은 임시 판자 길이 남아 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야간기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맡기기 위해 이동했다. 한국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은 20유로의 저렴한 가격에 최근에 오픈하여 전반적으로 깔끔했고 한식 식사까지 제공되니 대학생 배낭 여행객들에게는 꿈같은 숙소였다. 그 당시 한국에서 맥런치 상하이 치킨 버거 세트를 먹으면 3,000원이던 시절이었고, 반면에 유럽의 햄버거 세트는 기본 15,000원이 넘었다. 엄청난 물가에 햄버거 하나도 사 먹기가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우리는 경비 절약을 위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보다는 한인 민박의 한식 저녁을 챙겨 먹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네치아 한인 민박의 저녁은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으로 한상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제육볶음과 김치는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었기에 어떤 날보다 많이 먹었다. 그날 식사 자리에는 우리와 30대 남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형은 가이드 생활을 하며 유럽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때마침 여동생과 어머니가 유럽에 오게 되어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식사 자리에서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재미있던 에피소드를 신나서 떠들어댔고 어머니가 이야기를 들으시며 가장 즐거워하셨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그렇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형이 맥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형이 한잔 살 테니까 같이 바에 가지 않을래?"

돈을 아끼며 여행을 한 탓에 민박에서 점심, 저녁을 해결하는 날이 많았다. 식사 자리에서 우리의 이런 얘기를 들은 형은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맥주를 사주고 싶다고 했다.


형, 누나와 함께 골목에 있는 작은 바에 들어갔다. 한쪽 편에 슬롯머신이 있었고 몇몇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중앙 메인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주문했다. 형은 우리의 경험을 듣는 것이 좋다고 했다. 대화의 주제는 무궁무진했기에 맥주를 마시며 우린 시끌벅적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유럽에서 살며 가이드일을 하는 형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도전해본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에 맥주를 2잔, 3잔 마셔갈 때쯤 나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위치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들어오는 길에 바의 넓은 유리창을 통해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황빛 조명이 거울에 반사되어 창문 안은 반짝거렸고 그 속에 친구들은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수년이 지났지만 그때 그 창문 속의 행복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니 그때 빛나던 주황빛 조명과 베네치아에서의 시간이 떠오른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젊은 날의 그 추억들을 떠올린다. 젊은 날의 무모함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함께 했던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진다. 나는 오늘도 캔맥주의 안주로 추억을 곱씹었다. 여행의 추억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안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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