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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Oct 24. 2021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속 로마

유럽 여행기 06 : 이탈리아 로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3년이라는 긴 여행을 담은 수필 책이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생활에 가까웠던 그의 하루하루가 녹아든 이 책은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묘사한 유럽에서의 생활은 내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무력감과 함께 자신이 소모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반복되는 생활에 완전히 지쳐버리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그는 연재를 모두 정리하고 와이프와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일본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맡긴 무라카미 하루키. 새로운 집 그리고 그곳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현지의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 그는 이탈리아 로마, 시칠리아, 그리스 산토리니 등에서 머물며 많은 작품들을 지필하고 3년간의 유럽에서 생활을 글로 남겨 ‘먼 북소리’ 수필을 완성한다. 그날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 장을 보고 요리를 한 이야기 등 평소의 일과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매일 로마의 거리를 달리며 느낀 것을 살아 숨 쉬는 듯한 묘사로 표현했다. 이 책은 로마라는 도시에 대해서 환상을 갖기에 충분했다. '먼 북소리'를 보고 또 보며 머릿속으로 책 안에 등장하는 도시들을 상상하곤 했다. 그중 가장 가고 싶은 도시는 로마였다.


이탈리아 로마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항상 로마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소매치기, 바가지, 더러운 거리 등등 여행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은 도시였다. 베네치아로 떠나 로마로 출발하는 우리는 설렘보다 우려가 컸다. 로마의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여 역을 빠져나가 길을 나섰다. 사람들 말 대로 거리는 지저분했고 건물 여기저기에는 낙서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해가질 무렵 도착한 로마의 하늘은 노을이 내려앉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로마는 노란색이었다. 건물에 반사된 빛은 거리를 노랗게 물들고 하늘은 붉은 노을로 뒤덮여 있었다. 오래되어 낡았지만 아름다운 하늘과 로마의 풍경은 그 어떤 나라보다 낭만적이었다.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예약했던 민박집은 30대의 누나가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마친 후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시, 바로 이 로마에 정착했고 결국 여기서 한인 민박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매일 저녁 누나가 차려주는 정성스러운 한식 밥은 그 어떤 민박집보다 맛있었다. 마음이 따뜻했던 누나는 4박의 로마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우리를 기차역까지 배웅해주었고 다음 숙소에서 먹으라며 와인 2병을 선물로 챙겨주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누나의 슬픈 눈과 그 마음이 따뜻했다.


이탈리아 로마

민박집 누나 그리고 그곳에 묵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낯설었던 로마는 곧 우리의 동네처럼 편안한 곳이 되었다. 특히 오래된 건물들과 낡은 거리를 걷다 보면 '먼 북소리'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섬세한 묘사 때문인지 내가 상상했던 로마는 실제와 거의 같았다. 로마의 거리는 나의 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거리와 풍경에 익숙해졌고 책을 읽고 또 읽던 그날이 떠오르며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셨을 법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고 그가 러닝을 했을 낡은 도로 위를 걸었다. 그 순간 결심했다. '먼 북소리' 속의 도시를 모두 가보아야겠다고. 또 목표가 생겼다. 어렵게 내디딘 나의 발걸음이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하고 설레게 했다.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이 내 삶을 흔들어 새로운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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