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07 : 이탈리아 로마
한인 민박에는 한국인을 위한 여행 정보가 가득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을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투어'였다. 로마에서는 야경 투어, 바티칸 투어, 이탈리아 중부 투어, 시칠리아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단연 바티칸 투어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민박집 누나는 로마 여행의 기본적인 정보를 설명해 주었고, 한 시간 뒤 출발하는 무료 야경 투어를 권했다. 신청만 하면 바로 참여할 수 있었고, 마음에 드는 가이드와 함께 바티칸 투어까지 이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야경 투어를 함께하며 숙소 사람들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투어가 끝난 뒤, 우리는 부엌 테이블에 모여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가족을 한국에 두고 혼자 여행을 온 50대 아주머니 한 분, 20대 커플, 그리고 스페인에서 유학 중이라는 누나가 있었다. 그날의 대화는 짧았지만 깊었다.
"내 평생의 꿈이었어요."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웃음은 낯선 도시의 밤공기 속에서도 따뜻했다.
누나는 스페인에서의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아 로마로 왔다고 했다. 그녀가 로마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 바티칸 투어를 다시 하기 위해서였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다빈치의 작품들이 가득했고, 가이드의 설명은 섬세하고 생동감 있었다고 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한 번 더 보고 싶었어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곧장 바티칸 투어를 예약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친구 B의 권유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학 강의를 들었었다. 철학과의 전공 수업이었지만, 교수님의 수업이 흥미롭다기에 함께 등록했다. 학점은 포기했지만, 수업은 예상외로 흥미로웠다. 그때 처음으로 '미학'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
수많은 화가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마네, 모네, 세잔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었다. 그들의 그림은 시간의 흐름과 빛이 흐르는 순간을 잡아두려는 집요함. 그 빛의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친구와 나는 도시마다 있는 미술관을 빠짐없이 들렀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거의 모든 미술관에서 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책에서 보던 그림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캔버스 위에 남은 붓의 결, 물감 요철이 그대로 느껴졌다. 책으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빛의 진짜 얼굴'이 내 눈앞에서 살아났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바티칸 투어 장소로 향했다. 약 스무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고, 어제 야경 투어를 진행했던 가이드가 다시 등장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어폰과 수신기를 나누어 주고 설명을 시작했다.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말을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바티칸 시국으로 이동하자, 실제 입국 심사처럼 짐 검사를 하고 여권을 제시해야 했다. 작은 나라였지만, 그 안에 담긴 예술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은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예술의 언어였다. 시대와 인간, 신과 예술의 이야기를 섞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냈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였다. 30대의 젊은 예술가가 천장 아래에서 시력을 잃어가며 완성한 작품. 고통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그림은, 신의 손끝보다도 인간의 의지를 닮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났다. 작가들의 삶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작품을 통해 시대의 숨결을 배웠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인상주의 그 거대한 예술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아름다움의 본질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친구의 권유로 들었던 미학 강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여행에서 절반의 감동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이해한 만큼 볼 수 있고, 아는 만큼 느껴진다. 그림도, 여행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모르고 지나칠 뻔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일, 그것이 여행의 또 다른 기쁨이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공부는 학창 시절로 끝나지 않았다. 배움은 인생의 한가운데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