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엉뚱한 막내

유럽 여행기 08 : 스위스 인터라켄

by 이지

여행을 오기 전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막내였다. 글로벌 챌린저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도 보고서를 실제로 쓴 건 그였다. 우리는 옆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만 보탰을 뿐이었다. 여행을 와서도 숙소를 찾고 예약을 하는 일은 언제나 막내의 몫이었다. 착하고 꼼꼼한 막내 덕분에 우리는 늘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매사에 진지했던 막내는 귀여웠고 가끔씩 엉뚱한 모습에 우린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존재는 여행의 피로를 덜어주는 작은 활력소였다. 우리는 막내를 흉내 내며 놀리곤 했지만, 막내는 언제나 태연했다.

"형, 그만해요. 뭐가 그렇게 웃겨요?"라며 함께 웃곤 했다. 영어로 대화를 할 때 습관처럼 붙는 'I think... ' 도 귀여운 막내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그의 진지함과 서툰 영어는 묘하게 따뜻했다.



스위스행 기차 안


로마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우연히 일본인 여성을 만났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세 대화가 시작됐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기차는 길었고, 대화는 점점 깊어졌다.


그러던 중, 막내는 갑자기 말했다.

"혼또니.."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그가 늘 말하던 아이 띵크의 일본어 버전 같았다. 진지한 얼굴로 내뱉은 그 한마디가 너무도 '막내 같아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날 이후, 막내의 별명은 '혼또니'가 되었다.



스위스 인터라켄


스위스 인터라켄


스위스 인터라켓에 도착한 우리는 '스위스 프랑'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역 어디에도 환선조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들려온 한국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국의 한 대학교 교수와 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 온 듯했다.


그때 막내는 진지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유랑' 환전하는 곳 아시나요?"

순간, 공기가 멈췄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아, 스위스 프랑이요?" 하자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막내는 진심이었지만, 그 순수함이 너무 좋았다. 그 장면은 우리끼리 지금도 '유랑 사건'으로 부른다.



영국 런던


막내도 가끔은 화를 낼 때가 있었다. 이리저리 시키는 형들 때문에 기분이 상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얼굴 표정이 금세 바뀌곤 했다. 우리는 그 표정을 놀리며 말했다.

"막내야, 인중 커졌어. 너 기분 안 좋지?"

그 말에 막내는 억울한 표정으로 웃었고, 결국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부터 '인중 크기'는 막내의 감정 지표가 되었다.



베네치아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을 지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 한 성당에서 미사 소리가 새어 나왔다. 천주교 신자였던 막내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형, 저 미사 꼭 보고 싶어요. 먼저 가세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길 복잡한데 혼자 올 수 있겠어? 오늘은 늦었어."

하지만 막내는 고개를 저으며 성당으로 들어갔다.


두 시간이 지나도 막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밀려왔다. 그때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형... 저 길을 잃었어요. 도와주세요."

막내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고 우리는 모두 뛰쳐나갔다.


한참을 헤맨 끝에, 우리는 어느 좁은 골목에서 막내를 찾았다. 눈가가 붉게 상기된 얼굴의 막내를 보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 웃음은 안도이자 애정이었다.


여행 내내 막내는 폭탄처럼 예기치 못한 순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엉뚱함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었다.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나누며 그날의 일을 얘기하며 또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막내를 놀릴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그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막내의 웃음은 우리 여행의 배경음이었다. 가끔 그날들을 얘기할 때 그 시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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