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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논리학 : 연역, 귀납, 가설유도추론, 유추

by 삼중전공생

1. 예비 지식들

1.1. 논리학의 3가지 요소


① 개념

② 판단

③ 추론


사유의 가장 단순한 형태인 개념은 머리 속에 떠올린 추상적인 내용에 일정한 형태를 부여하는 인식 작용을 통해 얻어집니다. 가령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을까요? '민주주의'의 원형이 되는 수많은 역사 속의 정치체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들 간의 유의미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칭할 수 있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을 때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이겠지만 '나무', '사자', '농부' 같은 개념들도 비슷한 방식을 거쳐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판단은 한 사태가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음을 단언하는 사유 양식입니다. 판단을 통해 비로소 임의의 한 가지 인식이 완전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추론은 하나의 판단에서 다른 판단을 얻어내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Organon)>에서는 이 추론을 명쾌하고 정확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을 논리학의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1.2. 추론의 종류들


R : 규칙(Regel)

F : 사례(사례들) [Fall(Fälle)]

E : 결과(Ergebnis)




2. 연역, 귀납, 가설유도추론, 유추

2.1. 연역


연역은 필연적입니다.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도 반드시 참일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분석적입니다. 즉 새로운 의미를 가진 지식을 산출할 수는 없습니다.


R : 모든 사람은 죽는다.

F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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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학문은 연역적 추론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습니다. 유명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대표적입니다. 법철학에서는 신칸트주의자인 라드부르흐와 켈젠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존재와 당위의 방법이원론을 주장했습니다. 당위는 언제나 다른 당위로부터만 도출되며, 존재로부터는 도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로부터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는 당위를 도출할 수는 있지만, 영양제가 몸에 좋다는 존재 명제, 즉 그 사실 오직 하나만으로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는 당위를 도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분명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법해석이 순수연역적으로만 이뤄져있다면, 모든 법률문제에는 오직 하나의 올바른 해답만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법해석에서 사실세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고려하고 있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라드부르흐는 당위가 존재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야기'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으로 응수하지만, 여기에서 더 깊게 다룰 수는 없겠습니다.



2.2. 귀납


F :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는 사람이다.

E :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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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귀납은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만 불완전합니다. 귀납이 필연적이기 위해서는 모든 표본들이 관찰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법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귀납을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2.3. 가설유도추론(Abduktion)


E :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R : 모든 사람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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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결과에서 규칙을 거쳐 사례를 추론하는 방식입니다. 형사소송법에서 혐의를 탐문하는 과정이 가설유도추론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E : 이 용의자는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서 녹색 아반떼를 타고 있었다.

R : 범인이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서 녹색 아반떼를 몰고 다니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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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 이 용의자는 범인이다.


가설유도추론은 유추와 마찬가지로 종합적 판단을 제공합니다. 즉 유용하고 추가적인 지식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불확실하고 모험적인 추론이며 개연성만을 보장할 뿐입니다. 예시에서 보듯이 용의자가 녹색 아반떼를 몰고 현장에 있었더라도, 그것이 꼭 그 용의자가 실제 범인이라는 점을 보증을 해주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녹색 아반떼를 몰고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이 2명 이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4. 유추


F :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는 사람이다. 공자, 맹자, 노자도 사람이고, 이들은 죽는다.

R : 모든 사람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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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는 죽는다.


F에서 R로 이행할 때는 귀납이, R에서 E로 이행할 때는 연역이 사용됩니다. 전체적으로 유추는 종합적인 것이 됩니다. 즉 새로운 지식을 산출하는 추론이 됩니다. 그렇지만 단지 가정적 기반에서만 그렇기에 유추는 가설유도추론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하고 모험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었습니다.


F : 디오니시우스는 친위대를 만들었다. 파이시스트라토스, 테아게네스 등도 친위대를 만들었고, 이들은 독재자가 되었다.

R : 독재자가 되려는 사람은 친위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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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디오니시우스도 독재를 추구할 것이다.


유추를 수평추론(Niveausschluß)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오류입니다. 유추는 항상 '제3의 비교점'이 필요하고, 규범(규칙)없이 하는 '사례비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R 없이는 F로부터 E가 도출될 수 없습니다. 가령 개와 사자가 비슷한지 여부는 즉시 대답될 수 없습니다. 어떤 제3의 비교점이 관건이 되는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축'인지 '난혈척추동물'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모르는 한 우리는 그 둘이 비슷한지 아닌지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제3의 비교점은 가치판단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 지점에서 해석학적 순환(der hermeneutische zirkel)이 발생합니다. 가령 빨래건조대는 위험한 물건일까요? 형법 제261조 특수폭행죄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을 폭행하면 단순폭행보다 가중처벌하도록 정해두고 있습니다. 이때 빨래건조대가 위험한 물건인지 여부는 판사가 전형적으로 위험한 물건, 가령 칼과 빨래건조대를 어떤 제3의 비교점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유추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이는 판사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판사가 살아온 생활환경과 역사에 따라 만들어진 선이해에 의존합니다.


가령 판사가 빨래건조대를 위험하지 않은 일상용품으로 평소에 더 크게 인식하고 있었다면, 빨래건조대가 형법상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음을 염두에 두고 다시 조문으로 돌아가 법해석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이를 두고 라드부르흐는 "해석이란 해설결과의 결과이다. 해석수단은 결과가 이미 확정된 후에야 비로소 선택된다"고 하였고, 칼 엥기쉬는 법발견이란 "대전제와 생활사태 간의 지속적 상호작용이자 시선의 왕복"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3. 나가며


법해석과 관련된 네 가지 추론 양식들을 봤습니다. 우리가 이미 일상적으로 별다른 의식없이 사용하고 있는 사유 방식들이지만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때로 부적절한 논리들이 추론 양식의 정확한 양태를 파악하지 못한 까닭에 활용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참이 아닌 전제를 활용하고 있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추론 양식의 틀머리를 유념하여 찬찬히 검토해본다면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주장을 전개함에 있어서 이런 요소들을 알고 있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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