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cleavages)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중요한 정치적 차이를 지닌 집단으로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립셋(S. M. Lipset)과 로칸(S. Rokkan)은 균열구조론을 통해 정당체제의 정렬과 변화를 사회의 균열구조와 연관지어 설명했습니다. 이 균열구조론은 후속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 있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의 균열 구조로 흔히 꼽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일부는 여전히 영향력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퇴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그 '균열'을 하나씩 살펴보고 한국 정당이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전략을 짜야할지 고민해보겠습니다.
1. 영·호남 지역갈등은 건재한가?
대개 지역갈등이 심각한 나라의 경우 그 갈등은 계급1, 종교, 언어, 인종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종교, 언어, 인종 등 특별한 갈등 요인이 없어 비교정치학적으로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이 지역갈등의 토대로 꼽는 것이 '이념성향'인데 실증적인 연구(<표 1>2)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부호면 서울보다 보수적, + 부호면 서울보다 진보적인 것으로 해석합니다. p값이 일정 수준 이하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 보는데, 보다시피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서울보다 이념성향이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지역이 없습니다.
전라도가 진보적이고, 영남이 보수적이라는 통념과 다른 결과입니다. 전라도와 영남이 두드러지게 차이를 보이는 구석이 있다면 대북정책에 있어서 영남이 강경한 반면 호남은 유화적이라는 것 정도인데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이 이념성향의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갈등의 토대가 이념성향이라는 분석은 다소 적실성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지역갈등이 계급갈등과 중첩되어 있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한국은 국가주도의 산업화가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전개되어 지역별로 상이한 계급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도권이 중심지라면, 영남이 중간지로 대지본과 숙련노동자 그리고 도시자영업자가, 호남이 주변지로 소자본과 임시노동자 그리고 농업생산자가 두드러진 계급구조를 가지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계급갈등에 따른 균열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표 1>에서 보다시피 소득수준의 beta 값은 매우 작을 뿐더러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도 않습니다.
또 한국의 경우 노동계급이 보수당을, 자본가계급이 상대적으로 진보당을 지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3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지역갈등은 그 토대가 구조적으로 부실하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지역갈등이 극심한 시기에 영향을 받은 세대가 중장년 이상으로 접어들었기에 이들이 시간이 흘러 세대교체가 됨에 따라 지역갈등 구도도 해소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겠지만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는 그러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 기반 선거 전략을 펴는 정당은 아마도 미래 한국 정치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2. 탈물질주의와 세대교체
잉글하트(R. Inglehart)의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m) 가치론은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사회균열구조와 정당체제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입니다.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발전으로 초래된 풍요에 따라 먹고 사는 문제와 기본적인 생존 보장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며 좌우 계급균열이 완화되었고, 한편 풍족하고 평화로운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가 구세대와 달리 삶의 질, 비핵화, 여성주의, 환경 문제 등의 탈물질주의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정치 무대 전면에 등장하였다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물질주의 시대의 균열은 계급, 종교, 언어, 문화와 같은 사회집단(social groups)이 중심이었으나 탈물질주의 시대의 균열에는 위와 같은 신좌파적 이슈를 추동하는 쟁점집단(issue groups)의 영향력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소위 'PC 운동'의 등장입니다.
서구 사회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실증적으로 입증(<표 2>4)되고 있습니다.
- 부호는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지지하지 않음을, + 부호는 지지함을 나타냅니다. 탈물질주의는 세대교체의 결과이므로 당연히 연령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연령이 낮을수록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추구하게 되는 가치들이므로 소득 수준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즉 소득이 높을수록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이러한 추상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들의 추구는 일정한 교육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에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지지하는 경향 또한 있습니다. 물론 소득과 교육수준은 beta 값이 상대적으로 작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특이하게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성별 변수입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지지하는 경향이 상당히 두드러집니다. 이런 점을 살펴보면 왜 여대에는 페미니스트들이 많은지도 알 수 있습니다.
연령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으며,
가계소득도 높고,
여성이기 때문에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지지하는 모든 성향을 다 집약해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의 구성원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한편 지역변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 지향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련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보수 정당의 미래 : 연령, 성별, 교육수준, 소득을 보라
보수 정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주는 현재 60대 이상 세대는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감안할 때 향후 20년 안에 사라질 것입니다. 통상 80세 이상이 되면 투표율이 급감하기 때문에 이들이 유권자 집단으로서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해질 날은 그보다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보수 정당은 새로운 선거 승리 연합을 구상해야 합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영남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것은 미래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보수 정당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민주당과 정확히 반대되는 포지션을 취하는 것입니다. '반-PC'를 매개로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을 정치세력화 해야 합니다. 즉 중장년 이상, 남성, 저학력·저소득층을 노리는 것입니다.
이 모든 요건이 동시에 충족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라도 충족되면 지지 집단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외연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상황은 인종, 종교 등의 이슈 등에 있어서 분명히 다르지만 대체로 트럼프가 연거푸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정확히 이 집단들을 공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한국의 현실에 적실성 있게 따져보자면, 연령과 성별이 두드러지게 중요한 변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 중장년 이상 남성,
ⓑ 중장년 이상 여성,
ⓒ 청년 남성,
이 세 그룹을 끌어들여야 앞으로 치러질 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중장년 이상에 해당하는 그룹 중 4050 세대는 강력한 민주당 지지 집단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중 가장 먼저 공략하기 좋은 세대는 단연 ⓒ 청년 남성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교육 수준이 높지 않고 소득이 낮은 집단이 특히나 핵심적인 지지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SKY에 전문직 출신으로 청년 인재를 발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남성 청년들의 울분을 이해하고 이것을 고리로 이들을 선동할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의 보수 정당은 다소 앞날이 어둡습니다. 국민의힘은 앞으로 사라져갈 영남 지역주의에 아직도 갇혀 있습니다. 개혁신당은 청년층 남성에 상대적으로 더 소구력이 있지만, 여전히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구조적으로 불리해진 정치 지형에서 보수 정당은 연패의 고배를 마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이념성향을 보수라고 전혀 정체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이 오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1. 여기서 계급(class)이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을 구분하여 이를 때 쓰는 말로, 계층(stratum)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2. 심지연 편저, 현대 정당정치의 이해(서울 : 백산서당, 2015), p.366
3. Ibid., p.356
4. Ibid., p.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