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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쓰는미리 Feb 10. 2021

9. 어마 무시한 삼둥이 임신

뱃속에서 부부북 찢어지는 소리가..


 삼둥이 임신 후 정보의 바다에서 '삼둥이 임신', '세쌍둥이 임신', '삼둥이 임신 배 크기' 등을 하루 종일 검색했다. 하루 23시간을 누워있어야 했기에 그야말로 핸드폰은 내 친구였다. 내가 임신했을 16년도 당시에는 대한민국만세 세쌍둥이가 인기가 많았다. 나도 항상 대한민국만세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즐겨봤었다. 내가 삼둥이 엄마가 될지 몰랐던 시절에는 그저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임신을 하고 보니 대한민국만세 어머니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분이 임신을 하고 제대로 잘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탔었다는 이야기, 너무 아프고 괴로워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았다. 삼둥이 엄마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도 주수가 찰수록 힘들어하는 선배맘들의 이야기, 세쌍둥이 만삭 배 크기를 볼 수 있는 사진 등이 공유되었고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일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세쌍둥이를 임신한 배의 크기는 상상 그 이상으로 컸다. 나는 임신과 출산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초산맘이었기에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미지의 세계였다. 배가 커도 얼마나 커지려나 싶었는데 그 속도가 상당했다. 


 임신 초기, 하루는 친정엄마 옆에서 잠을 자는데 별안간 배가 쏴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잠에서 깨 눈을 감고 있다가 괜찮아진 듯하여 다시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배에서 "부욱-" 하며 뭔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배가 심하게 아팠다. 나도 모르게 "악!!!" 괴성을 지르고 벌떡 일어나 배를 움켜쥐었다. 옆에서 주무시던 엄마도 너무 놀라셨고 나도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때가 12-13주 정도 되었을 시기인데 배가 빠른 속도로 불러왔다. 


세쌍둥이 임신 15주차



 단태아 임신 15주차이면 옷을 입으면 티가 안 난다고들 하는데 (단태아 임신 경험이 없어 잘 모름ㅋㅋ) 나는 15주차부터 임산부 포스가 줄줄 흘렀다. 기분 탓인지 예민한 탓인지 매일 밤 배에서 천둥이 치고 '부북-', '쭈욱' 등의 소리가 났다. 배가 커지려고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겠는데 내 뱃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가들은 잘 자라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매일 밤이 두려워지기도 했었다. 병원에 자주 가서 아가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집에서 거리가 있는 3차 병원에 다니고 있었고 혼자서는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주문을 외우며 마음을 다독였다. 



 한 달에 1번 꼴로 있는 정기진료일에 삼둥이 단톡방에서 교류하던 언니들과 진료 날짜를 맞추었다. 같은 날 오전 시간대에 모두 예약을 잡았고 삼둥이 엄마 4명을 병원에서 만났다. 톡으로 종일 수다하며, 서로를 위로했었는데 실제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엄마 4명에 뱃속 아가들은 12명!!!! 

내 뱃속에 애가 셋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나와 같은 임산부들이 눈 앞에 3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리고 함께 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함께 진료를 받고 병원 테라스에서 사진도 찍었다. 밖으로 나와 톡방에서 꼭 함께 가기로 했던 식당에서 맛있는 밥도 먹었다. 꿀맛이었다.




 17주차에는 정밀초음파 검사를 했다. 나와 비슷한 주수의 삼둥이 엄마들 중 정밀 초음파 검사에서 고생을 한 사람이 많아 긴장이 되었다. 어떤 엄마는 오전과 오후에 나누어 정밀 초음파 검사를 했고 어떤 엄마는 이틀이 걸렸다고 했다. 고생 조금만 하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검사실에 들어갔다. 17주차에는 이미 배가 많~~ 이 나왔기에 누워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바로 누우면 숨이 턱 막혔고 오른쪽으로 누워도 왼쪽으로 누워도 숨 쉬는 게 힘들었다. 아기 한 명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정밀하게 초음파로 들여다보았고 아이들은 가만히 있어주지 않았다. 산모인 나는 최대한 한 자세로 오래 버티다가 의료진에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잘 보이도록 자세를 조금씩 바꾸어야 했다. 하루 23시간을 누워있는 게 일이었는데 그땐 내 마음대로 오른쪽으로 눕고 왼쪽으로 누웠다가 기대어 앉았다가 잡고 일어설 수도 있었는데 같은 자세로 멈춰있어야 하는 게 말 못 할 정도로 힘들었다. 숨이 턱턱 막혀서 후후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렸다. 다리에 쥐가 났어도 자세를 바꾸고 싶어도 열심을 다 해 진료하는 의료진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참고 또 참았다. 결국 정밀 초음파는 3시간이 넘게 걸려 끝났다. 아쉽게도 한 아이 얼굴은 확인하지 못하고 검사를 종료해야 했다. 아이 한 명이 초음파를 들이대면 바로 얼굴을 가려버려서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이 아이는 출산 전 여러 번의 초음파 검사에서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잘 알고 얼굴을 확 가려버릴까 싶어서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었다. 초음파로 보는 얼굴이 너무나 궁금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안 봐도 됐었다. 왜냐하면 얼굴을 그렇-게 가리던 그 아이는 남편 얼굴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얼굴을 안 보여줬지만 난 매일 스포 당하고 있었다. 


거푸집도 그런 거푸집이 없다! 도플갱어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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