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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쓰는미리 Feb 23. 2021

12.세쌍둥이 임신 26주차, 피가 비쳤다.

모니터링 지옥, 분만장으로 입원하다.


 만 28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의 산모였던 나는, 세쌍둥이 만삭 주수인 35주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병원에서도 젊고 건강하니 36주까지 버텨보자는 말도 들었었다. (세쌍둥이 임신의 경우 35주가 지나면 자궁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하루 23시간 이상을 누워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태교였지만, 35주까지 버텨 아이들을 건강하게 낳을 거라는 일념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25주가 지나자 혼자서는 일어나기 힘들 만큼 배가 불렀었다. 배는 남산만 한 데다가 시도 때도 없이 태동하는 세명의 꼬물이들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26주차쯤 되었을 때, 친정에서 여느 때처럼 누워있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피가 비친 것이다. 심장이 쿵 하고 지하 3층까지 곤두박질쳤다. 주변 삼둥이네 중 20주 중후반에 출산을 한 경우들이 있었기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분명 태동도 활발하고 내 컨디션엔 이상이 없었는데 피를 보자마자 배가 찌르르 하니 쏴한 느낌이 들었다. 피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분명 평소와는 다른 징후였기에 병원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는 집에서 조금 지켜봐도 될 징후지만, 고위험임신이기에 바로 병원으로 내원하라고 했다. 퇴근한 남편에게 이를 알리고 바로 입원 짐을 싸서 병원으로 향했다. 짐을 단디 챙기면서 제발 뱃속 아가들에게 아무 문제없기를 건강하게 잘 붙어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25주쯤부터는 차에 타고 이동하는 것 자체가 챌린지였다. 일단 앞좌석에 앉으면 대시보드에 배가 닿을 지경이었고 퉁퉁부은 다리를 쭉 뻗지 못하니 고통스러웠다. 뒷자리에서 누워서 가면 편할까 싶어 옆으로 누워 이동을 했는데 이것 역시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뒷자리에 누워가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남산만 한 배 때문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쏟아지기 일쑤였다. 누워서 가자니 숨이 안 쉬어지고 앉아서 가자니 배가 닿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여기에 뱃속 아기들 걱정까지 더해져 숨이 턱턱 막혔다.



 산과의 경우, 응급상황에서 응급실이 아닌 분만장으로 바로 내원을 하게 된다. 26주 딱지를 붙이고 분만장에 입원을 하려니, 착잡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분만장에 내원하여 배드를 배정받자마자 내배에는 기계들이 줄줄이 달렸다. 자궁의 수축 정도를 체크하는 수축기 1개, 태아의 상태를 측정하는 3개의 태동기가 내배에 부착됐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수축기와 태동기가 떨어졌고 아이들이 자세를 움직이거나 크게 자세를 바꾸면 태동기에 측정이 안 되어 다시 부착을 해야 했다. 배에 4개의 모니터링 기계를 달고 큰 밴드 3개로 고정시켰다.


가운데 수축기 하나, 태동기 3개.. 태동기가 부착된 자리에 아이들이 있었다!


 

 수축기와 태동기는 모니터링 기계와 연결되었고 상시로 상태가 체크되었다. 수축기나 태동기가 하나라도 떨어지면 모니터링이 되지 않았고 간호사실에서 이상반응을 확인하고 바로 내 베드로 의료진이 출동하였다. 떨어지면 다시 붙이고 떨어지면 다시 붙이는 모니터링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래에 쌓여가는 검사지.. 길고도 길다..



 다행히도 아이들의 상태와 자궁의 수축 정도에 이상 신호는 측정되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것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나,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밤새 측정을 해보면서 상태를 체크하기로 했다. 분만장 입원실에는 보호자 입실이 불가했기에 나 혼자 있어야 했다. 게다가 입원한 산모는 나뿐이었기에 커다란 입원실에서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아, 아니 나 혼자가 아니었다. 뱃속 꼬물이들이 있었으니까. 무려 세명의 심장이 내 뱃속에서 튼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섭고 외로운 밤, 그 작은 아이들에게 위로 받았다.


그 작고도 큰 움직임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그래, 아가들아 엄마가 너희를 꼭 지켜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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