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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Oct 24. 2019

DJ DOC와의 음주인터뷰

이 연재글의 첫화에도 썼다시피 나는 Ref나 DJ DOC처럼 클럽에서 좀 놀아본 오빠들의 노래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공부만 열심히 했던 사람들보다는 판을 잘 알고, 대중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DJ DOC을 좋아했는데, 노래 가사가 리얼하고 통쾌했고, 찰떡처럼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이하늘의 토종 랩과 또랑또랑한 발음이 마음에 들었고, 김창렬의 가창력이 좋았다. 방송국의 규제에 따르지 않는 그들만의 개구지고 자유로운 분위기도 좋아했다.

DJ DOC은 데뷔할 때부터 악동으로 소문난 그룹이다. 매니저가 가수들을 콘트롤하지 못해 방송을 펑크내기 일쑤였고, 겨우겨우 생방송 무대에 올려놓으면 헛짓거리를 해서 방송금지 제재를 받기도 했다. 무대 밖에서도 주먹다짐이나 폭력사태에 연루된 일이 자주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매니저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었으므로 그런 부분도 너그럽게 보아넘길 만큼 그들을 좋아했다. 2집부터 테이프를 사서, 그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그들의 음악을 듣고 다녔다. 


그런데 우리 잡지사의 DJ DOC 담당 기자는 DJ DOC를 싫어했다. 한참을 쉬다 나오는 그들을 인터뷰해야 했는데, “으으...DJ DOC!”하면서 몸서리를 쳤다. 권력을 가진 방송국의 룰도 안 따르는데 기자들 말이라고 고분고분 들을 사람들이 아니니 기자들이 싫어할만도 했다. DJ DOC이 컴백한다고 해서 인터뷰 일정을 잡았는데, 약속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고, 선배는 그렇지 않아도 싫어했던 그들에게 넌더리를 내면서, 편집장에게 “그냥 빼버리면 안돼요?”했다. 내가 그 틈을 노렸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날 달라고, 나는 DJ DOC의 팬이라고 했더니, 선배가 반가운 마음 반, 어디 한번 당해봐라 하는 마음 반으로 나에게 자기 취재원을 기쁘게 넘겨줬다. “니가 골탕을 먹고도 걔들을 좋아할 수 있나 한번 보자.”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DJ DOC의 담당기자가 되었다. 

그들이 좋아했던 사진기자의 사진

기자라는 족속들은 영화 시사회에 가서도 막 웃거나 울거나 하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기자답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연예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친근하게 대하거나 잘해주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연예인이 기자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오빠”나 “언니” 같은 호칭은 붙이지 않는 게 상례였다. 

그러나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하늘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썼다. 애교가 있는 타입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가수들한테 잘해주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어차피 나는 아싸기자였기에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평판에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DJ DOC 멤버들이 우리 사진기자를 좋아했다. 밀라 요요비치의 옷을 몰랐던 나에게도 화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한 천사 사진기자 말이다. 그 선배는 미모의 소유자인데다 키도 크고 늘씬했지만,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진을 잘 찍었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니 처음에 시큰둥하게 인터뷰에 응했던 DJ DOC는 잡지가 발행되고 사진이 멋지게 찍힌 것을 보자 우리에게 급 친절해졌고, 내가 오면 사진기자 어디 갔냐고 찾곤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수월하게 DJ DOC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들과의 추억이라면 드림콘서트가 있던 날 밤이 떠오른다. 인기가수들이 총출동한 드림콘서트에 DJ DOC도 출연했다. 그들은 콘서트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밤의 주유소에 내려 우리 잡지와 화보를 찍기로 약속했다. 드림콘서트의 피날레는 출연 가수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합창하는 무대다. 그래서 앞쪽에 출연했던 가수들도 마지막 무대에 서느라고 가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사진기자도 나도 차가 없었으므로 공연이 끝나고 DJ DOC의 밴을 타고 가기로 했다. 우리는 피날레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지막 무대에 오른 가수들 중에 DJ DOC가 없는 게 아닌가! 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있다나? 그걸 보려고 마지막 무대를 째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빡쳤지만 일단 화보를 찍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당장 그들을 쫓아갔다. 신사동에 있던 소속사로 갔는데, 소속사에도 매니저만 있지 가수들은 없었다. 술 마시면서 축구 본다고 건너편 술집에 갔다는 것이다. 지하 술집에 가봤더니, 이미 그들은 술을 마시고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망했다. 그런 얼굴로 화보를 어떻게 찍는단 말인가? 걱정했더니 사진기자가 흑백으로 찍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어차피 밤이라 조명 쓰지 않는 이상 잘 나오기도 힘드니 흑백으로 찍으면 분위기도 있고 괜찮을 것 같았다.

그날 찍은 흑백사진이 없어서 다른 사진으로 대체.^^;;

흑백으로 찍기로 하고 당장 촬영을 하자는 내게 그들은 지금 축구경기가 시작되니 다 보고 찍자고 했다. 축구 본다고 콘서트 무대까지 마다하고 온 사람들에게 촬영하자는 말이 씨알이 먹힐리 없다. 사진기자와 나는 DJ DOC과 한 테이블에 앉아 축구를 봤다. 경기가 시작되자 기분파인 DJ DOC은 한국이 한골 넣을 때마다 골든벨을 울려 이 술집의 모든 손님들에게 양주 한잔씩을 돌리겠다고 했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골을 넣어봐야 한두골 밖에 더 넣겠는가? 작은 술집이라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지 했는데, 그날 우리나라 선수들이 신들린 듯 경기를 했고, 무려 다섯 골을 집어넣었다. 다섯 골이라니!! 단골들만 오는 크지 않은 술집이었지만 적어도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그들은 한국 선수들이 잘 뛰는 바람에 공짜 양주를 5잔이나 얻어마셨다. 


문제는 DJ DOC가 나와 사진기자에게도 양주를 권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해야 했다. 사진도 찍어야 하고,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술 취해서 할 수는 없었다. 거절했더니 거듭 권하던 그들은 급기야 이거 안마시면 인터뷰하지 않겠다, 사진 찍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렸다. 우리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양주 스트레이트를 몇 잔 마셨다. 그날 한국은 압도적으로 이겼고, 경기가 끝난 후 우리(DJ DOC와 취재팀)는 들떠서 인터뷰와 촬영을 했다. 다들 술 마셨고, 혀도 꼬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포즈를 취하고 인터뷰를 했다. 


기사가 나가고 한참 뒤에, 꽤 유명한 연예주간지에 DJ DOC의 인터뷰가 실린 걸 우연히 읽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언제냐는 기자의 질문에 월드컵 예선전이 열린 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축구 경기 본 게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들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고서 마음이 벅찼다. 좋았던 감정은 이심전심으로 통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아니라 사진기자가 기억에 남았겠지만, 어쨌든 그 행복한 순간에 내가 함께 있었고, 그 좋은 감정을 함께 느꼈다는 게 나에게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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