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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Nov 01. 2019

DJ DOC가 표지모델이 되다

우리잡지는 단골 표지모델이 정해져 있었다. 1번 서태지와 아이들. 2번 지누션이다. 은퇴한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으로 창간호 표지를 만들고, 출간 즉시 매진을 기록했기에, 2호는 아이들을 빼고 서태지 독사진으로 나갔다. 부수를 배로 늘렸지만 2호 역시 완판이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전국 각지의 서점들이 현금을 싸들고 총판으로 와서 선금을 내며 우리 잡지 달라고 했단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놓여나기가 쉽지 않았다. 2~3번 정도 그들을 우려먹고 나서 더 이상 표지에 실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선택한 연예인이 지누션이다. YG의 첫 번째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지누션은 사실 그렇게까지 최고의 가수도 아니었고 신인이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키우는 아이돌이었기에 우리와는 특수 관계였고, 덕분에 우리 잡지의 표지를 할 수 있었다. 대세를 무시할 수 없어 HOT와 젝스키스가 표지를 한 적도 있다. 표지모델로 실어준다는데도 HOT가 직접 우리 스튜디오에 행차한 적은 없다. 그들은 최고였고, 너무 바빴고, 조선일보 1면이라면 모를까 월간지의 표지모델 정도로 움직이는 애들이 아니었다. 우리와 사이도 별로 안좋았기에 (사이가 안좋았다기보단 친하질 않았다) 기획사에서 준 사진으로 표지를 만들었다. 


이런 형편에 내가 DJ DOC를 표지모델로 밀자, 선배들은 어처구니없어 했다.

당시 DJ DOC는 ‘디제이덕’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굳이 ‘디제이 디오씨’라고 빡빡 우기며(아마도 HOT를 ‘핫’이 아니라 ‘에쵸티’라 부르는 유행이 마음에 안들었거나 대세를 따랐거나 둘 중 하나지 싶다) 5집으로 돌아왔는데, ‘DOC와 춤을’이라는 노래가 메가 히트해서 어딜 가나 “할아버지 할머니도 노래해요, 그깟 나이 무슨 상관이에요, 다 같이 춤을 춰봐요”라는 가사를 들을 수 있었다. 가히 국민가요였다. 유명했고, 인기 많았으나, 그들은 아이돌이 아니었다. 그때에도 이미 많은 나이였고, 10대들이 좋아하는 그룹은 아니었다. 


나는 콘셉트를 짜냈다. 그냥 표지모델하자고 해서는 편집회의에서 통과될리 만무했으므로 기깔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나는 헐리우드 범죄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죄수들의 머그샷을 찍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자기 수인번호를 들고 찍는 죄수들의 사진은 그 얼마전 히트쳤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포스터 덕분에 한국에서도 눈에 익은 이미지가 되었다. 반사회적인 이미지의 DJ DOC가 빠삐용처럼 죄수복을 입고 종이판때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그들의 이미지에도 맞고 재밌지 않겠냐고 했더니 선배들이 혹했다. 나는 그 판때기에 그들의 노래 가사인 “너 세상에 불만있냐”를 써넣자는 걸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편집회의에서 아이디어가 더 해져 줄무늬 빠삐용 죄수복은 너무 귀여우니 그보다는 웃통을 벗기는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웃짱까고 덤비는 건 DJ DOC의 전매특허였으므로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은 신입기자였던 내가 이제 표지를 진행할 때가 되었다며 표지모델로 DJ DOC를 허락해줬다. 

이렇게 나는 기자가 된지 1년 만에 내 담당 연예인을 표지모델로 찍게 되었다.

표지 촬영하기 전까지 컨셉은 비밀에 부쳤다. 웃짱 까고 찍는다면 난리를 치고 보이콧 할 것이 분명하기에 퇴로를 차단한 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우리 스튜디오에 왔을 때에야 컨셉을 말해줬다. 컨셉에 대해서는 그들도 좋아하고 동의했지만, 웃짱 까고 찍자는 말에는 예상대로 기겁을 했다. 일단 김창렬이 상체가 너무 빈약하여 옷을 벗을 수 없다고 뻗댔고, 정재용은 팔뚝에 문신이 있었다. 우리나라 방송이나 공공매체에서 문신이 허락된 건 정말 최근의 일이다. 표지에 문신이 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포토샵으로 지우면 되니까 오히려 간단한 문제였다. 김창렬은 극구 옷을 벗지 않겠다 했고, 나는 표지판을 들고 찍으니까 어깨만 나온다, 복근 같은 건 표지판에 가려서 나오지도 않는다며 거듭거듭 설득했다. 거듭되는 설득 끝에 그들은 허락했고, 급하게 스튜디오 안에서 팔굽혀펴기를 수차례 하고 사진을 찍었다. 마분지 3장에 ‘너 세상에 불만있냐?’는 글자를 쓰고 그들에게 한 장 씩 들려 찍었다. 표지모델이니까 당연히 내지에도 인터뷰가 실렸고, 내지 사진도 따로 찍었다.


사진과 인터뷰가 끝날즈음 갑자기 스튜디오 안으로 방구탄이 날아들었다. 방구탄이란 투척하면 지랄탄처럼 여기저기를 막 돌아다니며 가스를 분출하는 콩알탄의 일종이다. 안개처럼 뿌연 가스가 분사되니까 깜짝 놀라서 나랑 사진기자는 일단 피하고 보자며 막 뛰쳐나왔는데, 스튜디오 입구를 DJ DOC 멤버들이 몸으로 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알고보니 자기들은 웃짱 깔 생각이 없었는데, 끝끝내 웃통을 벗겨 찍은 우리에게 복수를 하자며 짜고 장난 친 거였다. 어쩐지 곁에서 왔다갔다 하던 코디와 스태프들까지 슬슬 빠져나가더라니...당시 스튜디오에는 나와 사진기자 둘 밖에 없었다. 언제 그런 깜찍한 계획을 세워 방구탄까지 준비해왔는지... 사실을 알고 선배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사고 난 게 아니라 장난친 거라니 얼마든지 장난치시라 하는 마음이 되어 방구탄의 가스를 뒤집어썼다. 

이렇게 즐겁게 촬영하고, 사진도 잘 나왔는데, 훈훈하게 마무리 될 줄 알았던 나의 첫 표지 도전기는 IMF의 그림자와 함께 비극으로 끝난다. 투비 컨티뉴...

사진기자 선배를 마음에 들어했던 DJ DOC는 결국 5집 앨범 사진을 그 선배에게 맡겼다. 

P.S _ 그 표지사진은 없다. 이사를 자주 다니다 보니 옛날 잡지를 끌고 다니기가 힘들어져서 포트폴리오에 넣을 내 취재 기사만 잘라내고 다 버렸는데, 표지를 잘라낼 생각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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