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독서모임 그 두번째
우리도 읽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코로나19로 칩거 기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60년 전에 나온 소설 <페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tvN부터 많은 대중매체들이 <페스트>를 이야기했고, 찾아보니 메르스 시대에도, 사스 시대에도, 심지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는 테러나 사건이 일어나면 단골로 소환되는 텍스트였다. 읽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너무나 현실과 닮아 있으니까.
사회적 거리두기는 4월 19일까지 2주 더 연장되었고, 이번에도 우리는 온라인으로 모여 <페스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 : 페스트 (알베르 카뮈/민음사 or 문학동네)
날짜 : 2020년 4월 11일
참석자 : 현, 정, 윤, 옥, 은, 이, 영, 달 (8명)
아무래도 모임에 번역가가 있기 때문에 외국소설의 경우, 번역을 신경쓰게 된다. <페스트>는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었는데, 참석자들은 민음사판 아니면 문학동네판을 읽었고 (특이하게 이북 다이제스트를 읽은 1인 있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문학동네판이 번역이 낫다고 한다. 실제 읽은 회원들도 그렇다고 수긍했다. 다만 작품해설은 민음사판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모두들 같은 대답을 했다. 지금 읽어서 더 좋았고, 더 괴로웠다고. 현은 '2월부터 곱씹어보며 그때는 왜 그런 감정이었는지 상기해볼 수 있었다'고, 영은 '좋다 괴로웠다보다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고, 이는 '쥐포비아가 있어서 못 읽을 거라 예상했는데, <고기로 태어나서>로 단련된 덕분에 쉽게 넘겼다'고 했다. 역시 이 모임에서 읽은 책들이 꼬리를 물고 도움을 준다.
카뮈는 참전군인이었고, 폐병을 앓았고, 옆동네에 역병이 돌기도 했지만, 역병 자체를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는데, 구절구절 너무나 현실과 똑같아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게 만든다. <페스트>의 끝까지 다 읽어보면, 코로나19의 마지막도 이렇겠구나 유추할 수 있다.
윤 _ 페스트는 무엇보다도 신중하고 완전무결하며 순조롭게 기능하는 하나의 행정이었다. (212)
정 _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예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295)
옥, 정 _ 다시 말해, 재앙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본주의자들이었다.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인 것, 곧 지나가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재앙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사라지는 쪽은 사람들, 누구보다도 인본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리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재앙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사업을 했고, 여행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갖고 있었다. 미래와 여행, 토론을 금지하는 페스트를 그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51)
이, 은 _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건은 모두와 관련된 거였어요.
달 _ 확실한 것은 매일의 노동 속에 있었고 그 외의 것은 실낱들, 무의미한 몸짓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55)
옥 _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 어떤한 존재일지 상상이 갑니다.""알아요"리유가 말했다. "끝없는 패배지요." (172)
리외, 랑베르, 타루 _ 현
리외, 랑베르, 그랑 _ 은
리외, 타루, 그랑 _ 영
리외, 타루, 코타르 _ 윤
리외, 타루, 그랑 _ 옥
리외, 타루, 파늘루 _ 정
리외, 랑베르, 파늘루 _ 이
이럴수가! 역시 개개인의 3대 주인공이 다 달랐다. 신문이나 인터넷의 <페스트> 관련 칼럼에도 쓴 사람마다 3대 주인공이 달랐다.
이어 각 인물에 대해 난상토론이 펼쳐졌다.
현은 랑베르가 "저 여기 사람 아닙니다"할 때, 자신이라도 그렇게 대답했을 것 같았다고 감정이입 했다. 파늘루에 대해서는 윤이 타협할 줄 모르는 유대주의자를 떠올리게 했다며 몸서리치며 싫어했고, 영과 정과 은은 종교인으로서 파늘루의 신념을 인정했고 안타까워했다. 사제에게 '타협'이란 안어울리는 단어이니까. 성장한다는 측면으로 보면 랑베르와 파늘루는 공통점이 있다.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가 우리임을 깨달아 남는 랑베르와 "여러분"에서 "우리들"로 바뀐 파늘루는 각각 성장하는 인물이었다.
가장 공감가고 인기 많았던 인물은 그랑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그랑이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그랑은 죽었다. 작가는 왜 그를 죽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요.'라는 모범 답안, 약혼녀가 떠나버린 그랑이 죽을 것은 처음부터 자명했다는 비정한 답안, 권선징악을 그리지 않기 때문에 카뮈가 좋다는 의견도 나왔다.
리외에게서 아내도, 타루도 빼앗아갔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독자도 있었고, 그래도 가장 중요한 리외의 목숨은 살려줬고, 가장 감염위험이 높은 의사가 살았다는 게 소설적이라는 독자도 있었다. 리외가 산 것은 파늘루 신부의 설교에서 '살아남은 사제'가 현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윤 _ 그랑을 왜 죽였을까요? 리외의 아내는요? 타루는요? 왜 죽였을까요?
그랑에 대해서는 :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현) / 그랑은 첫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고, 이것이 원죄처럼 작용해 죽으리라 예감할 수 있었다. (옥) / 랑베르가 현재형 사랑이라면, 그랑은 과거형 사랑. 아내가 떠났다는데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정)
아내에 대해서는 : 아내가 떠날 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옥) / 해피엔딩은 없다. (현)
현 _ 서술자가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런 구성을 한 이유가 뭘까요? 집중에 너무 방해가 되는데?
서술자를 미리 알려주면 이 소설이 객관적인 서술로 보이기 힘들어서 그랬다고 해설에 나와 있다. (옥)
작가야 머릿속에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독자로서 머리에 쥐나는 줄 알았다. 요즘 웹소설 연재 같았으면 악플테러 당했을 듯. (정) / 나도 구독해지 했을 거다. (현)
정 _ 랑베르가 탈출을 포기한 까닭은?
리외의 아내가 아파서 요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돌렸다고 생각한다. 리외는 아내가 아픈데도 여기서 일하고 있는데, 자신은 여자를 만나러 탈출한다는 것이 염치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정)
랑베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고 사는 사람이므로, 이 곳의 타루와 리외를 사랑하게 되어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옥)
동질화. 애틋함. (현)
현 _ 타루와 리외가 해수욕을 하는 장면. 불안과 공포속에서도 잠시의 해방감 그 후에 찾아올 비극이 예견되었달까? (그래서 서태지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페스트에서는 리외와 타루를 동성애로 설정하기도 했다고. 그러자 영이 진짜 저 장면 뒤에 키스씬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했다.)
정 _ 오페라 공연에서 공연하던 배우가 페스트로 쓰러지던 장면. '광대의 모습을 한 페스트' 인상적.
이 _ 책의 마지막 페스트 종식이 선언될 때. 한 곳은 축제인데 다른 곳에서는 죽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영 _ 리외의 피로감. 사람들이 리외에게 자꾸 말을 하려고 할 때, 그 피로가 느껴졌다.
옥, 은 _ 그랑의 첫문장이 나왔을 때. 나 보는 줄. (현, 정 _ 첫문장 반복해서 나올 때마다 답답해 죽을뻔. 볼로냐 숲 때려쳐! 갈색 암말 따위 집어쳐!) 그러나 그게 인생인 듯. 그랑은 그 문장을 붙잡고 살 수 있었다.
공통 답은 '오통의 아이가 죽어갈 때'였지만, 실은 무의식적으로 쥐에 관한 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속내를 밝혔다. 피 토하고 죽는 쥐, 쥐꼬리를 잡은 경비아저씨 등등. 은은 꿈에 쥐가 나타났다고 한다. 오통의 아이가 죽어갈 때, 아이의 비명에 연이어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는 묘사도 인상적이다.
공통적으로 일단 (살이) 확찐자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은 농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은 주변에 코로나 걸린 사람이 없어 그런지 영화보듯 한발짝 떨어져 보고 있다고 했다.
이는 마스크를 쟁여놓게 될 것 같고, 유럽에 대한 선망의 시선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구가 깨끗해지는 걸 보니 역시 인간이 바이러스였나 싶었다.
정은 해외여행은 못갈 것 같고, 이 나이에 zoom 같은 첨단 시스템을 배워야 하나 갈등하는 중이다.
현은 모델하우스 오픈을 사이버로 했다고 한다.
그 외에 골프는 여전히 거리두기가 되니 치는 사람들은 치는데, 수영은 언제 할 수 있게되나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총균쇠> 생각을 많이 했다고. 역시 여기서 또 한번 우리가 읽은 책은 돌고 돈다.
이쯤 오니 다들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토론은 수다로 바뀌고, 지금 뭘 먹고 있다고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토론을 이어가보겠다고 코타르가 어떤 죄를 저질렀을까?를 발제자가 애타게 물었지만 안물안궁이라는 답변만...ㅠ.ㅠ
코타르는 페스트 시대를 좋아했고, 그 안에서 평등하다고 느꼈다. 이에 최근 엄마들을 보면서 코로나 시대에 덜 우울해지는 증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IMF 때 다같이 망하자 묘하게 편안해졌던 것처럼, 코로나 시대에도 겉으로는 뉴스보면서 걱정하지만 다들 함께 우울하니까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우울증은 나만 힘들다고 느끼는데서 오는데, 다같이 힘든 건 이상하게 위로가 되니까.
이야기는 흘러서 주인공 리외를 여자로 바꾼다면 어땠을까 하는 데로 이어졌다. 병든 남편이 있는 여자 외과의사가 페스트 가운데 만난 젊은 남자와 썸을 탄다, 근데 그 젊은 남자가 판사 집안의 아들이고,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사회 운동을 하며 순수하고 희생적이다. 그러다 남자는 죽는다. 여기까지 나오자 너무 뻔해진다는 사람과 역시 남녀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로 바꿔야 한다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이를 2020 한국으로 가져오자는 현의 의견에 따라, 대구로 파견내려간 의사는 대구에서 안철수를 만나는데...헉, 여기서 왜 안철수가 나오냐며 길길이 뛰는 정에게 "권영진을 넣을 수는 없잖아요?" 하는 사람들. 김부겸으로 바꿔달라는 정. 그렇게 이야기는 그랑의 역의 배우로 누굴 캐스팅할 거냐는 질문으로 이어져서, 김기천, 조우진 등을 제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도재학이 추천되었다. 이 드라마 봐야하나? 흠....
현 _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 하나에도 자기들의 모든 불안과 후회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정 _ "이제 끝날 때도 됐는데"하고 시민들은 되뇌었다.
옥 _ '자주 다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니까요.'
영 _ "페스트와 싸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