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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9. 2020

나무 위의 남작

코로나19 시대의 독서모임 

코로나19의 여파로 독서모임이 한달 이상 없었다. 2월 15일에 <죽음의 에티켓>으로 모임을 한 후 계속 미루고 미루다 이번주에는 온라인으로 한번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하여 토요일 오전 10시. 각자의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혹은 핸드폰을 들고, 다들 단톡방에 모였다. 이번 주의 책은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이다. 크게 두꺼운 책도 아니고, 재미도 있는데, 묘하게 진도가 안나가는 소설이었다.


날짜 _ 2020년 3월 28일 오전 10시 

책 _ 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지음 | 민음사)

참석자 _ 영, 정, 달, 윤, 은, 이, 옥 (총 6명)

완독자 _ 옥, 윤, 영, 정

부분독자 _ 달, 은, 이

발제자 영의 책상 (feat. 유자차)

 

1. 왜 이렇게 안읽혔는지, 전체적인 느낌은 어땠는지?


모두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재미는 있었는데 속도가 더뎠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배경지식의 부족이 가장 컸고, 그 외에도 상상의 나래를 펴다보니 딴 생각을 자주 하게 되어서, 혹은 에피소드 형식이라 한 에피소드가 끝나면 읽을 의욕이 떨어지기도 해서라고. 

이 소설은 1950년대에 쓰였는데, 18세기가 배경이라고 한다. 이탈로 칼비노는 20세기의 상황과 문제를 18세기 유럽 배경에 넣어서 올바른 지식인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설되어 있다. 18세기 유럽은 프랑스혁명이 있었고, 이로 인해 주변국들도 개인의 자유를 크게 느끼기 시작했고, 계몽주의가 퍼져나간 시기라고 한다. 코지모는 계몽주의 시대의 올바른 지식인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았다.

정과 옥은 해설에 동의할 수 없다며, 그냥 가볍게 우화로 읽었다고 했고, 발제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지모는 귀족인데도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평민들과 어울리며 혁명도 하고 지식도 쌓는 듯 일반 귀족들이랑 다르려고 노력한 데 큰 점수를 줬다. 코지모에 대해 옥은 '싫은 걸 참을 수 없어서 고집을 부린 캐릭터', 정은 '일관성이 있는 중2병'으로 정의했다. 


2. 코지모는 여러 번 기회가 있었는데도 왜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을까?


자, 그렇다면 문제적 인물 코지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영은 일평생 나무 위에 살았다는 걸로 봐서 단순한 고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봤다. 이에 대해 정은 신념이 자기를 덮어쓴 경우로 본다고 했다. 작가가 영리하게 사춘기 시절 나무 위에 올라간 걸로 설정해 올라간 첫날 비올라에게 안내려가겠다고 맹세를 했기에 그 약속을 깨뜨릴 수 없었고, 들고양이를 죽여 모자로 만들어쓴 시점부터 나무 위에 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달은 '고집이 길어지면 철학이 되고 인생이 된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옥은 코지모가 계속 나무 위에서 산 이유가 '그럴 수 있어서'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귀족이라는 지위, 동생을 이용할 수도 있었고, 집안에서 계속 물품 조달이 이루어졌다. 달은 그래서 그가 마치 나무 위의 이장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나무 위에서 고고하게 혼자 산 게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장처럼 군림했다고. 정은 코지모를 보면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라고 생각났는데, 그도 숲에 떨어져서 고고하게 살았던 것 같지만 알고보면 집에서 얼마 안떨어져서 본가로부터 물품 조달을 받고 살았다고 한다.

영은 '형이 나무 위로 올라가면서 오히려 가족과의 관계는 깊고 친밀해졌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며, 이 부분이 중2병 자녀로 고통받는 부모들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가족들 간에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초코몽 두 캔과 함께하는 회장님의 책상


3.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 거슬렸던 인물 또는 에피소드는? 

영 _ 디 론도 남작. 우리네 아버지 같아서. 친근하고 귀여움.

정 _ 기사 변호사 삼촌. 무엇도 완성하지 못했던, 터키가 마음의 고향이었던. 더럽게 일 못하지만 불쌍한.

        잔 데이 브루기. 

옥 _ 엄마, 삼촌, 동생, 잔데이브루기. (그녀는 나오는 인물마다 좋다고 했다) 

은 _ 동생 비아조.

윤 _ 제정신인 건 비아조 하나임.

달 _ 비올라가 인상적. 


아직 책을 덜읽은 달이 비올라 이야기를 꺼내자 완독자들이 그녀는 돌아온다며, 끝부분을 꼭 읽어보라며 추천했다.

여기서 잠깐 기사변호사삼촌이 죽을 때 '치아라'라고 외쳤는데,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비아조가 여자 이름일 거라고 추측했지만, 끝내 그게 맞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윤이 네이버 사전을 검색할 결과 치아라가 스페인어로 '구두 밑창 절단용 칼, 칼 가는 강철통'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사변호사삼촌은 터키어를 했다. ㅋㅋㅋ

영은 '인샬라' 같은 말이 아닐까 추측했다. (누구 아시는 분? 터키어로 '치아라'가 뭔 뜻인가효?)


이어 네번째 질문인 '가출을 감행하거나 '거의' 가출에 가까운 행동을 감행했던 경험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으나 다들 비아조 같은 삶을 살아온 관계로, 두 시간 가출, 가'구'(옷장 속에 숨음), 초딩 때 그네 위에 올라간 일들 밖에 없었다. 1박2일 가출한 적도 없는 범생이 집단이었다. 

다섯번 째로 나무 위에 산다면 어떤 부분이 제일 걱정되고, 어떤 부분을 제일 꼼꼼하게 준비할 것 같은가 물었는데, 은과 달은 벌레, 영은 밤을 무서워했다. 사실 한국은 배달이 잘 되는 나라라 나무 위로 무조건 배달시키면 되지 않겠냐는 결론에 도달했다. 

책은 덜 읽었지만 가장 인스타갬성 뿜뿜했던 달의 책상


6. 칼비노는 18세기 유럽이 '괴짜와 기인의 진열장 같은 시대'였다고 한다. 요즘 자신이 보기에 자기 색깔을 포기하지 않는 '기인'이라 부를 만한 한 사람을 꼽는다면?


영 _ 안철수. 어쩐지 나무 위에서 뭔가 연구하고 발표할 것 같다.

윤 _ 낸시랭. 

달 _ 욕 먹으면서도 한길만 걸어서 인정받으면 장인, 인정 못받으면 기인으로 불리는 것 같다.

옥 _ 요즘은 자기 원하는대로 살아도 딱히 기인으로 보지도 않는다.

정 _ 난 이 소설이 기인열전이 아니고 우화라고 봤는데, 그렇다면 코지모에 대적할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다들 괴짜같은 부분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진짜 이상해서가 아니라 "쟤 원래 저래."하는 부분. 이를테면 17년간 데뷔도 못하고 시나리오를 써온 나도 그렇고, 왼손잡이, 채식주의자 등등.

은 _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과자를 젓가락으로 먹는다. 

윤 _ 수석 모으는 사람?

정 _ 카포에라 그 이상한 걸 왜 해라고 했다가 지금 하고 있는 나도 있다.  

이 _ 친구가 요즘 밖에 나갈 때 선글라스, 우비, 비닐장갑을 끼고 나간다.  


계속 눈팅만 하던 이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환호를 받았고, 발제자는 '사람들이 처음에 코지모가 나무 위에 올라갔을 때는 다들 미쳤다고했지만, 점점 코지모를 인정하고 심지어 존경하게 됐다'는 부분을 상기시키며 긍정적인 신념을 밀고나가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정은 '신념이든 습관이든 유별난 것도 평생 자기 삶으로 밀고 나가면 다들 인정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했고, 이에 달이 평생을 걸고 무언가를 할 의지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정은 '이 소설이 그게 대단한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코지모가 대단한 신념이 있어 나무 위에 올라간 게 아니라 달팽이요리가 싫어서 올라간 것처럼.'이라고 부언했다. 

다들 그런 신념이나 습관을 찾아봤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 왼손 젓가락질까지 다양한 습관이 나왔고, 그 중 옥이 저탄고지 식사를 하는 게 바로 그런 것 같다고 하자 다들 동의했다. 옥은 "그래서 좋았나봐요, 우리 코지모."라고 애정을 피력했고, 곧바로 '코지매'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 


7. 코지모의 나무 위 숙소 같은, 아지트가 있었나요?

옥 _ 있었어요. 친구 몇명이랑 이상한 규율 같은 거 써서 코팅해서 가지고 다니고.

달 _ 초딩 때 집 근처 근린공원이 있었는데 그때만해도 공터가 많았는데, 풀숲같은 거 헤치고 들어가면 밖에서 안 보였거든요. 거기에 잡동사니 보물처럼 모아놓곤 했죠. 

정 _ 어릴 때 세들어살 때 주인집 언니 자매랑 창고에 아지트를 만들었는데, 소파 다 치우고 아늑하게 만들었더니, 저녁에 주인집 아저씨가 퇴근하고 와서 보더니 언니 패고 다 제자리 갖다놓으라고....ㅠ.ㅠ 이후로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영 _ 저는 다 쓰고 남은 비닐하우스에 만들었던 것 같아요.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아지트처럼.

은 _ 저는 어릴 때 다락방 있는 집에 살았었는데 그 다락방에는 저 외에 아무도 못들어갔었어요. 어릴 때 억지대마왕이라서 다락방에 누가 들어가면 경기일으키듯 울었대요. ㅎㅎㅎㅎㅎ

이 _ 꾸러기특공대. 친구네 빌라 지하인데 소파도 있고, 그랬던 거 같아요. 꾸러기특공대답게 벨튀도 했었고, 장난전화도 많이 걸고, 가끔 쓰레기도 주웠어요


아지트 이야기가 나오자 아연 활기를 띄는 톡방. 역시나 독서모임 아지트를 만들자는 말이 나왔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했지만 통영이나 강원도 원주, 속초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거쳐, 그래도 퇴근 후 들를 수 있게 서울이나 근교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더니, 결국 로또 되면 작업실 하나 내자는 허황한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상상은 돈 드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작업실이 생기면 뭘 갖다 놓을 거냐는 이야기로 독서모임을 마무리했다.

윤 _ 우쿨렐레

달 _ 미니 냉장고

영 _ 와인셀러

정 _ 드립퍼와 원두커피 


하하하 우린 준비가 다 됐는데, 작업실이 없네? 

그나저나 작업실 전에 모여서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2주 후의 <페스트> 모임은 과연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을까? 

이상, 코로나19시대의 온라인 독서모임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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