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사건이 터진 것은 우리가 이 책으로 스터디를 하기 며칠 전이었다. '임계장 이야기'를 쓴 조정진 작가가 강연 뒷풀이 모임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비정규직들의 문제 제기에 '임계장 이야기'가 지대한 공헌을 했기에, 피해자는 사과를 받고 앞으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피해 사실을 덮어두었는데, 조정진 작가는 그 후에도 여전히 활동을 했고, 이에 폭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참으로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으로 약자이거나 소수자여도 사람은 조그만 권력을 쥐어주면 변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을까? 아파트에서 경비원에게 갑질하는 사람도, 책을 쓰고 이름이 나서 명예를 얻게 된 사람도, 다들 자신이 가진 권력에 취해버린다. 조심해야할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화창한 가을날, 낙엽과 나무와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사직동 카페에서 입맛 쓰게 모임을 시작했다.
책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평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는 무한히 뻗어나갔다.
이는 작가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해서 내내 눈살을 찌푸리며 읽었다고 했다. 책 자체는 <고기로 태어나서>가 생각나는 책이었고, 사람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돌봄카드로 삼각김밥이 아니라 돈까스를 사먹었다고?" "경비원이 무슨 해외여행이야?" 따위의 말들이 가난한 소수자는 항상 그렇게 있어야만 한다는, 우리와 다른 계급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영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청소하시던 아주머니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화장실의 한 칸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고, 거기서 도시락도 드시고 커피도 마시고 했는데, 우리가 화장실을 쓰는 바로 옆에서 밥을 먹는다는 게 죄송스럽고 불편하기도 했다고. 그런데 그 건물에 패션지 업체가 이사를 오고 강남에서 온 그들이 문제를 제기해서 결국 그 아주머니는 화장실 공간을 빼앗겼는데 과연 어디서 밥을 드셨는지 그런 것들이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우리는 저자의 가족과 아들에 대해 조금 분노하기도 했고, 일부는 공감하기도 했다.
그 부분에 대해 옥은 뭔가 하나는 포기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집도 그대로 유지하고 아들 대학원도 보내려니 그렇게 몇시간 자지도 못하고 주야간으로 투잡을 뛰다 몸이 망가지는 거 아니냐고 했다. 뉴스에 나오는 갑질하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고, 이 책을 보니 보편적인 케이스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달은 저자의 가족들이 이 책을 읽고 충격받았으리라 짐작했다. 예전에 이모부와 외삼촌이 경비원으로 일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는 경비 일을 하는 이모부보다 매일 도시락을 싸준 이모의 노고만 치하했던 것이다. 그때 이모부와 외삼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윤의 아빠는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2주만에 그만 두셨다. 그때 엄마가 뭐가 힘들다고 그렇게 그만 두냐고 잔소리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아빠가 어떤 일을 했을지 알게 되어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진은 이 책을 읽으며 경비원들이 불친절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흔히들 은퇴거나 회사를 관두면 "경비라도 하지 뭐"하며 대수롭잖게 말하는데, 절대 경비"라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은은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이 저자가 공기업 출신이고 그런 품격이 드러나서 일반적인 경비원들보다는 덜 당했을 거라고 여겨진다고 했다. 이 분은 그런 취급을 당해오지 않아서 그걸 엄청나게 느끼지만, 내내 그런 생활을 해오신 분들은 이렇게까지 당한다는 느낌은 없지 않을까 싶다며, 이런 시스템을 바꾸려면 파업이라도 하고 힘을 모아야 하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시스템이 안바뀌는 것 아닐까 한다는 신세대다운 의견을 내놨다.
책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고 이번에는 우리가 당했던 갑질 경험담을 이야기해보았다.
정은 이 책에서 저자가 부상당해 해고당한 후 그 회사에서 낸 구인 광고에 "근골격계가 튼튼하신 분"이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던 것처럼, 사장님과 싸우고 회사에서 짤린 후 구인 광고에 "성격 원만하신 분"이라는 문구가 추가된 걸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윤은 너무너무 일이 많아 견디다 못해서 회사를 관뒀는데, 이후 자신의 자리에 무려 3명이 더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며, 혼자서 3인분의 일을 하고 있었다고 억울해했다.
현은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에서 갑질 목격담을 전했다. 아파트 단지 내 자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떨어진 시체를 주민이 먼저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비원이 해고당했다. 왜 시체를 빨리 발견했어야지 주민이 발견하도록 놓아두었냐고.
이는 강일8단지 아파트에 살았는데, 무더운 여름 일요일에 집에 뭐가 고장나서 관리사무소에 신고하러 갔더니, 거기 에어컨을 틀지 않아 런닝바람으로 누워있던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고쳐주러 오셨는데, 관리사무소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된다고 해서 계단으로 우리집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 책은 노년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은퇴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이상적 노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은 70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김수현 작가가 롤모델이라고 했다.
영은 2030년 지구 멸망이 목표이며,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면 이어령 선생님이 롤모델이라고 했다.
포는 임계장, 택배, 도축장 등에서 일하지 않고 노년을 보낼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세상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내가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현은 그 포기나 불편을 '희생'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배려와 선의에 기대지 말고, 법으로 권리와 근무조건을 강제해야 된다고 했다.
임계장 이야기
2020. 10. 31.
참여자 _ 윤, 달, 은, 진, 정, 이, 영, 현, 포 (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