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짤리면 뭐를 하지....말자!
이미 <고기로 태어나서>를 통해 한번 만났던 한승태 작가의 초기작이 이번 모임의 발제책이다.
모임 시간이 정해지기도 전에 단톡방에서 서문에 나와 있는 '퀴닝(Qeening : 체스의 졸이 앞으로 한칸씩 전진해서 여왕이 되는 것)을 제목으로 붙였으나 편집부가 반대해서 제목이 되지 못했지만 나는 퀴닝으로 기억할 것이다'는 저자의 말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윤이 그 제목으로 했어도 좋았겠다는 찬성파의 선두였다면 달은 이런 이야기를 굳이 서문에서 하는 거 싫다고 했다. 편집부와의 이야기를 뒷담화 형식으로 실어놓은 게 꼴보기 싫다는 의견. 어쨌든 '퀴닝'이라는 말은 단박에 봐서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제목으로 부적당하지만(저자가 말콤 글래드웰 급이면 몰라도),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도 그닥 땡기는 제목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고보면 <고기로 태어나서>는 얼마나 잘 지은 제목인가? 갑분고기로태어나서 편집자 찬양 모드가 되었다.
그리고 모임 날, 본격적인 발제가 시작되기 전에 이 책에 대해 크게 두 파로 나뉘어 또 대립이 있었다.
윤과 옥은 이 책이 불편했다고 한다.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노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르뽀로서의 값어치는 충분하지만, 저자가 계속해서 글 속에서 흘리는 대학을 나온 자, 글을 쓰는 자, 그리하여 나는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자의식이 느껴져서 굉장히 불쾌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과 현은 20대의 남자가 이 정도 편견도 없을 수는 없으며, 내가 20대에 썼던 글을 봐도 지금 화끈거리는 것투성이라서 2012년에 나온 이 책을 지금의 눈높이로 보는 건 좀 부당한 감이 있다고 쉴드쳤다. 사람은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그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지금의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아마도 이런 대립은 책을 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이 책에는 비하적인 표현들이 있고, 저자는 오이순을 똑똑 따놓았을만큼 일을 못했다. 다만 그 부분을 작가로서 솔직하고 생생하게 묘사했다고 보는 독자와 만약 저런 놈이 내 주변에 있었다면 상종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서로 달랐을뿐이다.
이미 시작하기 전부터 열띤 토론을 벌인 우리는 본격적으로 발제자의 질문에 답을 했다.
Q 여기 나오는 일들 중에 죽어도 이것만은 못하겠다 하는 것이 있다면?
어느 하나 녹녹치 않은 일들이라 대체적으로는 다 못하겠다는 의견이었지만, 그래도 굳이 택하자면 돈사일을 못하겠다는 쪽과 꽃게잡이를 못하겠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돈사는 시각과 후각적으로 너무 충격적이라 못하겠다는 의견이었고, 꽃게잡이배는 멀미가 무서운데다 결국에는 돈을 받지 못했다(임금체불)는 것 때문에 못하겠다는 의견이었다. 그 중 윤은 예전에 공장에서 일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가공팀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Q 우리 멤버 중 이런 잠입취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번외 질문)
다들 정을 지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쿨럭~ 제가 모 유기농업체에서 했던 일이 그 일 비슷한 일이기는 했는데...일을 너무 못해서....그랬더니 은이 자신은 잠입해서 일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는데, 글을 쓰는 것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은이 잠입취채하고 녹음기를 정에게 건네면 정이 글을 쓰면 되겠다는 결론.
Q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밑줄그은 부분은 어디인가?
161 _ 평생을 손님으로만 살아온 사람들은 손님을 상대하면서 느끼는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분명 "화가 나는데 웃어야 했어"라는 말은 "열두 시간이 넘도록 통발을 쌓아야 했어" 하는 말보다 덜 심각하게 들린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것이 통발을 들어 올리는 것만큼 버거워진다.
: 편의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감정노동이 어떤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묘사들이 정확하고 와닿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는 잘못 배달한 택배 아저씨와 만난 적이 있는데, 그럴 일이 아닌데 너무 화를 내길래 도대체 왜 저러나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택배가 감정노동이냐는 질문에 달은 너무나 감정노동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줬고, 자신은 이 부분에서 편의점이나 주유소 알바 만큼이나 고시원 생활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다들 연두색바지에 몸서리쳤다. ㅋㅋ
220 _ 왜 더럽고 힘든 일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과소평가되는 걸까?
: 왜 임금은 일에 따라 책정되지 않고, 학력 같은 일과 상관없는 것에 따라 책정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진짜 중요한 육아, 살림 같은 것에 아예 임금이 책정되지 않은 부분 역시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275 _ 비루한 특권 의식이란 건 먹이를 노리는 악어와 같아서, 평소엔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거기에 있다.
: 저자가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지 않으며 잘 지낸다고 하다가 몽골인 모름이 돈사에서 "다 도망치잖아! 똑바로 해!" 하자 그 순간에 때릴 뻔하고서 쓴 글이다. 언제나 자신의 밑바닥은 갈등 상황에서 드러난다.
234 _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 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를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 이 부분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오랜 회사 생활을 해오다가 최근에 그만둔 현과 직장을 여러번 이직한 은이 공감했다. 너는 왜 이렇게 자주 회사를 옮기냐는 말을 듣던 은은 이 구절을 읽으며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Q 자신의 일을 고르는 기준을 말해보시오. 예) 기업, 업무, 급여, 복지, 동료, 자율성, 기타 중 best3 우선순위 고르기.
은 _ 1 업무 2 복지 3 연봉 : 복지가 연봉에 앞서자 다들 놀라워했는데, 은의 말에 따르면 복지가 좋은 회사 중 연봉이 나쁜 회사는 없다고 한다. 오오..고개가 끄덕여지는 신박한 이야기.
달 _ 1 업무 2복지 3 동료 : 복지가 좋으면서 돈은 얼마 안주는 회사가 자기 회사라고. 이 회사를 오래 다닌 이유가 너무 이상한 사람이 없고 동료가 좋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회사를 관두는 건 결국은 사람 때문. 그러므로 사람이 괜찮은 직장이 좋은 직장.
정/영 _ 1 급여 2 자율성 3 동료 : 업무는 너무 당연해서 뺐음.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매일 일정표 보내고 전화해서 쪼는 인간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과는 두번 다시 일하지 않음. 마감을 지키면 중간에 내가 뭘하든 노터치하는 쪽이 좋음. (둘 다 프리랜서라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
예 _ 1 자율성 2 급여 3 복지 : 자율성을 침해하는 사장님 밑에서 일하다보니 자율성에 대한 갈급이 커짐.
윤 _ 1 급여 2 신뢰 3 윤리성 : 회사에 들어올 때 했던 약속을 지켜주는 회사가 좋다. 그것이 결국 윤리성이라는 문제와도 이어진다.
진 _ 1 급여 2 동료 3 일터 : 급여, 동료 등 다른 분들과 다 비슷한데, 직장에 지방에 있는 건 싫다. 서울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에게는 일터(장소)가 중요함.
사실 미리 나눠줬던 질문들보다 사이사이에 나온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 중 기억나는 거 몇가지를 추려둔다.
이 책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게 아니면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생계를 걸고 일하는 사람들인데, 저자는 글을 쓰겠다는 이유로 그들을 제3자 입장에서 관찰하고 건성건성 일을 하는 것도 마음에 안드는데, 그 글을 소설처럼 읽고 있는 내가 더 불쾌하더라는 의견이 있었다.
회사에서 나가면 정글이라 되도록이면 회사에 길게 붙어있어야겠다는 (아직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의 말에, 직장을 최근에 관둔 이는 "길게 버티지 마"라고 충고했다. 자신이 조금 더 일찍 회사를 관두고 우물 안을 벗어났다면 할 일이 많았을텐데 너무 늦게 관둔 것을 후회한다고.
요즘 회사에서 파리목숨을 실감하고 있는 누구는 주변에 회사 관둔 사람들이 창업을 하고 가게를 차리고 하는 걸 봤는데, 죄다 망했다며, 그런 모습을 보니 "회사에서 잘리면 뭐를 하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꽃게잡이배에서 일하지 않아도, 돈사에서 돼지똥을 치우지 않아도, 멀쩡한 직장에 다녀도 다들 불안하고 힘들구나 싶은 코로나 시대의 노동자들이었다.
2020년 11월 14일
<인간의 조건> (한승태 | 시대의창)
참석자 _ 예, 윤, 진, 달, 옥, 은, 영, 현, 정 (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