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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Aug 07. 2022

일을 할 때 명상이 필요한 순간

명상살인

<명상살인>은 변호사 출신이자 방송작가 출신인 카르스텐 두세가 쓴 추리소설이다. 그는 방송작가를 할 당시 독일TV상, 코미디상 등을 수상했다고 한다. 작가의 이력에서 느껴지듯, 주인공 디멜은 변호사이며, 모든 국면에서 블랙 코미디가 넘쳐흐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실존하지 않는 '추월 차선에서 감속하기'라는 명상도서의 중요 문장들을 챕터 제일 앞에 넣어두고, 그 문장들에 따라 마음을 다스린 디멜이 그에 맞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월 차선에서 감속하기'라는 책 제목도 '부의 추월차선' 등의 베스트셀러를 패러디한 것이고, '명상 살인'이라는 제목 역시 전혀 붙을 것 같지 않는 두 단어를 붙여 지은 역설적인 제목이다.  

우리는 한달 간의 방학을 앞두고 인사동 전통한옥에서 엠티(요즘은 아무도 엠티라하지 않고 워크숍이라 한다지만, '워크'에 치를 떠는 멤버들이 엠티로 주장)를 하며 이번 분기 마지막 책으로 <명상살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낮술을 충분히 마신 후 독서모임이 시작돼서, 기록도 불충분하고, 기억도 뚝뚝 끊기지만, 시간이 지나기 전에 얼른 불충분한 기록과 기억을 끌어다가 남겨본다.




이 책은 챕터별로 요쉬카 브라이트너가 쓴 '추월차선에서 감속하기 : 명상의 매력'이라는 가상의 책에서 발췌한 문구들이 나오고, 거기에 맞춘 문제해결방식을 선보인다. 우리도 각자 현재 직장과 일, 혹은 인간관계에서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혹은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와닿은) 문구들을 발췌해 선보이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위임

"주관적으로 모든 게 너무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면, 객관적으로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혼자서 감당하기엔 좀 무리인 것이다. 주관적으로만 놓지 말고 객관적으로도 과제를 수행하라. '놓아주는 것'은 좋다! '놓아주는 것'이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손을 놓는다는 것'이 '상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마법의 단어는 바로 '위임'이다. 과제 중 일부분을 당신만큼 신경 써서 처리해줄 사람에게 넘겨라. 그러면 당신이 부담하는 시간은 절반이 되고 최종적으로 두 배의 결과를 돌려받을 것이다."

최근 우는 회사 대표가 바뀌었다. 이전까지 자신이 권한을 가지고 진행했던 일들을 대표가 일일이 다 체크하고, 간섭하고,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때 이 '위임'에 관한 문구를 읽고, 내려놓기로 했다고 한다. 이 직장에서의 경력은 새 대표보다 자신이 길지만, 대표 입장에서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어쨌거나 회사를 위해 일하는 마음은 같으니까. 이에 대해 다수의 멤버들이 결국 결정권자는 사장(혹은 광고주)이고, 그들의 마음을 읽고 맞춰주는 게 가장 삽질을 덜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해주었다. '주인의식을 내려놓으라'가 십수년 직장생활을 한 사람들의 현명한 조언.


근심

"우리 근심의 원인은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다. 벌어진 일을 머릿속에서 정리할 때 우리는 겁에 질린다. 어떤 사건도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평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는 성격인 달은 이 구절에 꽂혔다. 광고주와 일한지도 어언 15년이 넘어가는 경력자로서 달은 최근 이제껏 겪지 못한 일을 겪었다. 대표가 있는 자리에서 팀장의 무능이 탄로나서 그런지, 팀장이 대놓고 외모 지적을 하고, 전체 메일로 거짓말을 섞은 저격 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한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 없었기에 충격에 빠진 달에게 다른 멤버들은 자신이 겪었던 그보다 치사한 상황들을 들려주었다. 갑을로 일을 하는 관계에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데 일말의 위로를 얻고, 상대는 치사한 방식으로 공격했지만 차분하게 대응하여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일단락 된 것으로 충분히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마침 이 책에는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나와 있다. "가식으로 포장한 무례함 앞에서는 단호해져라. 부당한 요구에 맞서는 가장 좋은 대답은 이러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해줘서 고맙습니다. 아쉽지만 그 소원은 이뤄줄 수가 없군요."


싱글태스킹

"당신이 문앞에 서 있다면, 그것은 그저 서 있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부인과 다툰다면, 오로지 다툼에 몰두한다. 그것이 명상이다. 만약 당신이 문 앞에 기다리는 시간을 부인과의 언쟁을 떠올리는데에 사용한다면 그것은 명상이 아니라 멍청한 짓에 불과하다."

"풀을 더 빨리 자라게 하려고 위로 잡아서 들어올릴 수는 있다. 자라는 내내 풀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도 풀의 성장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단 하나의 선택지는 풀을 좀 더 나중에 깎고 그때까지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요즘 글이 써지지 않아 자존감이 마이너스에 수렴하고 있는 정은 책의 첫 챕터에 나오는 이 구절에 꽂혔다. 글이 안써지면 차라리 그냥 놀기라도 하면 리프레쉬가 될텐데, 놀면서도 계속 글 못쓴다는 생각을 하느라 죄책감만 늘고, 편하게 놀지도 못하니 이거야 말로 '멍청한 짓'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제작사로부터 어떠한 피드백을 받고, 어떤 말에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은 그런 식의 표현을 하면 어쩌냐며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 으쌰으쌰를 해주었다.


궁극의 프리랜서

"할 일을 알아보지 마라. 그 일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 사람은 자유롭지 않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강박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그냥 하지 않는 사람만이 자유로운 자다."

직장생활의 애환에 관해 듣던 포는 "으아...절대 직장생활 다시 못해"하더니, 프리랜서로서의 덕목에 대해 말했다. 프리랜서 초창기에는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기 싫은 일들도 꾸역꾸역했지만 이 책에 나오다시피 진짜 자유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그냥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포는 일을 찾는 대신 일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한량의 삶을 즐기고 있다고. 

이 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산책을 나가라는 조언은 항상 아이디어가 필요한 광고업계에서 실용적인 팁이며, 긴장했을 때 속으로 미소짓기 또한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우리는 직장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갑과 을, 직장인과 프리랜서, 상사와 신입사원 등 각자의 위치에 따라 자기 역할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상 광고주에게 "네, 저희가 왜 그랬을까요?"하면서 얼른 일을 쳐내는 은의 필살기를 들으며 배우기도 했다. 

실컷 일 이야기를 하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이 책의 백미는 유치원 이야기 아니냐며 유치원이 나오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로 읽혔을 거라고 하자, 아직 책을 절반도 읽지 못하고 온 멤버들은 꼭 뒷부분을 읽어보겠다고 했다. 참고로 시리즈 3권까지 다 읽은 입장에서 2권까지는 재밌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은 3권이 아니라 4, 5, 6....10권까지도 나올 수 있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명상과 살인을 엮은 미스터리 스릴러를 읽고, 우리의 일과 직장에 대해 토로하며 이번 분기 마지막 독서모임을 마쳤다. 한달 간 쉬고, 추석이 지난 후 다시 모이는 그날까지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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