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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 피렌체의 밥아저씨는 하루에 얼마를 벌까?

이탈리아 피렌체 1

by 김숲


피렌체의 밥 아저씨는 하루에 그림 몇 개를 팔아 얼마를 벌까?


이렇게 무례하고, 수준 낮은 질문이라니. 하지만 숙소 앞 광장에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밥 아저씨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6일간의 토스카나 소도시 탐방을 끝내고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에 입성했다. 선팅도 블루투스도 없었던 이름 모를 브랜드의 자동차와 시원하게 작별을 하고 우리는 다시 뚜벅이가 되었다. 일주일 간 머무를 에어비앤비 숙소는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주거지역의 오래된 건물 3층이었다. 낑낑대며 계단으로 짐을 옮길 때만 해도 몰랐는데, 거실의 창문을 열어보니 바로 맞은편에 작은 광장이 있다. 신경 쓴 조경도 대단한 조형물도 없는, 주중에는 사람들이 가로질러 다니고, 주말에는 작은 마켓이 열리는 정말 실용적인 광장말이다.


뜻밖의 숙소 덕분에 일주일 내내 아침저녁으로 이 동네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3층이라고 해도 창문을 열면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들리고, 커튼 없이는 지나가는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렇게 조심스레 동네를 관찰하던 중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피렌체의 밥 아저씨다.


피렌체 밥 아저씨의 길거리 좌판

게으른 우리가 겨우 눈을 떠 커튼을 여는 오전 8시 즘 이미 출근을 완료해 그림 좌판을 깔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저씨. 매일 피렌체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에도, 그리고 우리가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커튼을 닫는 밤에도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저씨. 항상 숙소 앞 광장의 한편을 지키고 있는 뽀글 머리 그에게 ‘밥아저씨’라는 별명을 지어 드렸다. 궁금했다. 여기는 관광 중심지역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만 지나다니는 곳인데 도대체 누구한테 그림을 파는 걸까? 하루에 그림 몇 개를 파는 걸까? 이렇게 살면 생계는 유지되는 걸까?


금요일 밤이 되자, 평소 일찍 문을 닫던 광장 옆 펍과 식당들이 늦게까지 문을 열었다. 밤 아홉 시경 숙소로 돌아오는 길,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을 보며 취객이 새벽까지 소란을 피우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취객은 무슨, 우리가 숙소에서 영화 한 편을 끝내고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새벽이 될 때까지 한 무리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 무리는 손에 딱 맥주 한 병씩을 들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밥 아저씨는 계속 그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무슨 금요일 밤의 (건전한) 풍경이란 말인가?! 피렌체의 불금은 정말 낭만적이구나.. 하며 잠에 들었다.


드디어 손님을 맞이한 밥아저씨!!


“빨리 와봐. 밥 아저씨 드디어 손님 왔어!"

지난밤 새벽까지 광장에 있던 젊은이 중 한 명이라도 그림을 샀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며 주제넘게 밥아저씨의 생계유지를 걱정하던 토요일 아침, 그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후다닥 달려가 보니 정말로 밥 아저씨가 젊은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감격에 겨워 창가에 달라붙어 십 여분 그 모습을 구경하다 정신을 차리고 아침을 먹고 나설 채비를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밖을 보니 초상화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꼬마 손님 초상화가 바닥에 있는 그의 컬렉션에 추가되어 있다. 아… 옆을 보니 밥아저씨 바로 옆에서 중고책을 팔고 있는 이동식 서점 아저씨의 딸이다. 주말을 맞아 아빠가 장사하는 곳에 놀러 온 아이가 아빠친구인 밥아저씨의 모델이 되어 준 것이다. 이쯤 되니 밥아저씨가 그림을 판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사라지고, 주말에도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의 성실함과 열정에 경외심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간 숙소에서 관찰한, 그리고 밤낮없이 돌아다니며 경험한 피렌체와 밥 아저씨는 꼭 닮아있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겨우 일주일을 지내며 무엇을 제대로 보았겠냐만은, 그래도 천편일률적으로 현대화된 도시들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도시가 풍기는 어떤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다. 피렌체는 중세시대 가장 번영했던 도시이기 때문에 중세의 기술 수준과 인구 규모에 적합한 크기로 구성되었고, 지금도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피렌체에서 가야 할 곳들은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좁은 도로는 인도와 차도의 폭이 비슷하고, 두오모를 둘러싼 광장에는 밥아저씨 같은 화가들도 가득, 주저앉아 샌드위치와 젤라토를 먹는 사람들도 가득이다. 덕분에 우리도 편한 마음으로 걷고 또 걷다 힘들면 잠시 주저앉아 쉬며 편한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아, 이런 도시의 이런 호흡 속에서 밥 아저씨도, 그리고 그 옆에서 일주일 내내 중고책을 파는 아저씨도 있을 수 있는 거구나.



장사를 한다면 하루에 최소 어느 정도의 매출을 올려야 최소 얼마의 수익이 날 것이며, 내가 이 정도의 노동력을 투여하면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야 수지타산이 맞겠다 -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기준으로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밥 아저씨를 걱정하다니. 내 오지랖과 오만에 살짝 반성하며 그날부터는 밥아저씨가 그림을 몇 개 팔았는지보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좀 더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로마보다 커피도 맛있고, 음식도 더 맛있고, 예술로 가득하고, 개성 있는 책방도 많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피렌체의 매력에 빠질 때 즈음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여행이 끝난 지 일 년 반이 지난 지금도, 피렌체를 떠올릴 때 두오모보다 우피치미술관보다 먼저 밥 아저씨가 떠오른다. 세상에는 효율성이나 수익성 같은 옹졸한 단어로 재단이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현대화나 전자화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도시가 있고 또 아닌 도시가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사람과 도시. 언젠가 다시 피렌체를 찾는다면 꼭 그 소박한 광장의 같은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을 밥 아저씨를 보고 싶다. 그때는 꼭 그림 하나를 사고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다. 하루에 그림을 몇 개 파는지가 아니라, 하루를 그림으로 가득 채우는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 같은 이야기 말이다.


* 철퍼덕 바닥에 앉아 피렌체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곳


- 미켈란젤로 언덕/전망대 Piazzale Michelangelo


피렌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

거의 모든 곳을 걸어서 다녔던 피렌체에서 유일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했던 곳. 아르노강 남쪽 언덕 위에서 피렌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광장이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곳은 아니지만 다비드 상 같은 미켈란젤로의 주요 작품들이 복제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일단 올라가면 두오모, 베키오 다리, 아르노 강이 어우러지는 전망이 너무 환상적이라 작품들에는 눈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매일 밤 전망대의 계단에서 버스킹 공연이 있는 듯한데, 석양이 질 무렵 계단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아 공연을 들으며 바라보는 피렌체가 정말 아름답다.


- 아르노강변 베키오다리 Ponte Vecchio


베키오 다리 중간에 걸터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아르노 강의 주인공, 1345년에 지어져 거의 700년의 역사를 품은 베키오 다리는 이름 자체가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 특이하게 다리 양측으로 3층이 넘는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서있다. 과거에는 이 다리에 정육점, 가죽 공장들이 있어서 악취가 심했는데 메디치 가문에서 강 아래 피티 궁전과 베키오궁전을 연결하면서도 냄새를 피하기 위해 통로를 만들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귀하신 분들이 지나가는 곳에 정육점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보석상으로 다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지금도 고급 시계점과 보석상들로 가득하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다보면 양쪽으로 뻥 뚫린 곳이 나오는데, 다들 다리에 걸터앉아 아르노강을 즐기고 있다.



- (아마도) 1년 내내 밥아저씨가 상주하는 숙소 앞 Loggia del Pesche


주말에 장터가 된 Loggia de Pesche 옆 광장

밥아저씨가 그림을 늘어놓는 곳은 사실 Loggia de Pesche라는 나름 오래된 건축물이다. 메디치가에서 아르노 강변의 생선시장을 위해 설계한 아치 구조물인데, 도시 재건축 과정에서 해체된 후에 20세기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생활감이 훨씬 더 한 일상의 공간이다. 밥 아저씨는 이곳 한편에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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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변호사커플, 때로는 집 안까지 타인의 삶을 가지고 들어오는 우리가 오로지 우리를 위해 보낸 66일의 기록. 같은 곳의 기억을 한 명은 글로, 한 명은 사진으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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