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3
피렌체- 두오모 지붕에 올라 사업을 생각하는 남자
피렌체에서 빠질 수 없는 코스, 두오모를 오르는 날이다. 사실 ‘두오모’는 도시의 중심이 되는 대성당을 말하는 고유명사이고, 우리가 피렌체에서 두오모라고 부르는 곳의 진짜 이름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피렌체 두오모의 상징은 바로 40층 건물에 상응하는 높이의 동그란 돔 지붕인데, 얼마나 큰지 어느 골목에서든 불쑥불쑥 나타나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피렌체에서의 일주일 내내 바라본 두오모에 한 번은 올라보고 싶었다. 400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고 올라 도착한 두오모 지붕에서 노을 진 피렌체를 여유롭게 눈에 담고 내려왔다. 지금도 이렇게 멋진데, 500년 전엔 얼마나 높았고, 또 얼마나 압도적이었을까? 그날 밤 두오모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떤 영역에서든 틀 자체를 깨고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대전환이 인류를 나아가게 하는 거 아닐까? 이미 정해진 틀 내에서 나 하나의 안위를 위해서 하는 일 말고, 나는 그런 전환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
여행 전 퇴사를 감행한 그다. 이직할 곳을 정하지 않고 퇴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생각이 많은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오모에 올라 사업의 방향을 생각했다는 건 좀 오버같은데... 대체 두오모의 어떤 부분에서 그런 걸 느꼈냐 되묻자 르네상스 이야기를 꺼낸다.
두오모에 올라 ‘패러다임의 전환’을 생각했다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 중심의 중세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일컫는 르네상스, 그리고 그 전환을 건축을 통해 구현해 낸 브루넬레스키라는 한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1298년에 착공해 1400년대에 이르러 본체가 거의 완성되었지만 막상 가장 중요한 지붕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경쟁상대인 옆 도시 시에나, 피사보다 더 큰 규모로 지었지만 그 규모에 걸맞은 지붕을 올릴 기술이 없었던 탓이다. 이때 브루넬레스키가 등장해 위로 쭉쭉 뻗는 기존의 고딕방식이 아니라, 고대 로마 건축양식과 당시의 기술을 결합해 돔 모양의 지붕을 완성했다. 이뿐만 아니라 브루넬레스키는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하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원근법’을 건축에 반영한 사람이기도 하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는 원근법은 이후 건축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등에도 적용되어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 두오모에 올라 시대의 전환을 생각하게 할 만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이번 글을 적으며 브루넬레스키에 대해 좀 더 찾아보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원래 건축가가 아니라 금세공인이었던 그는 스무세 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 피렌체 두오모 바로 맞은 편의 피렌체 세례당의 북문을 장식할 청동문 디자인을 두고 열린 경쟁에서 패배하며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로마로 떠나 거의 1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표적인 돔 형태인 판테온과 같은 고대 로마 건축물을 연구한 뒤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이번에는 건축가로서 두오모 지붕을 두고 열린 경쟁에서 당당히 선발되었다. 두오모 지붕 공사를 맡게 된 때 그의 나이는 40세, 당시로서는 노년에 가까웠다.
좌절을 겪은 뒤 포기하지 않고 타지에서 10여 년을 떠돌며 연구하던 시기가 있었기에 시대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기술이 탄생한 것일 테다. 서른 중반에 진로를 틀겠다고 선언하며 퇴사를 한 그는 여행이 끝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그 ‘전환’의 시작을 위해 밤낮 책상 앞에서 끙끙대고 있다.
아직 브루넬레스키의 생애에 대해 그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브루넬레스키의 인생을 바꾼 10년의 로마살이에는 막역한 친구였던 건축가 도나텔로가 함께 했다고 한다.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처럼 얼마든지 더 같이 헤매고, 탐색하고, 실험해 보자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 그런데 여보. 시대의 전환은 너무 오래 걸리니 아주 조그마한 전환 정도로는 안될까?
* 브루넬레스키의 두오모를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1. 오스페달레 델리 이노첸티(Ospedale degli Innocenti), 무고한 자들의 고아원
1419년 브루넬레스키가 착공한 고아원이다. 대성당 같은 종교 건축이 아니라 공공복지 시설에 수학적 비례를 적용한 초기 르네상스 건축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500년 전 지어진 고아원 건물인데 당시 아이를 맡기며 언젠가 다시 찾아갈 날을 대비해 부모가 달아 둔 표식(반쪽 목걸이, 리본, 배냇저고리 등)이 그 긴 세월 동안 하나하나 보관되어 있다.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이 건물의 카페테라스석에서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두오모의 돔을 바라보는 뷰가 환상적이다. ('알쓸신잡' 피렌체 편 참조)
2. 오블라떼 도서관(Biblioteca delle Oblate), 피렌체 시립 도서관
수녀원을 개조해서 만든 공립도서관인데, 여행객에게도 상시 개방되어 있다. 숙소 바로 옆이라 매일 오고 가면서도 도서관인 줄 모르고 있다가 피렌체에서 두오모 뷰가 가장 좋은 곳들을 소개한 글에서 발견했다. 도서관 열람실 자체도 정말 멋지지만 역시 카페에서 바라보는 두오모뷰는 정말 압도적이다. 커피 이용만 하는 것보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다면 훨씬 더 좋은 자리에서 두오모를 감상할 수 있다.
되새길수록 더 많은 영감을 주는 피렌체에서의 시간이 끝났다.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나라 오스트리아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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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변호사커플, 때로는 집 안까지 타인의 삶을 가지고 들어오는 우리가 오로지 ‘우리’를 위해 보낸 66일의 기록. 같은 곳의 기억을 한 명은 글로, 한 명은 사진으로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