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1
모범생 도시 빈에서 만난 반항아들-클림트와 훈데르트바서
건물도 도로도 사람들 옷차림도 너무 반듯해 나 역시 자세를 바로 해야 할 것만 같은 곳, 빈에서 열흘을 보냈다.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완벽해 보이는 빈에서 유명하다는 것들을 거의 모두 보았지만, 어쩐지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는듯한 두 건물, 그리고 그 건물들을 있게 한 두 예술가의 이야기다. 각각의 작품세계만 보면 연결고리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내게는 '빈의 반항아'라는 카테고리 안에 함께 묶여 있는 사람들 - 클림트와 훈데르트바서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 번째 반항아 -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클림트의 대표작, 빈의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는 KISS는 서양미술을 잘 모르더라도 누구나 보는 즉시 '아! 이 그림 본 적 있지'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하다(한 때 한국의 휴지케이스, 냉장고 등 생활디자인에 특히 많이 쓰였다). 아름다운 두 남녀가 화려한 금빛 속에서 서로 엉크러져 얼굴을 맞대고 있는 이 작품을 그린 클림트는 화가로서의 전성기를 빈에서 보냈기 때문에, 빈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유명한 KISS보다도 먼저, 그의 반항아적 기질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유럽 각 국에서 혁명의 바람이 일며 제국주의 국가들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하던 19세가 말,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세프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고 오히려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빈에 과거 대제국들의 영광을 재현하기로 결심하고 대대적인 도시개편을 강행했다. 지금 빈 중심부 '링 슈트라세' 속 건물들이 유럽의 그 어는 도시보다 더 화려하고 깨끗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이 건물들이 건축양식만 그리스, 르네상스, 바로크 등 옛 것을 차용했을 뿐, 실제로는 약 200여 년 정도 된 (비교적) 새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건물들 사이를 걷다가 멀리서 보자마자 '어, 이건 대체 뭐야??'라는 혼잣말이 나오게 하는 건물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 '제체시온'이다.
왕정체제를 고집하며 과거에 집착하던 빈의 당시의 흐름은 예술계의 보수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빈 미술가 협회 회원으로서 활동하던 클림트를 포함해 23명의 진보적 예술가들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기존의 협회에 반기를 들고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자신들의 작품과 당시 유럽의 모더니즘 예술을 빈에 마음껏 소개할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프란츠 요세프 황제의 계획 하에 만들어졌던 건물들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 분리파의 전시관 제체시온(Secession, 분리, 단절)은 말 그대로 주변과 분리되어 있다.
현재 제체시온에는 빈 분리파의 14회 전시의 주제였던 영웅 베토벤에게 헌정한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가 그대로 남아있다. 베토벤의 교향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주제로 한 작품인 만큼, 지금도 입장 시 모든 관객이 헤드폰을 끼고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클림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베토벤은 기존의 관습을 깨고 자신만의 독자적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동시에 '음악에도 철학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곡가였으므로, 역시 스스로 새로운 흐름이 되고자 했던 빈 분리파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것이 틀림없다. 전시회 개막일에 바로 이곳에서 클림트의 벽화를 배경으로 환희의 송가를 연주했었다고 하니, 이 공간을 가득 채웠을 이들의 감탄과 환희를 상상하며 괜히 오래도록 머물러 본다.
이 날 이후 빈 미술사박물관, 레오폴드뮤지엄, 벨베데레 궁전 등 빈의 곳곳에서 클림트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제체시온, 그리고 그의 반항아적 기질을 떠올랐다. 가슴속에 뜨거운 불을 품고서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을까.
두 번째 반항아 - 프레드리히 훈데르트바서(Friedrich Hundertwasser)
숨 막히게 깔끔하고 정형화된 빈 중심부에서 제체시온을 본 뒤 숨통이 약간 트였고, 북쪽에서 훈데르트바서의 아파트를 만나며 빈의 반전 매력을 실감했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중심관광지를 조금 벗어나 빈의 여느 동네와 다름없는 거리를 걷다 보니 마치 제체시온을 봤을 때처럼 '어, 이건 대체 뭐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건물이 있다. 주로 회색에 그나마 고급스러운 에메랄드색, 갈색 정도를 섞어 쓰는 빈에서 이렇게 색을 많이 쓴 건물은 처음 보았다. 마치 스페인의 가우디 건축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클림트 바로 다음 세대 예술가인 훈데르트바서는 화가이자 건축가이자 생태운동가다. 청년시절 빈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정석 코스인 빈 미술학교에 입학했지만, 3개월 만에 학교를 나와 스스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여정을 선택했다. 평생 '인간은 자연에 잠시 들린 손님'이라는 철학으로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 그림을 그리고 건물을 건축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빈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도 매 창문마다 자연의 색깔을 잔뜩 담고 있다.
처음에 본 건물은 훈데르트바서가 건축하고 디자인한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공동주택이라 외관만 볼 수 있었지만, 도보 5분 거리에 사실상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이라고 할 수 있는 쿤스트하우스가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좀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다.
도시 전체가 깨끗이 잘 관리된 하나의 박물관 같은 빈은 내게 하마터면 재미없는 모범생 도시로 남을 뻔했으나, 클림트와 훈데르트바서 같은 반항아들 덕분에 '반전이 있는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런데 굳이 모범생 도시에 와서 이런 반항아들만 자꾸 찾아다니고, 그 반항아적 기질 때문에 누군가가 더 좋아지는 건 대체 왜일까? 누구나 가슴속에 저항의 불씨를 품고 살지만, 실제 자신의 삶과 일을 통해 불을 지피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소심한 관광객은 낯선 곳에서 만난 이들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낼 뿐이다.
* 빈의 반항아들을 만날 수 있는 곳
1. 클림트
* 벨베데레 궁전 (Belvedere)
클림트의 대표작 Kiss를 만날 수 있는 빈의 대표 관광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회화 전시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벨베데레'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경치를 말한다. 벨베데레 궁전 안의 작품들도 훌륭하지만 꼭 잘 가꿔진 정원을 거닐어 보기를!
* 제체시온 (Secession)
클림트가 초대 회장이었던 빈 분리파 전시관,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가 남아있다
* 레오폴드 뮤지엄 (Leopold Museum)
빈의 박물관 지구(Museum Quartier)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관이 아닐까. 레오폴드 부부의 수집품으로 만들어진 이 박물관에는 오스트리아 미술사의 황금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다들 에곤쉴레의 작품을 보러 이곳에 가지만, 클림트의 작품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2. 훈데르트바서
*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Hundertwasser Haus)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공동주택. 현재도 50 가구 넘게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 들어가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알록달록 건물의 외관과, 건물 앞 의도적으로 굴곡지게 만들어둔 인도를 걸으며 '자연에는 직선이 없기에' 곡선을 사랑한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980년대에 준공되었다고 하니, 50여 년 전 이곳을 보고 충격받았을 빈 사람들의 표정이 상상이 되어 웃음이 난다.
* 쿤스트 하우스 (Kunst Haus)
KUNST쿤스트는 '예술'이라는 뜻의 독일어다. 따라서 직역하면 '예술의 집'이겠다. 훈데르트바서의 회화작품, 환경활동가로서의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전시된 공간으로, 1층 뮤지엄 카페에서는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원래 가구공장이었던 곳을 리모델링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글의 가장 첫 사진 속 칼각을 유지하는 빈의 건물들을 보며, 이 도시에서 쿤스트 하우스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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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변호사커플, 때로는 집 안까지 타인의 삶을 가지고 들어오는 우리가 오로지 ‘우리’를 위해 보낸 66일의 기록. 같은 곳의 기억을 한 명은 글로, 한 명은 사진으로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