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3주간 가장 큰 방을 내준 부부의 마음

독일 베를린 1

by 김숲

베를린 - 3주간 가장 큰 방을 내준 부부의 마음


서른 중반 무작정 떠난 이 두 달간의 여행의 결정적 계기가 된 도시가 있었다. 2022년 신혼여행으로 찾은 부산의 한 서점에서 베를린을 주제로 한 책을 만났다. 그 책은 세계 예술과 문화의 도시를 소개하는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베를린을 소개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그 책을 사서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2022. 4. 23. 언젠가 함께 갈 베를린을 생각하며…!”

그로부터 2년이 지나 각각 안식월, 퇴사를 앞두고 시간을 어떻게 함께 보낼지를 결정할 때 베를린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앞서 여행한 로마, 토스카나 도시들, 빈은 모두 최종 목적지를 베를린으로 둔 채 동선을 고려하여 정해진 곳들이었으니, 베를린에 여행의 가장 긴 시간인 3주를 배정한 것도 당연한 결정이었다.


사실 이 대범한 결정들에는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내게는 독일국적의 배우자와 결혼해 베를린에 자리 잡고 살고 있는 H라는 친구가 있다. H와 나는 2016년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 프로젝트의 팀원으로 처음 만났다. 비록 그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었고 다른 팀원들은 이제 그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H가 늘 먼저 손을 내밀어준 덕에 우리의 인연은 쭉 이어졌다. 보건의료 연구를 하면서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밝고 호기심이 많던 H와는 만날 때마다 대화 내용이 사회면과 연예면을 넘나들었다.

그러던 중 H는 연구를 위해 독일로 떠났다. 국경을 넘어도 여전히 열정적이었던 그는 베를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하던 중 한 독일인-한국인 커플과 교류를 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 그 커플의 아들인 Y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나는 한국에서, 그는 독일에서 각각 소규모로 결혼식을 진행한 탓에 서로의 결혼을 직접 축하해 주지 못한 우리의 카톡 대화에는 서로 한국에 오면~’, ‘베를린에 오면~’이라는 가정이 주를 이뤘다. 애초에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신혼여행에서 느닷없이 베를린과 관련된 책을 짚은 것도 모두 H덕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H에게 우리의 여행일정을 말하고 혹시 신세를 져도 될지 묻자, 그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흔쾌히 초대해 주었다. 우리의 여행계획을 듣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언니오빠가 우리 집에 오는 게 선물 같다’는 H의 답장을 남편에게 보여주며 얼마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지!


베를린에서의 첫날, H가 주변 공원을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베를린에 도착했다. 우리가 앞으로 3주간 살게 될 동네는 Charlottenburg 샤를로텐부르크라는 곳이다. 베를린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이 동네의 이름을 들으면 십중팔구 부자 동네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프로이센의 초대국왕 프리드리히 1세가 아내 샤를로트를 위해 지은 샤를로텐부르크성을 중심으로 중산층, 상류층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이다. 독일의 지하철인 S-barn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해서 우리 같은 여행객에게도 최적이었다. HY 부부는 이곳 샤를로텐부르크 역 10분 거리,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아주 고풍스러운 건물의 4층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3주간 지낸 그 집의 거실이자 가장 큰 방


짐을 푼 첫날 동네의 한식당에서 다 함께 식사를 하며 HY는 그들이 이곳에 자리 잡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은 놀랍게도 Y의 할머니가 1930년대부터 임대해서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한다. 베를린은 독일의 대도시 중에서도 세입자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인데, 임차인 단체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 만큼 베를린 세입자들은 서울의 세입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거의 안정성을 누려왔다. 한 예로, 독일에서 주택 임대차 관계는 원칙적으로 정해진 기한이 없다.(‘반란의 도시, 베를린참조) 그리고 임차인이 원하면 임차인의 지위가 상속되므로, 손자인 Y가 지금 임차인으로서 주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베를린의 많은 공공 주택들이 임대 기업에게로 넘어가며 세입자들의 지위가 예전만큼 보호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HY가 사는 건물은 변화를 비껴간 덕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임차인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HY는 자신들이 누리는 이런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특혜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이를 주변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우리를 비롯한 한국의 여행자들이나 유학생들에게 늘 무료로 혹은 시세와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방 한 칸, 때로는 거실까지 내주었고, 그래서 결혼해서 함께 산 기간 동안 단 둘이 집을 써본 기간이 손에 꼽는단다. (우리에게도 방 한 칸이 아니라 사실상 거실을 내주었다.) 처음 들었을 때 믿기 어려웠지만, 3주 동안 이들과 함께 살며 두 사람의 몸에 밴 나눔의 태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들 부부는 장기 여행 중인 우리를 위해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특식을 준비해 주었는데, 부부 중 Y는 당시 비건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비건들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Y가 직접 구워 준 팬케이크
마트에서 사 온 비건 소시지 그리고 한국의 떡과 같은 질감의 Schupfnudel


우리가 베를린에 있던 5월 말 - 6월 중순 마칙 독일이 유럽의 축구리그 유로 2024를 개최하던 시기였던 만큼, 매주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마다 두 사람과 함께 집 근처 펍에서 독일을 응원했다. 낮에는 카페와 식당이 있는 호젓한 공터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치 광화문처럼 업장마다 대형 스크린을 두어 주민 수십 수백 명이 함께 응원하는 광장이 되는 진풍경은 아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축구 경기 관람석이 되어 버린 동네 공터


해외를 여행하면서 현지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그 여행을 세 배, 네 배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3주간 이들 부부의 신세를 지면서, 사소하게는 맛집이나 동선 추천부터 시작해 매일 보고 들은 것 중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하면서, 뿌옇고 단편적이기만 했던 도시가 점점 명료해지고 입체적으로 이해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태어나 줄곧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Y로부터는 독일인의 시선에서 겪은 베를린을,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H로부터는 이주민의 시선에서 겪은 베를린을 들었다.


2016년부터 한결같이 먼저 손 내밀어 준 H,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를 무려 3주간 동고동락하며 챙겨 준 Y.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들 부부와 보낸 시간 덕분에 나는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군가를 어떤 계산도 없이 진심으로 대할 때 그 상대방도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음을 배웠다. 이제부터 이 두 사람 덕분에 견고한 거점을 두고 차분히 살핀 베를린의 모습을 하나씩 나눠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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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변호사커플, 때로는 집 안까지 타인의 삶을 가지고 들어오는 우리가 오로지 ‘우리’를 위해 보낸 66일의 기록. 같은 곳의 기억을 한 명은 글로, 한 명은 사진으로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