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 OPS!
#해외 2- [이탈리아 로마 책방 미네르바와 채식뷔페 옵스]
40가지가 넘는 채식요리의 향연 - OPS!
‘미네르바’ 서점에서 걸어서 단 2분이면 이번 로마 방문 중 가장 기대했고, 결국 가장 만족스러웠던 완전 채식 식당 ‘OPS!(옵스)’에 도착한다. 2013년에 문을 연 이곳은 항시 약 40여 가지의 완전 채식음식을 선보이는 뷔페 스타일의 식당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의 경험을 하기 위해 한 끼 한 끼 신중하게 메뉴를 골라야 하는 여행자로서 '뷔페'는 가장 안전하고 또 손쉬운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배가 작아(아, 배가 나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음식의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나에게 뷔페 방문은 사실 그렇게 설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로마 채식식당'을 검색할 때마다 순위권에 드는 이 채식뷔페는 거의 모든 사이트에서 맛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식당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나머지, 토요일 정오 오픈시간 정각에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아직 음식이 모두 준비되지 않은 터라 음료 하나를 시켜 두고 뷔페가 완성되는 과정을 구경했다. 시즌마다 구성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가지라자냐, 두부뇨끼, 야채 아란치니, 세이탄(식물성 고기) 볶음과 같은 약 20여 가지의 따뜻한 음식과, 차지키, 후무스, 콩잡채(!), 샐러드 등 약 20가지의 차가운 음식까지 늘 40가지 정도의 음식이 준비된다고 한다.
한 접시에 먹고 싶은 만큼 담아 그때그때 정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 한 접시에 약 스무 가지 음식을 담아 함께 조금씩 맛본 뒤 각자의 취향대로 다시 한 접시씩 담아 먹었다. 100그람당 3유로인데, 처음에는 가격이 가늠되지 않아 조금 소심했지만 두 번째 접시는 대범하게 채워본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처럼 여러 음식으로 간보기를 하는 사람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메인 음식 한 두가지를 가득 담아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자, 파스타, 라자냐, 아란치니, 라비올리 같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음식을 채식으로 맛볼 수 있는 데다가 건강한 지중해식 식단까지 가득하다. 외식을 할 때마다 늘 몇 안 되는 선택지 중에서 뻔한 음식을 먹어야 했던 채식주의자라면 이 엄청난 선택지와 맛의 향연 속에서 아마 즐거운 비명을 지를 지도 모른다.
로마는 이번 유럽 여행의 첫 행선지였기 때문에 여행 전부터 가장 공들여 동선을 짠 곳이기도 한데, 다른 유럽의 도시들에 비해 의외로 채식식당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접 먹어본 결과 소개를 하고 싶을 정도로 맛이 있거나 특색 있는 곳이 없었다. 최근 유럽의 대부분 도시는 정말 맛있는 채식식당, 채식 옵션이 있는 식당들로 가득한데, 유독 로마가 이 부분에서 조금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3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품은 도시의 특성상 로마에는 가장 이탈리아적인 것, 그중에서도 가장 로마적인 것 - 그중에서도 ‘고전적인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로마를 찾는 소비자의 이런 욕구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딱히 달라지지 않다 보니 식당, 카페 입장에서 채식과 같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유인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광지를 조금 벗어나 진짜 로마 사람들이 사는 곳에, 채식에 대한 욕구가 있는 로마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야 정말 맛있는 채식식당을 찾게 된 것은 아닐지. 실제로 옵스의 구글리뷰에도 ‘맛있는 채식음식을 찾아 멀리서부터 일부러 찾아왔다’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았고 주말 점심은 사전 예약 없이는 입장이 어려울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곳 옵스에서는 고전적인 이탈리아 음식을 가장 신선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가장 맛있게 요리하여 선보이고 있으니, 2024년 현재로서는 오히려 이것이 ‘가장 이탈리아적인 것, 가장 로마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마를 찾은 관광객으로서 파스타와 피자가 물릴 때 즈음,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음식을 뻔하지 않은 뷔페식으로 한 번에 모두 맛보고 싶을 때 이곳을 찾기를 추천한다.
2분 거리를 두고 지혜의 여신과 풍요의 여신을 만나다
공교롭게 오늘 찾은 두 곳 모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곳들이다. ‘미네르바(아테나)’는 지혜의 여신, ‘옵스(세레스)’는 풍요의 여신이다. 도보 2분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는 책방에서 1700년 된 로마시대 성벽과 함께 지혜의 여신을 만나고, 40여 가지의 옵션이 있는 채식식당에서는 풍요의 여신을 만나는 이 환상적인 조합. 아, 혼자 알고 있기 정~말 아깝다.
글 김숲, 사진 Hajin
서점
* 이름 LIBRERIA MINERVA 1923
* 위치 Piazza Fiume, 57, 00198 로마 이탈리아
* 책방 주요 큐레이션 소설, 에세이
식당
* 이름 Ops!
* 위치 Via Bergamo, 56, 00198 로마 이탈리아
* 카페/ 식사 주요 메뉴 및 가격대 뷔페 1인당 20~30유로
* 주요 장소들과의 거리 포르타 피아(도보 6분), 리나첸테 백화점 피우메지점 (도보 3분), 트레비분수 등 주요 관광지 (버스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