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 Todo Modo
채식요리자격증이 있는 변호사, 어느 지역을 가든 따뜻한 독립서점과 맛있는 채식식당을 찾는 그의 ‘몸은 가뿐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여행하는 방법
#해외 3- [이탈리아 피렌체 책방 또도모도와 젤라떼리아 La Carraia]
피렌체 Todo Modo : 책과 와인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다
사실 로마나 피렌체 같은 관광도시의 카페는 바 Bar에 선 채로 에스프레소를 빠르게 먹고 나가는 이탈리아 특유의 카페문화에, 끊임없이 새로운 손님들이 유입되는 관광도시의 특성까지 더해져 자리 순환이 굉장히 빠르다. 커피잔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이 되면 거의 잔을 빼앗아 가듯 치워버리며 계산을 유도하는 일도 허다한데, 처음엔 ‘이게 바로 인종차별인가’ 당황했지만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국적, 나이, 인종 불문 모든 관광객에게 적용되는 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 주요 도시 카페의 이런 빠른 속도에 호되게 데인 우리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보고 작업을 할 수 있는 느린 속도의 공간에 목말라있었다. 하마터면(?) 한국이 그리워질 뻔한 그때, 책구경을 하기 위해 찾아간 서점에서 뜻밖에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발음마저 입에 착 달라붙는 사랑스러운 공간, Todo modo 또도모도다.
Todo Modo는 한국에 ‘성당의 수녀님들이 만든 화장품’으로 유명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도보 5분 거리, 고급스러운 골동품 상점이 가득한 골목에 있다. 2013년 두 명의 출판업자, 두 명의 서점종사자, 한 명의 와인업자까지 총 5명이 합심하여 오픈한 이 책방의 이름은 “끝까지, 모든 방법으로”라는 뜻을 품고 있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내부는 영락없는 서점이지만, 끝까지 들어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본격적으로 앉아서 커피, 와인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책을 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나온다. 서점과 북카페, 이렇게 두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의 수가 30,000권이 넘는다고 하니, Todo Modo의 컬렉션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장님 중 한 명이 와인업에 종사해서인지 서점 한편 전면이 다 내추럴 와인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북카페 공간에서는 철학, 문학, 예술과 관련된 북토크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내추럴 와인 시음회와 같은 문화행사도 진행된다고 한다. 실제로 두 번째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저녁에 있을 기타 공연 준비로 직원들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와인 한 잔씩을 시켜놓고 한참 책을 읽거나 노트에 그림을 그리는 등 각자 작업에 열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금세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앉아 책을 뒤적거리고, 다음 일정을 계획하는 달콤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어쩜 분위기가 이렇게 편안할까 궁금하던 차, 벽 한편에 붙어 있는 북카페 공간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Uqbar Cafe”
뭔가 힌트를 얻어볼까 하여 검색해 본 그 낯선 단어에 답이 있었다. Uqbar는 남미의 대표적인 문학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Tlon, Uqbar, Orbis Tertius’에 등장하는 상상 속 나라로,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상상 속의 세계를 상징한다. 재치 있는 사장님들은 손님들이 Todo Modo에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던 것일까?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이들은 Todo Modo를 찾는 손님들이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와인을 마시며 머무르길 장려한다고, 그게 이곳의 장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여러 장소를 방문해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최대한 많이 흡수하는 것이 여행의 목표일 수 있다. 나도 처음엔 비슷했지만, 10년이 넘게 나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에게는 일정 중간에 한두 시간 가만히 앉아 그날 본 것을 소화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높은 임대료의 압박으로 인해 항시 예민한 관광지의 카페로서는 테이블 순환에 도움이 안 되는 나 같은 여행자가 반갑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Todo Modo처럼 뚜렷한 철학을 갖고 느린 여행자를 환대하는 곳에서는 꼭, 꼭, 책 한 권 사기, 그리고 Uqbar에서 와인 한 잔, 노트 한 권 옆에 두고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는 것으로 사장님들의 마음에 보답해 본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마음껏 사유하다 보니 급격히 당이 떨어진다. Todo Modo에서 걸어서 5분, 아르노 강변의 젤라떼리아에서 비건 젤라또를 먹을 계획을 세우고 길을 나선다.
글 김숲, 사진 Hajin
서점
* 이름 Todo Modo
* 위치 Via dei Fossi, 15/R, 50123 피렌체 이탈리아
* 책방 주요 큐레이션 소설, 에세이, 영어서적, 내추럴와인
식당
* 이름 Gelateria La Carraia
* 위치 Piazza Nazario Sauro, 25/R, 50124 이탈리아
* 카페/ 식사 주요 메뉴 및 가격대 젤라또 두 스쿱 2~2.5유로
* 주요 장소들과의 거리 아르노 강변 도보 2분,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