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피렌체의 젤라테리아
채식요리자격증이 있는 변호사, 어느 지역을 가든 따뜻한 독립서점과 맛있는 채식식당을 찾는 그의 ‘몸은 가뿐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여행하는 방법
#해외 3- [이탈리아 로마와 피렌체 비건 젤라토 탐방기]
“나는 대학시절 젤라토를 전공했단 사실~” 이 농담이 아닌 나라, 젤라토 대학이 있고 전국에 약 4만 개의 젤라테리아가 있는 나라- 이탈리아다. 젤라토(Gelato)는 이탈리아어로 ‘얼린’이라는 뜻이고, 주로 우유, 크림으로 만들기 때문에 사실 그냥 ‘아이스크림’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로마에서 처음 접한 피스타치오맛의 젤라토는 내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의 기준이 되었다. 일반 아이스크림에 비해 공기 함유량이 적어 더 꾸덕한 질감, 그리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피스타치오의 생경한 맛에 반한 나머지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로마의 수많은 젤라테리아를 돌아다니며 피스타치오 맛 젤라토를 헌팅(!)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로마에만 총 2,000개가 넘는 젤라테리아가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젤라토도, 피스타치오도 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웬일인지 그때 그 맛을 구현한 곳은 아직 찾지 못했다.
올해 두 달의 유럽 일정 중 무려 한 달을 이탈리아에서 보내는 것으로 정했을 때 이미 예상은 했지만, 결국 로마와 피렌체 그리고 토스카나 지역에서 총 스무 곳이 넘는 젤라테리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15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피스타치오맛 헌팅’이 아니라 ‘비건 젤라토 헌팅’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유와 크림이 주 재료인 젤라토를 어떻게 비건으로 만들 것인가. 사실 젤라토에서 유제품을 빼면 ‘소르베’가 된다. 유제품을 쓰지 않으면서도 젤라토질감을 구현한 곳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이탈리아에 왔다. 주로 로마와 피렌체에서 유명한 젤라테리아를 방문해서 파악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로마]
* 스페인 광장 근처: La Strega Nocciola - 초콜릿, 베리류 비건 옵션
* 트레비 분수 근처: Giolitti - 다크 초콜릿, 과일 소르베 류 비건 옵션
* 트레비 분수 근처: Gelateria Della Palma- 총 150개 맛의 젤라토 중 20가지 비건 옵션 존재 - 초콜릿, 피스타치오, 과일류 비건 옵션 (비건 옵션 가장 많음)
* 나보나 광장 근처: La Romana Dal 1947 - 초콜릿, 과일 소르베류 비건 옵션
* 바티칸 성당 근처: Old Bridge - 과일 소르베류 비건 옵션 (비건 옵션 가장 적음)
[피렌체]
* 아르노 강변, 책방 Todo Modo 근처: La Carraia - 다크 초콜릿, 과일 소르베류 비건 옵션
* 두오모 성당 근처: Edoardo - 피스타치오, 코코넛, 레드와인 등 과일 소르베류 비건 옵션
두 도시의 유명한 젤라테리아를 열심히 다녀 본 결과, 비건 옵션이 아예 없는 젤라테리아는 없었으며 주로 다크초콜릿 젤라토와 과일 소르베 위주의 비건 옵션을 구비하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어딜 가나 비건 옵션이 위와 같이 비슷비슷했고, 모든 맛을 비건으로 제공하는 젤라테리아는 없었기 때문에 수십 가지 맛의 향연 속에서 비건은 항상 비슷한 맛만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의아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는 모든 맛을 비건으로 제공하는 젤라테리아가 있는데, 왜 젤라토의 고장인 이탈리아는 아직 ‘비건 옵션’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아마 로마나 피렌체를 방문하는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을 상대로 올릴 수 있는 수익을 생각할 때, 소수의 사람이 찾는 비건 젤라토를 전문으로 하기보다는 소수의 비건 옵션을 구비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생각이 전환이 필요하다.
이탈리아에 이어 방문한 오스트리아에는 10년 전 한 자매가 빈에서 처음으로 비건 젤라테리아를 오픈한 뒤 빈에만 10개가 넘는 매장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전역의 마트에 입점하는 말 그대로 상업적 대박을 거두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방문한 모든 젤라테리아에서 최소 하나 이상의 비건 옵션을 제공하고 있었고, 심지어 콘이 비건인지 여부까지 표기해 두는 곳도 있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역사와 문화 모든 부분에서 과거와 전통을 팔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 최소한의 미래를 접목하고자 애쓰는 이탈리아의 모습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15년 전 맛본 내 인생 최고의 피스타치오 젤라토는 전적으로 우유와 크림맛, 그리고 스무 살 로마의 맛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에 맛본 비건 피스타치오 젤라토, 다크 초콜릿 젤라토는 서른 다섯 로마, 그리고 피렌체의 맛과 섞여 새롭게 나의 맛의 기준이 되었다. 또 모르지. 몇 년 후가 될지 모를 다음 이탈리아 방문 후에는 비건 젤라토 ‘전문점’ 탐방기를 쓰게 될 지도.
글 김숲, 사진 Hajin
* 보통 '독립서점 한 곳-채식식당 한 곳'의 조합으로 소개를 해 왔다. 피렌체의 Todo Modo 서점에서 도보로 4분 거리에 비건옵션이 있는 젤라테리아 La Carraia 한 곳만 소개하기에는 아쉬워서 이번 편만 '이탈리아 젤라토 탐방기'로 확장해 보았다.
서점
* 이름 Todo Modo
* 위치 Via dei Fossi, 15/R, 50123 피렌체 이탈리아
* 책방 주요 큐레이션 소설, 에세이, 영어서적, 내추럴와인
식당
* 이름 Gelateria La Carraia
* 위치 Piazza Nazario Sauro, 25/R, 50124 이탈리아
* 카페/ 식사 주요 메뉴 및 가격대 젤라또 두 스쿱 2~2.5유로
* 주요 장소들과의 거리 아르노 강변 도보 2분,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 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