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라 Nov 21. 2018

우리는 얼마나 자야 할까

자도 자도 끝없이 졸린 이유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충분한 잠이 주어지고 있는 걸까. 잦은 야근과 회식과 먼 출퇴근 거리를 이겨내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없어서는 안 될 '잠'이라는 것에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 걸까.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은 뒤 씻고 대중교통에 올라 1시간 반 가량을 회사로 이동하고, 퇴근해서 1시간 반을 돌아와 피트니트 센터에서 1시간가량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 반에서 11시. 필자의 평일 일과이다. 회사생활과 운동을 함께 진행하다 보니, 피로 누적이 심하여 돌아오자마자 1시간 이내에 잠자리에 든다. 하루 수면은 대략 7~8시간 정도 이루어지고, 이는 한국 직장인 평균 수면시간과 거의 비슷한 수치이다. 오히려 일반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수면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잠을 자도 피곤함은 가시지 않는 것 같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분명히 성인의 하루 적정 수면 권장량은 7~8시간이었고,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해당 시간보다 약간 부족하거나 비슷하게 잠을 잔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꾸벅꾸벅 졸고, 집에 도착해서도 푹 잠들지 못한 채 아침에 일어나 피곤한 하루를 반복하고만 있다.


  원 없이 잠을 청할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럴 수 없다. 잦은 야근, 이따금 생기는 회식, 긴 출퇴근 시간과 잔업, 일상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스트레스들이 우리의 잠을 공격한다. 주말에 부족했던 잠을 몰아서 자려고 하지만, 평일에 할 수 없었던 약속과 취미생활을 포기할 순 없다. 설령 포기하고 잠을 청하게 되면 수면리듬이 깨져 다음 평일에 지장을 주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잠을 자야 할까. 아니, 애초에 우리에게 자유롭게 잠잘 권리가 주어지고 있는 걸까? 마음껏 잠을 자버려도 아무 상관 않던, 오히려 주변에서 좋아하던 어린 시절 이후로 우리는 충분한 잠이라는 보상을 누려보지 못했던 것 같다. 수능을 목표로 달리던 학창 시절, 수많은 과제와 취업의 압박에 갇혀있던 대학시절, 회사에 다니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에 충분히 쉬어야 할 시기에,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적게 자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필자는 잠이 많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일과 취미생활과 생리활동을 제외한 시간은 모조리 잠에 쏟고, 그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긴 편이다. 주말에는 12시간을 넘게 자고, 틈만 나면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무언가 하는 도중에는 자주 졸리고, 출퇴근 대중교통 안에서는 항상 졸고 있다. 체질적으로 많이 자는 것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필자의 지난 세월은 잠이 부족했다.


<이말년씨리즈> '잠은행' 中


  수능 준비를 고3 시절에는 매일같이 야간 자율학습과 독서실 생활을 하며 하루 4시간을 채 못 잔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각종 이벤트와 과제, 그리고 지난 12년 간 학업이라는 족쇄에 묶여있었던 것에 대한 해방감을 만끽하려고 스스로 잠을 줄였다. 군대에서는 행정병 특성상 야근이 잦았고, 대학 졸업을 한 이후에는 앞으로의 미래와 취업에 시간을 쏟느라 잠에 드는 시간이 들쭉날쭉 이었다. 왜 이렇게 자주 졸리고, 주말만 되면 한낮이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깨는 건지 많이 생각해봤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과거의 필자는 불현듯 찾아오는 '잠'이라는 녀석을 순간의 달콤함을 대가로 깨어난 뒤의 후회를 파는 나쁜 장사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필자가 깨어있는 시간을 대출받은 대가로 높은 이자를 쳐서 잠을 자는 것만 같다고 느낀다. 계속해서 어떤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그 시절, 주변의 모두가 달리고 있기에 혼자 멈춘 채로 남아있을 순 없었다. 주어진 시간 중 가장 만만했던 시간이 자는 시간이었고, 필자는 잠을 줄여가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고 있다. 하지만 신체의 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2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더는 잠을 미룰 수 없게 되었고, 원치 않음에도 항상 졸린 상태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 역시 포유류에 속하는 엄연한 동물이며, 적정량의 수면을 규칙적으로 취해야 한다. 주말에 몰아서 자는 잠, 틈날 때마다 취하는 쪽잠은 건강한 수면습관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를 권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렇지 못한 자는 게으르고, 그럴 수 있는 자들만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당장의 조급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의 급류를 만나 스스로의 건강까지 해쳐가면서 우리 스스로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이말년씨리즈> '잠은행' 中


  네이버 웹툰 작가 '이말년'의 연재 작품 '이말년씨리즈' 97화 '잠은행 下下'편의 마지막에 이런 멘트가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주인공 파홈에게 결국 필요한 건 그가 묻힐 6피트의 땅이었다. 적게 자기를 강요하는 이 시대에서 과연 사람은 얼마만큼의 잠이 필요할까.

  우리는 단순히 잠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그간 부족했던 잠을 갚기 위해 매일매일을 피곤함과 함께 보내고 있는 걸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매일 충분한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스스로를 저울질해야만 하는 씁쓸한 현실 속,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잠일 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나주가 전하는 여유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