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첫발을 내딛다, 새로운 아침

낯선 거리, 새로운 공기, 그리고 첫 번째 아침 러닝

by 신정호
낯선 도시에서 아침을 맞이하다

새벽 6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창밖에서는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들었고, 방 안에는 아직 어둠이 가득했다. 비행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탓인지 몸은 무거웠지만, 이곳에서의 첫날을 어떻게 시작할지 생각하니 더 이상 잠들 수 없었다. ‘좋은 시작은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온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숙소를 나서자 월요일 아침의 도시는 이미 분주했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 하나둘 문을 여는 작은 카페, 그리고 건물 앞에서 바닥을 물청소하는 사람들. 공공청소 차량이 아닌, 각자의 공간을 직접 닦고 가꾸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내 앞마당은 내가 깨끗이 한다는 듯, 물을 뿌리며 인도를 쓸고 있었다. 이 작은 풍경에서 이 도시의 질서를 느낄 수 있었다.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저 나무가 보이는 곳으로 몸을 맡기기로 했다. 5분쯤 달리자 공원이 나타났고, 그곳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일정한 리듬으로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모습이 숙련된 러너 같았다.

그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발걸음을 맞추려 했지만,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 하지만 이 도시에 익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신호등 앞에서 멈춰섰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주 보게 되었다. “Buenos días!” 낯선 도시에 왔다면, 낯선 만남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는 프랑스에서 온 사람이었고, 일 년에 한두 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서 업무를 보며 아침 러닝을 즐긴다고 했다. 우리는 짧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사진을 찍었다.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순간만큼은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 먼저 다가가는 순간, 새로운 연결이 시작된다. 오늘 아침, 나는 그걸 몸소 경험했다.



환전 – 36장의 지폐와 함께하는 작은 변화

아침 달리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가방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를 꺼내 식사를 준비했다. "첫날이니까 특별하게 먹자." 일주일 치로 나누어 둔 김치 중 반을 꺼내고, 잡곡밥과 미역 북엇국을 곁들였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익숙한 루틴을 유지한다는 것이 안정감을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생활을 정비해야 했다. 첫 번째 과제는 환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심해, 공식 환율보다 암환전(블루 달러 환전)이 훨씬 유리하다. 은행보다 길거리 환전상이 더 좋은 환율을 제공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지만, 무작정 거리에서 “Cambio!(환전!)”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갈 수는 없었다. 신뢰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구글에서 평점이 좋은 환전소를 찾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예상과 달랐다. '환전소'라는 간판도 없었고, 오히려 탱고 티켓 판매소 같은 느낌이었다. 망설이며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안에서 “Hola!” 하고 인사를 건넸다. "환전하러 왔어요?"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환율을 보여주었다. 온라인에서 본 환율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흔쾌히 수락했고, 순식간에 내가 건넨 300달러 대신 내 손에는 36장의 1만 페소 지폐가 쥐어졌다.

낯선 화폐 다발을 손에 들고 있자니 이곳에서 제대로 살아갈 준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침에 달리며 보았던 길거리 빵이 떠올랐다. ‘내일 아침에는 꼭 저 빵을 사 먹어야겠다.’ 돈이 생긴다는 건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이곳에서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이었다.




버스를 타다 – 이방인에서 도시의 일부가 되는 과정

뭐든 항상 처음이 있다. 그리고 처음은 무조건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한 방법을 선택한다. 버스를 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우버를 이용하면 목적지만 입력하면 되고, 낯선 환경에서도 특별한 고민 없이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아가려면, 이곳 사람들의 방식으로 이동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중교통을 직접 이용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먼저 이곳의 교통카드인 수베 카드를 구입하고, 충전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요금 결제 방식이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야만 요금이 설정된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로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익숙한 우버를 탈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도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고민은 직접 부딪혀 보지 않으면 풀릴 리가 없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구글 맵으로 목적지를 확인했다. 차가 도착하자, 카드 단말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카드를 대고 타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 어색했다. "어떻게 말하지?" 머릿속에서 스페인어 문장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리고 목적지 이름이 적힌 핸드폰 화면을 기사에게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버스 안에는 이미 많은 승객이 타고 있었고, 뒤에서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시간을 끌면 안 되는데…’ 순간적으로 긴장됐다.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지만, 기사는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몇 차례 대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소통되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 목적지를 눈치로 짐작한 듯 요금을 설정했다. ‘어쨌든 결제는 됐다.’ 나는 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댔고, 마침내 버스에 올랐다. 첫 도전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어쨌든 해냈다.

버스 창밖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풍경이 흘러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행인들, 빠르게 질주하는 자동차들, 벽마다 가득한 그래피티. 창문이 열린 버스 안으로는 낯선 향신료 냄새가 스며들었고, 빠른 스페인어 대화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정말 다른 세상에 와 있구나.’ 그러나 이방인의 공간 속에서도 나는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들이 하나둘 익숙해질 때, 낯설던 공간은 어느새 삶의 일부로 스며든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적응해 간다.


버스를 타기 전까지는 ‘과연 내가 이곳에서 버스를 제대로 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도전하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던 것들도, 한 번 해보면 그다음부터는 쉬워진다. 다음번에는 더 자연스럽게 탈 수 있을 것이다. 도시는 그대로지만, 나는 하루하루 변해가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도, 낯선 곳에서 길을 찾는 법도, 한 걸음씩 배워가는 중이다. 이렇게,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오늘 하루는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도 많았다. 버스를 탈 때도, 환전을 할 때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순간적인 당황과 긴장, 그리고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중요한 건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한 번 해보면, 그다음은 더 쉬워진다. 부딪히고, 배우고,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새로운 도시에 오면, 처음엔 누구나 서툴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결국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낯선 길도 익숙한 길이 된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아침의 나는 낯선 이방인이었지만 저녁의 나는 조금 더 이 도시에 녹아든 기분이었다. 여전히 길을 잃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순간들을 마주하지만,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나는 오늘의 내 한 걸음을 기억하게 된다. 비록 아직도 스페인어가 서툴고, 길을 잃을 때도 있지만, 나는 오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아냈다.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33일, 나는 이렇게 조금씩, 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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