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를 이해하는 방식 #시장의 특성
1985년, 재론 래니어(Jaron Lenier) VPL연구소 설립자는 VR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와 모션 장갑을 개발했고, 이를 상용화했습니다. 그러나 1만 달러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 비해 기술적 완성도는 낮아서 결국 회사의 문을 닫고 맙니다. 그의 나이 30살 때입니다.
2012년 팔머 럭키(Palmer Luckey)는 Oculus를 설립하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6세대 Rift를 소개합니다. 18살 때부터 VR 기기를 만들어 왔던 Palmer의 첫 대중 공개 상품이었던 셈이죠. 다행히 크라우드 펀딩은 대 성공을 거두었고, 대중과 공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팔머의 나이 20살 때입니다. 2014년 Facebook이 Oculus VR을 인수했습니다. Facebook의 발 빠른 움직임에 시장은 반응했고, 주요 ICT 기업들이 VR을 주목하는 분수령이 되었죠.
Facebook 인수 2년 후인 2016년, Oculus는 Rift란 이름을 단 첫 상용화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공식 모델명은 Oculus Rift CV1입니다. 여기서 CV는 Consumer Version. Rift 명칭을 단 첫 소비자용 제품이라는 것을 모델명에서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간헐적으로 Rift를 출시하긴 했지만, 모두 다 개발자 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델명도 DV1, DV2였죠.
CV1의 판매는 폭발적이었습니다.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 말자 하루 만에 3개월 생산 분량이 매진되었을 정도였죠. 599달러(약 70만원)란 가격을 감안했을 때, 놀라운 판매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송 지연 등의 문제도 실상은 너무 인기가 높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언론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MWC에서 촉발된 VR에 대한 관심이 Oculus Rift로 정점에 오르는 모양새입니다. 하반기에는 Sony와 HVC가 또 다른 VR 기기를 선보일 모양이니 당분간 시장이 달궈지는 건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정확히 시장의 모양새를 제대로 읽을 필요는 있습니다.
599달러 vs. 1,600 달러
Oculus Rift는 100불 언저리에서 형성되어 있는 모바일 VR 기기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Oculus 도 삼성과 손을 잡고 Gear를 출시했고, 중국 등에서 저가의 모바일 용 VR 기기를 만들어 왔습니다. 구글이 제공하고 있는 카드보드 VR은 사실상 무료에 가깝죠. 이런 상황에서 Oculus Rfit는 정확히 대척점의 시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일단 소비자 가격은 559불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Rift는 PC 연결형 기기이며, 그중에서도 특정 NVidia 그래픽 카드가 장착된 컴퓨터에서만 연동된다고 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GTX970은 대략 40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고, 이 정도의 그래픽 카드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컴퓨터의 가격은 100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더구나 현재 일반인들이 이용하고 있는 컴퓨터 중에서 GTX 970 정도를 쓰고 있는 비율은 1% 내외에 불과하죠. 사실상 게임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용자들만 이 정도 급의 그래픽 카드를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600불은 VR이 시장 초기임을 드러나는 지표
가격은 전략이고 현재 시장의 바로미터입니다. 첫 번째 출시된 대중화된 제품이라고 설명하기에 가격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모바일 VR은 엄밀한 의미에서 VR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그냥 360도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장치 정도일 뿐입니다. 더구나 현재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 VR 촬영기기는 해상도나 왜곡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그러니, 진정한 VR 기기는 아닌 셈입니다. HMD가 일종의 스크린이라고 한다면, 스크린에 정보를 보내주는 장치로 선택한 것이 PC입니다. 휴대폰 사양이 굉장히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PC에 비할바는 못되죠.
결국 대중화된 제품이라고, 상업용 제품이라고 설명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스가 아닌 니치를 겨냥한 제품이라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전문적인 게임 유저는 600불 정도의 Oculus Rift를 구매해서 VR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유저가 Oculus Rift를 맛보기 위해서는 대략 1,600불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과적으로 게임 유저만을 대상으로 만든 제품이라는 것이 명확해 지죠.
그러고 보면, 2016년 2월 마크 저커버그가 가상현실 산업이 적어도 10년 뒤에나 제대로 열릴 것이다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I honestly don’t know how long it will take,” he said. “It could be five years, it could be 10 years, it could be 15 or 20. My guess is that it will be at least 10.
Oculus 의 가격 정책과 마크 저커버그의 이야기를 잘 종합해보면 VR 은 여전히 '초기 시장'입니다. 과도한 기대나 과도한 성찬을 하기보다는 한발 떨어져서 관망하고 살펴봐야 하는 시장이라는 말이 됩니다. 물론 이런 표현 조차도 VR을 활용하고자 하는 사업자나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VR 기기를 만드는 사업자라면 지금 시장에 뛰어들어야겠지요. 하지만 활용하는 자라면 숨을 고르고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시장 초입 시장은 시장 초입 시장의 문법으로 읽어야 한다.
초기라고 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맥락과 질문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VR Sickness와 콘텐츠 부족이 대표적입니다. 흔히들 VR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콘텐츠가 부족해서 VR 시장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거나, 아니면 어지러움증 등 때문에 VR이 대중화에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조금 변형할 필요가 있습니다. 콘텐츠가 완벽히 구비되고 진행되는 시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래 시장에서 콘텐츠는 가장 나중에 진화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풍성한 콘텐츠는 시장이 안정기나 성숙기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는 지표, 즉 결과일 뿐입니다. 성공의 지표가 콘텐츠는 아니란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장 초입기에 콘텐츠에 대한 정확한 질문은 진화의 속도가 어느 정도여서 콘텐츠 사업자가 어느 시점에 가장 많이 진입할 수 있겠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 보다 세련된 질문 방식입니다.
어지러움증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 초입에는 기술적 완성도가 낮을 수밖에 없지요. 이런 시장에서 어지러움증을 완벽히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질문 역시 기술적 진화로 인해서 어지러움증이 해소될 수 있을지를 물어봐야 한다. 현재 보이는 어지러움증이 기기의 무게나 촬영 영상의 왜곡 혹은 해상도 등의 문제라고 한다면, 이는 기술 진화의 속도에 따라서 해소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적 진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어지러움증 등을 해소할 수 없다면 대중화의 큰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있겠지요. 따라서 어지러움증 때문에 VR이 안된다고 보기보다는 기술 진화를 통해 어지러움증이 해소될 수 있을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Oculus Rift CV1의 의미
그렇다면 왜 Oculus Rift 가 왜 1%의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출시했는지가 잘 설명됩니다. 그들은 분명 이 시장이 초기 시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1%의 고객은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기술적인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완성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시장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체험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피드백을 받고 제품의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다면 Oculus 가 생각하는 그림이 훨씬 더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CV 1이 아니라 CV2가 나올 시점 CV3가 나올 시점에서는 훨씬 더 낮은 가격과 훨씬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Oculus Rift CV1이 의미하는 것은 'VR의 대중화'가 아니라, 'VR이 대중화되기 위한 긴 여정의 첫걸음'을 떼었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