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의 WBD 인수가 가져올 시장 변화 (1)
2026년 2월, 할리우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자본과 기술의 결합을 목격했다.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이 이끄는 스카이댄스가 파라마운트를 넘어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까지 품에 안으며, 넷플릭스를 압도하는 거대 미디어 제국의 탄생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그리고 무엇을 꿈꾸는 것이었을까? 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주어를 명확히 하자.
이번 WBD의 인수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파라마운트(Paramount)가 아니라 스카이댄스(SkyDance)고, 스카이댄스가 아니라 데이비드 앨리슨(David Ellison)이다. 파라마운트가 어떤 꿈을 꾸느냐가 아니라, 데이비드 앨리슨이 무슨 꿈을 꾸느냐가 핵심 질문이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파라마운트가 아니다. 제작사와 배급사를 분리시켜야 했던 파라마운트와 섬너 레드스톤(Sumner Redstone)이 가지고 있었던 파라마운트가 다르듯이, 지금의 파라마운트는 스카이댄스(Skydance)의 파라마운트고 데이비드 앨리슨의 파라마운트이기 때문이다. 파라마운트의 포트폴리오와 WBD 포트폴리오의 결합이 가지는 시너지 효과를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보다 먼저 이 딜이 통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제 겨우 15년 남짓된 제작사인 스카이댄스가 왜 파라마운트를 인수하기로 했고, 2025년 8월 인수가 완료되자마자 바로 WBD 인수를 결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스카이댄스의 기존 투자회자인 레드버드캐피털이 현금 출자를 했고, 아버지인 래리 엘리슨이 약 60억 달러의 개인 자금을 투입해서 80억 달러(약 11조 원)로 파라마운트를 인수했다곤 하지만, 거기엔 146억 달러(약 20조)의 빚까지 승계했다. 갚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승계 부채를 포함해서 총 1,100억 달러 (약 150조 원)에 WBD를 인수하기로 했다. 쌓인 부채를 채 해소하기도 전에 또 다른 기업의 인수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니, 통상적인 인수는 아니다.
이 거대한 드라마의 중심에는 20년 전 할리우드에서 '오만한 도련님'이라 비웃음 당하던 한 청년의 집요한 설계가 자리하고 있다. 그 청년이 바로 데이비드 엘리슨이다.
데이비드 엘리슨은 래리 엘리슨의 아들이다. 포브스(Forbes) 기준 순자산 약 1,700억 달러(약 227조 원)를 보유하여 세계 5위권의 부호로 군림하고 있는 래리 엘리슨이다. 오라클의 래리는 실리콘밸리에서 '사무라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공격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이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모든 이들이 져야 한다"는 칭기즈 칸 식의 정복 철학을 비즈니스에 투영하고 있다고 평가받을 정도다.
밥상머리 경영 수업도 많이 알려져 있다. 데이비드의 회고에 따르면, 엘리슨 가문의 저녁 식사 자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오라클의 전략과 기술적 난제들을 논의하는 회의장에 가까웠다. 래리는 어린 아들에게 비즈니스 용어를 걸러내지 않고 사용하며 전략적 사고를 유도했다. 데이비드는 훗날 "비즈니스는 우리 집에서 사용되는 제1언어(Native Language)였다"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아들에게 동화책보다는 오라클의 전략 보고서를 먼저 읽게 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에피소드다.
그렇다고 단순 비즈니스맨으로 키워진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 그의 방에는 무려 3,000개가 넘는 VHS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영화광은 아니었다. 일종의 하이엔드 테크 너드(Nerd)라고나 할까? 영화를 보고 단순히 감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장면의 특수 효과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프레임 단위로 쪼개 분석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고 알려져 있다. 주말이면 어머니와 극장을 찾았고, 집에 돌아오면 수집한 영화들의 시퀀스를 복기하며 시각 효과의 기술적 결함을 찾아내는 데 몰두했다. 특히 <터미네이터 2>와 <쥐라기 공원> 같은 대작들에 매료된 이유도 '기술이 서사를 압도하는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부잣집 아이는 달랐다. 13세(1996년) 때부터 비행을 배우기 시작했다. 단순 취미 수준을 넘어 10대 때 이미 상업용 비행 면허와 곡예비행(Aerobatics) 자격증을 땄다. 기계적 메커니즘이 실제 물리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매료되었다고 훗날 자평하기도 했다. 그가 첫 회사의 이름을 스카이댄스라고 명명한 것도 곡예비행에 대한 그의 욕망과 애정이 녹아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좌우간 중력 가속도를 견디며 비행기의 역학 구조를 체득한 경험은 그를 '데이터가 실재에 미치는 영향'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이는 훗날 그가 <탑건: 매버릭> 제작 시 CG를 배제하고 실제 비행 시의 중력 수치와 배우의 안면 근육 변화를 데이터로 기록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데이비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만큼이나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아버지의 절친이었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였다. 데이비드에게 잡스는 스티브 삼촌이었다. 고민거리가 있으면 잡스와 산책을 나누며 조언을 구했고, 인문학적 식견과 픽사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족적을 남긴 스티브도 영화광인 데이비드와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데이비드에 따르면 아버지가 비즈니스와 전략을 전수했다면, 잡스는 지향점과 운영 철학을 전수해 주었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그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몇 가지 지점에서는 잡스의 영향이 분명하게 보인다.
데이비드가 처음 스카이댄스를 설립하려 할 때 잡스에게 조언을 구하자, 잡스의 충고는 냉혹할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영화에 돈을 대는 서비스 업자가 되지 마라. 픽사가 디즈니와의 관계에서 고전했던 이유는 IP의 주도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IP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나중에 스카이댄스가 파라마운트와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가질 때 투자 지분만큼 IP의 권리도 확보한 것도 이런 조언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런가 하면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을 중시했다. 잡스는 데이비드에게 "가장 위대한 창조는 기술과 리버럴 아츠(Liberal Arts)가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잡스가 픽사를 통해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바꾼 것처럼, 데이비드 역시 스카이댄스를 단순하 영화 제작사가 아니라 오라클의 클라우드 기술을 영화 제작에 이식하는 '테크 스튜디오'를 구상하게 된 것도 잡스의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테일에 대한 집착 역시 잡스의 영향이지 않을까? 잡스가 아이폰의 내부 회로 기판 설계까지 완벽을 기했던 것처럼, 데이비드 역시 <탑건: 매버릭> 제작 시 카메라 렌즈의 각도와 실제 비행 시의 중력 수치까지 일일이 체크하며 잡스식 '완벽주의'를 할리우드에 이식했다. 래리와 잡스가 산책하며 나누던 "제품이 곧 메시지다"라는 담론은 데이비드에겐 "콘텐츠가 곧 플랫폼이다"라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플랫폼 이전에 콘텐츠의 힘. 그것이 데이비드의 신념에 가까웠다.
앞서도 말했듯이 데이비드는 부잣집 아들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다. 영화광이었던 데이비드는 2001년 남가주대학교(USC) 영화학과에 입학했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래리 엘리슨은 아들이 오라클을 물려받기 위해 경영학이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길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에 아들이 빠져 있는 영화를 하나의 '신산업'으로 보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치밀한 전략적 로드맵을 직접 설계해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어디에서도 래리나 데이비드가 로드맵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러나 데이비드의 지난 20여 년간의 행보를 보면 실제로 로드맵이 없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순차적으로 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포브스 등 주요 매체의 미디어 분석가들과 비즈니스 전기 작가들이 래리가 데이비드의 미래를 정교하게 설계해 주었다고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영화사업을 해야 한다면, 일단 먼저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나온 USC에서 할리우드 차세대 주역들과 인맥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맥이지 최종 졸업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교수들이 이론적인 연출론을 강의할 때, 그는 이미 '어떻게 하면 디지털 자산을 클라우드로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결국 그는 2005년, 4학년 졸업을 앞두고 과감히 학교를 자퇴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각각 오라클과 애플을 세워 세상을 바꾼 아버지와 잡스의 궤적을 그대로 따르려는 것처럼 말이다.
자퇴 직후인 2006년, 23세의 데이비드는 아버지가 투자한 6,000만 달러(약 800억 원)를 들고 영화 <라파예트(Flyboys)>를 제작하며 본인이 직접 주연까지 맡는 파격적인 도박을 감행했다. 이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무모하고 '난센스'에 가까운 특권적 행보였다. 검증되지 않은 신예가 막대한 자본을 휘두르며 스크린의 주인공까지 차지했으니, 성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한 흥행 실패와 평단의 혹평이었다.
그도 이유는 있었다. 데이비드는 13세에 곡예비행 자격을 딴 베테랑 조종사였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자신의 비행 실력을 증명할 완벽한 무대로 보았다. 그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비행의 리얼리티'를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실제 비행을 모르는 매끈한 미남 배우가 조종석에 앉아 흉내만 내는 것은 기술적 기만"이라고 스스로 확신했다. 자연히 곡예비행을 할 수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기술적 리얼리티면 통한다는 잘못된 믿음도 한몫했다.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 전투기인 '뉴포트 17' 복제기를 직접 몰며 카메라 앞에서 중력 가속도를 견디는 자신의 모습이 관객에게 진정성 있는 감동을 줄 것이라 확신했다. 촬영장에서 그는 스턴트 대역을 거부하고 직접 조종간을 잡았으며, 카메라 앵글이 기체의 역학적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하는지에만 몰두했다. 잡스로부터 배운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연기력이 아닌 기계적 수치와 물리적 실체에만 매몰된 결과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평단은 "그는 조종석의 금속 계기판보다 감정 표현이 없다"라며 "나무토막(Wooden) 같은 연기"라는 비수를 꽂았다. 관객은 조종석에서 그가 얼마나 완벽하게 중력을 견디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주인공의 눈빛에서 흐르는 감정을 원했으나, 데이비드의 눈은 오직 다음 비행 궤적과 계기판 수치만을 쫓고 있었다. 6,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수업료'를 지불한 뒤에야 그는 예술과 기술의 간극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그는 시장을 탓하지 않았고,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번에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더 훌륭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라파예트>(원작명은 Flyboys)의 실패로 스스로 배우감이 아니라는 것을 각성했다. 일종의 투자실패이며, 앞으로도 본인이 배우로 나서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관객은 내 얼굴을 원하지 않는다"다고 스스로 평가할 정도였다. 이 순간 그는 배우의 꿈을 접었다. 누구는 이를 두고 최고가 될 수 없다면 1초도 낭비하지 않는 엘리슨 가문의 철저한 효율주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부잣집 아들이긴 했다. 래리 엘리슨은 아들을 오라클 본사의 재무 부서와 기획실에 상주시키며, 자신의 최측근 CFO급 인사들로부터 직접 '매니지먼트 과외'를 받게 했다. 그중에서도 '할리우드 회계'를 파헤치는 재무 트레이닝이 가장 중요했다. 데이비드는 오라클의 재무 전문가들과 함께 스튜디오들이 수익을 은폐하고 제작비를 부풀리는 '할리우드 회계(Hollywood Accounting)'의 허점을 데이터 분석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라파예트>의 제작 보고서를 뜯어보며, 자신의 기술적 집착이 어떻게 재무적 재앙으로 연결되었는지 달러 단위로 복기했다. 이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슬레이트 파이낸싱(Slate Financing)이란 개념을 구상하고 2009년부터 금융권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슬레이트 파이낸싱이란 개별 영화의 흥행 리스크를 포트폴리오 투자 방식으로 분산시키는 금융 기법으로, 여러 편의 영화에 분산 투자하여 수익을 관리하는 개념이다. 그는 뱅커들에게 "예술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라고 설득했고, 아버지의 자금 1억 5,000만 달러에 JP 모건을 비롯한 은행단이 2억 달러의 신용 공여(Credit Facility)를 제공해서 총 3억 5,000만 달러의 실탄을 마련할 수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금이 만들어지자, 엘리슨은 파라마운트 CEO 브래드 그레이와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파라마운트는 제작비 부담으로 여러 프로젝트의 제작을 주저하고 있었다. 이때 데이비드는 "제작비의 50%를 낼 테니, 지식재산권(IP)의 50%와 전 세계 수익권을 달라"는 파격적인 역제안을 던졌다. 이는 스카이댄스가 단순한 제작사를 넘어 프랜차이즈의 실질적 소유주가 되는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
이때 데이비드는 톰 크루즈를 만난다. 두 사람은 비즈니스 회의실이 아니라 개인 비행장에서 만났다. 13세 때부터 곡예비행을 했던 데이비드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비행광인 톰 크루즈는 비행 역학을 주제로 대화하며 깊은 신뢰를 얻었다. 단순한 팬이 아니라 비행기를 직접 몰고 설계적 지식을 갖춘 데이비드에게 크루즈는 파트너로서의 확신을 가졌고, 이는 훗날 거대한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영화 실패 이후 4여 년간 준비 끝에 2010년 데이비드는 스카이댄스를 설립했다. 하늘과 춤, 곡예비행에 걸맞은 이름이다. 설립 직전 IP를 통제하는 자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잡스의 조언은 스카이댄스의 경영철학이 된다. 영화배우로서 실패했던 그였지만, 스카이댄스의 시작은 작지만 성공적이었다.
첫 작품인 <더 브레이브>(True Grit, 2010)는 코엔형제가 감독한 서부극이었고, 스카이댄스와 파라마운트의 첫 공동제작 프로젝트였다. 이 영화는 비록 수상은 실패했지만, 2011년 아카데미에 무려 10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었다. 재무적으로 성공했다. 약 3,800만 달러가 투입된 작품이 전 세계에서 2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제작비 대비 6배다. 폭삭 망했던 <라파예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실적이다. 그러나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진짜 대박은 두 번째 작품이었다. 바로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이다. 총 제작비 1억 4,500만 달러 중 절반인 약 7,200만 달러를 분담한 스카이댄스는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6억 9,400만 달러를 벌어들이자 막대한 배당 수익을 챙겼다. 단순히 투자 수익뿐만 아니라 시리즈 전체의 제작 주도권을 확보하며 파라마운트 내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런 관계가 나중에 파라마운트 인수를 가능케 한 조건이기도 했다.
영화의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서 데이비드는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TV+ 등 플랫폼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TV 사업부를 강화했다. <잭 라이언>, <리처> 등은 수천억 원대의 라이선스 수익을 창출했다. 특히 2020년 <워킹 데드 VR> 게임은 단일 품목으로 1억 달러(약 1,3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스카이댄스의 영업이익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2019년에는 픽사의 전설 존 라세터(John Lasseter)를 영입했다. 가장 기술 적용이 용이한 애니메이션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때 오라클의 클라우드 기술(OCI)을 파괴적으로 도입했다. 단순히 파일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 시 필요한 물리적 연산을 클라우드 서버에서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가상 스튜디오(Virtual Studio)'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작 단가를 낮추고 퀄리티를 높이는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
물론 라세티는 클라우드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물리적인 서버를 살 필요가 없다. 오라클의 무한한 연산 능력을 클라우드로 끌어다 쓰면 전 세계의 애니메이터들이 각자의 집에서 마치 한 방에 있는 것처럼 초고화질 렌더링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며 설득했다. 이 '기술적 우위' 덕분에 스카이댄스 애니메이션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에도 제작 공정의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럭(Luck)> 같은 대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바로 잡스가 강조한 '기술과 리버럴 아츠의 융합'을 실리콘밸리식 인프라로 구현한 실체라고 평가했다.
2022년 개봉한 <탑건: 매버릭>은 데이비드 엘리슨이 추구해 온 '리버럴 아츠와 기술의 융합'이 정점에 달한 결정체였다. 그는 실제 전투기에 IMAX 카메라를 장착하고 배우들이 실제 중력 가속도를 견디는 찰나를 데이터로 기록했다. 이는 잡스가 중시했던 '제품의 완벽함'을 할리우드의 서사 구조에 완벽하게 대입시킨 결과였다.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2조 원의 수익을 올렸다. 엘리슨은 스카이댄스를 할리우드의 강한 제작사로 만들었다. 그 어떤 제작사도 하지 못했던 기술 제작사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했다. 이제 그다음이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때마침 파라마운트는 경영 위기 상황이었다. 오랫동안 파라마운트와 공동 제작을 해 왔던 엘리슨은 파라마운트에 손을 내밀었다. 그에게 파라마운트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럼 그 꿈은 무엇일까? 스카이댄스는 왜 파라마운트 글로벌을 인수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리고 곧 이어서 WBD를 인수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음은 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To Be Continued
엘리슨과 스카이댄스의 무모한 미디어 도전기
1) 새로운 미디어 시장을 꿈꾸는 데이비디 엘리슨
2) 그는 왜 빚더미 속 설산을 품었나?
핑계김에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갑자기 페북이 브런치 글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것저것 만져 보았더니,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꼬였습니다. 당분간 혹은 어쩌면 앞으로 브런치 글을 페북에 공유하는 건 힘들지 싶어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브런치 구독자라면 굳이 뉴스레터를 신청하실 필요는 없어요. 브런치에 먼저 공개되고, 다시 뉴스레터로 만들 생각이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구경은 한번 오시는 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