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빚더미 속 설산을 품었나?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의 WBD 인수가 가져올 시장 변화 (2)


할리우드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의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구름에 둘러싸인 거대한 설산과 그 주위를 에두른 별들이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로고는 영화의 대명사였고, 상징이었다. 이 전설적인 로고는 1914년, '할리우드를 발명한 사람'이라 불리는 윌리엄 워즈워스 호드킨슨(W.W. Hodkinson)의 손에서 탄생했다. 당시 그는 파라마운트의 창립자 아돌프 주커(Adolph Zukor, 1873~1976)와의 미팅 중 종이 냅킨 위에 펜으로 슥슥 설산을 그렸는데, 이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유타주의 벤 로몬드(Ben Lomond) 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로고를 감싸고 있는 별들은 당시 파라마운트와 전속 계약을 맺은 24명의 스타를 상징하며 '24개'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22개로 조정되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냅킨 위의 낙서로 시작된 이 그림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이 될 줄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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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의 시대: 할리우드의 건국과 '냉혹한 전략가'의 등장 (1912년 ~ 1920년대)

당시 할리우드는 각기 다른 컬러를 가진 다섯 제국이 분점하고 있었다. MGM이 "하늘의 별보다 많은 스타"를 내세우며 화려한 귀족주의를 지향했고, 워너 브라더스가 발성 영화라는 기술 혁신과 사회 비판적인 거친 영화들로 노동계급을 공략했다면, 20세기 폭스는 뉴스 영화(Movietone News)와 기술적 안정성으로 승부했다. (지금은 사라진 대한뉴스의 효시가 폭스의 뉴스릴(Newsreel)이었다.) 막내 격인 RKO는 록펠러 자본이 투입된 당시로서는 테크 중심의 스튜디오였다. 스톱모션의 <킹콩>이나 최종편집권까지 넘겨주었던 <시민케인>이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어찌 되었던 그때의 스튜디오는 제작 중심이었다. 파라마운트의 아돌프 주커는 이들과는 다른 게임을 설계했다. 주커는 제작, 배급, 상영을 묶는 수직계열화를 최초로 완성했다.


수직계열화는 무서운 무기였다. 주커는 전국 1,200여 개의 최고급 극장을 매입하여, 파라마운트 영화가 아니면 아예 상영조치 못 하게 했다. 냉혹한 전략가란 호칭이 붙을 정도로 자기중심적이었다. 다른 스튜디오도 결국 이 모델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시스템도 주커의 무기였다. 그는 관객들이 영화 제목보다 배우의 얼굴을 먼저 기억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유명한 배우를 유명한 작품에(Famous Players in Famous Plays)"라는 슬로건은 배우를 하나의 '자산'으로 관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MGM의 스타관리 시스템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1905~1990)나 조안 크로포드(Joan Crawford, ? ~ 1977)와 같은 소속 배우의 스타일을 관리했고, 이를 영상화하는데 그쳤다.


반면에 파라마운트는 스타를 독점 계약으로 묶고, 유통의 무기화했다. 그래서 튀어나온 판매전략이 '블록 부킹(Block Booking)'이었다. 스타가 출연하는 대작 한 편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수십 편의 B급 영화를 통째로 묶어 파는 방식이었다. 극장주들 입장에서는 파라마운트의 스타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끼워 팔기'를 수용해야 했다. 이 전략을 통해 파라마운트는 제작비 회수가 불확실한 모든 영화의 수익을 미리 확보하는, 소위 '리스크 제로'의 비즈니스 구조를 구축했다. 영화의 흥행 불확실성을 '스타의 팬덤'이라는 예측 가능한 수치로 치환하는 혁명적인 마케팅 공식을 마련한 셈이다.


이러한 사업적 수완은 곧 거대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세실 B. 데밀 감독의 무성영화 대작 <십계>(1923)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되었음에도 블록 부킹과 스타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적인 수익을 냈고, 파라마운트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또한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작인 <날개>(1927)와 루돌프 발렌티노를 일약 섹시 아이콘으로 만든 <셰이크>(1921) 등, 당시 파라마운트는 이 시대의 넷플릭스였다.


생존의 시대: 대공황의 파도와 독점의 굴레 (1930년대 ~ 1940년대)

영원할 것 같던 제국에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30년대 초반 대공황이었다. 모든 영화사가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그러나 파라마운트의 고통은 유독 처참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구축했던 '세계 최대의 극장 체인' 때문이었다. 영화 제작만 하던 다른 스튜디오와 달리, 파라마운트는 전국 1,200여 개의 극장을 소유하며 막대한 부동산 대출금을 안고 있었다. 관객들이 빵 살 돈이 없어서 극장을 외면하자, 수익은커녕 대출 이자가 늘어났다. 결국 1933년, 파라마운트는 메이저 스튜디오 중 최초로 파산 보호 신청을 하며 법정 관리에 들어가는 치욕을 겪었다.


그러나 다시 파라마운트를 이끈 것도 수직계열화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매이 웨스트(Mae West, 1893~1980)와 마르크스 형제(The Marx Brothers)의 활약으로 스튜디오는 기적으로 기사회생했다. 특히 그녀의 연극 <다이아몬드 릴>을 영화화한 <She Done Him Wrong>(1933)은 단돈 20만 달러로 제작되어 22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파산 직전의 회사를 구했다. 당시 할리우드에는 "파산 법정에 선 파라마운트를 본 판사가 '매이 웨스트의 새 영화가 상영 중이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며 선고를 유예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회자될 정도였다. 출처조차도 불분명한 이야기지만 그런 말이 돌 정도로 그녀의 흥행력은 파라마운트에게 절대적인 생명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XYOlrhiSkY


과하면 넘친다. 블록부킹이 문제가 되었다. 파라마운트는 좋은 영화를 자신들이 소유한 극장에만 먼저 배정하고, 독립 극장주들에게는 터무니없는 대여료와 함께 '블록 부킹'을 강요했다. 극장주들이 폭발했다. 독립 극장주 연합은 1938년부터 미 법무부에 진정서를 넣기 시작했고, 정부는 이를 '독점 금지법' 위반으로 간주해 긴 싸움을 시작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소송 끝에 1948년 미 대법원은 역사적인 '파라마운트 판결'을 내린다. 제작부터 상영까지 독식하는 구조가 시장의 자유 경쟁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다는 판결이었다. 이 선고로 매일같이 현금이 쏟아지던 극장을 정리해야 했다. 불확실성이 큰 영화 제작의 안전판이 사라진 것이다. 안전판이 사라진 상황이 좋지 못했다.


기술과 자본의 시대: TV의 습격과 기업화 (1950년대 ~ 1960년대)

1950년대 할리우드 앞에는 '텔레비전'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거실에 앉아 작은 상자로 영상을 보는 시대가 오자 극장 관객은 반 토막이 났다. 파라마운트는 이에 맞서 1954년, '비스타비전(VistaVision)'이라는 기술적 승부수를 던졌다. 35mm 필름을 가로로 돌려 촬영해 일반 영화보다 프레임 크기를 2배 이상 키운 이 기술은 "TV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압도적 해상도"를 약속했다


그러나 비스타비전은 고비용이다. 촬영 시 필름 소모량이 일반 영화의 두 배에 달했고, 무엇보다 극장주들이 이 영화를 제대로 상영하기 위해선 값비싼 전용 영사 장비를 새로 갖춰야 했다. 반면 경쟁사였던 20세기 폭스의 '시네마스코프'는 특수 렌즈 하나만 기존 영사기에 끼우면 상영이 가능해 훨씬 경제적이었다. 결국 비스타비전은 화질 면에서 압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들의 채택 비용 문턱을 넘지 못해 표준의 자리를 시네마스코프에 내주고 말았다. (최근 들어 다시 비스타 비전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One Battle After Another(2005)에서도 이 기술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계>(1956)나 <현기증>(1958) 같은 대작들이 이 비스타비전을 통해 관객의 눈을 다시 극장으로 돌려놓으며 파라마운트의 기술적 자부심을 증명했다.


하지만 기술이 흥행과 수익을 책임져 주진 않는다. 제작비는 치솟고 흥행은 불확실해지자 파라마운트는 또다시 재무적 위기에 직면했다. 1960년대 초반, 파라마운트의 주가는 바닥을 쳤고 스튜디오는 낡고 고루한 노인들의 집합소처럼 변해 있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매드 오스트리안(Mad Austrian)'이라 불린 찰스 블루돈(Charles Bluhdorn)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로 자수성가한 그는 걸프+웨스턴(Gulf+Western)이라는 거대 복합기업을 이끄는 M&A의 귀재였다.


http://www.naturegeezer.com/2016/12/charles-bluhdorn-mad-austrian-his-death.html

언제나 그렇지만 영화인들은 사업가를 싫어한다. 영화인들은 그를 '기름쟁이'나 '자동차 범퍼 장수'라 비하했었다. 그러나 블루돈은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부지의 부동산 가치와 라이브러리의 잠재력을 보았다. 당시 파라마운트의 시가총액은 그들이 가진 땅값보다도 낮았다. 블루돈은 이를 "1달러짜리 지폐를 50센트에 파는 격"이라며 거침없이 인수 합병을 밀어붙여 1966년 당시 약 1억 2,500만 달러에 파라마운트를 인수했다.


1966년 인수가 완료되자 블루돈은 급진적으로 파라마운트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제작 경험이 전무한 36세의 배우 출신 젊은이 로버트 에반스(Robert Evans)를 제작 총괄로 발탁했다. 특히 블루돈이 파라마운트의 미래를 위해 단행한 최고의 결정은 1967년 7월, 당시 최대의 독립 TV 제작사였던 '데실루 프로덕션(Desilu Productions)'을 인수한 것이었다. 이 거래로 파라마운트는 과거 RKO 스튜디오가 쓰던 거대한 부지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제작 중이던 <스타트렉>과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전설적인 IP를 통째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뉴 할리우드의 부활과 거대 미디어 전쟁 (1970년대~1990년대)

결과가 좋으면 좋은 선택이다. 에반스의 사업적 감각에 베팅한 결과는 좋았다. 로버트 에반스 체제 하에서 파라마운트는 흥행 영화를 넘어서 영화가 브랜드가 되었다. 영화사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 <대부>(1972)와 누아르의 걸작 <차이나타운>(1974)이 있었다. 이 작품주의 영화들은 파라마운트의 영광을 다시 가져왔다. 이후 <탑건>(1986), <포레스트 검프>(1994), <타이타닉>(1997) 등으로 이어지며 파라마운트는 상업적 정점에 선다.


그러나 영화 산업의 특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잘 나가서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1980년대 후반, 모기업 걸프+웨스턴의 회장 마틴 데이비스(Martin S. Davis, 1927–1999)는 석유, 자동차 부품 등 비핵심 사업을 다 팔아치우고 회사 이름을 '파라마운트 커뮤니케이션즈'로 바꿨다. 핵심사업이 비핵심사업이 되고, 비핵심사업이 핵심 사업이 되었던 탓이고, 파라마운트의 전성기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영화전문기업이 되자, 복합기업일 때와는 달리 회사의 가치가 너무도 분명해졌다. 당시 미디어 시장은 캐이블 등 새로운 창구가 열리면서 콘텐츠가 왕이 되어가던 시대였다. 그들에게 파라마운트는 너무도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0%B0%EB%A6%AC_%EB%94%9C%EB%9F%AC

1993년, 전설적인 경영자 배리 딜러(Barry Diller, 1942 ~)가 이끄는 QVC가 파라마운트에 적대적 인수를 제안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 파라마운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배리딜러다. 그 뒤 폭스를 거쳐서 QVC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만큼 파라마운트를 속속들이 알만한 사람도 드물었다. 그런 그가 파라마운트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맞서 바이아컴(Viacom)의 섬너 레드스톤(Sumner Redstone, 1923~2020)이 참전하면서 판이 커졌다. 파라마운트 경영진들은 안 팔겠다고 버텼지만, 인수전이 가열되면서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입찰 가격이 높아졌다. 파라마운트의 주주들이 흔들렸고 결국 매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섬너 레드스톤은 1994년, 무려 1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했다. 팔고 싶지 않은 회사가 팔린 것이다. 하지만 이 딜이 오늘날 파라마운트가 불행해진 씨앗이었다. '승자의 저주'는 가혹했다. 레드스톤은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을 부채로 조달했고, 파라마운트는 가장 돈을 잘 벌던 시기에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디지털의 심연: 분열과 재결합, 그리고 스카이댄스 (2000년대 ~ 현재)

2006년, 레드스톤은 또 한 번의 패착을 둔다. 그는 바이아컴과 CBS를 분리했다. 당시로서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넷플릭스가 가져올 규모 전(戰)을 스스로 붕괴시킨 꼴이었다. 뒤늦게 2019년 두 회사를 다시 합쳤을 때는 이미 넷플릭스가 시장을 장악하고, 디즈니가 허덕이며 쫓아가는 상황이었다. 합병 기업 '파라마운트 글로벌'은 150억 달러가 넘는 순부채를 안고 있으면서 주력사업이었던 케이블 TV 광고 수익은 감소하고 있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파라마운트는 힘겹게 2019년 1월에 '플루토 TV(Pluto TV)'를 인수하고, 2021년 3월에 '파라마운트 플러스(Paramount+)'를 론칭했다. 특히 플루토 TV는 유료 구독 모델이 한계에 부딪힐 것을 예견하고 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시장을 선점한 영리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신용등급이 '정크' 수준으로 떨어진 파라마운트는 자생적으로 이 플랫폼들을 키울 힘이 없었다.


누구라도 사 주었으면 싶었던 이때 스카이댄스의 데이비드 엘리슨이 등장한다.


가치의 역설: 왜 파라마운트의 가격표는 기대보다 낮았는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워너 브라더스가 디스커버리와 합병할 때의 가치가 160조 원이 넘었고,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할 때도 우리 돈 80조 원을 지급해야 했는데, 데이비드 엘리슨은 고작 11조 원 남짓으로 파라마운트를 인수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20조 원 정도의 부채가 포함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분명 100년 역사의 스튜디오치고는 너무 저렴하다.


시장은 파라마운트의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파라마운트의 수익 구조는 영화보다는 채널 산업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었다. 이 채널 산업이 코드 커팅 등으로 가치가 수직낙하하는 중이었다. 오늘이 가장 비싼 가격이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인 셈이다. 파라마운트가 가지고 있는 IP 역시 빅 S급은 아니라는 것도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파라마운트는 분명 <스타트렉>, <미션 임파서블>, <스펀지밥> 같은 훌륭한 IP를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디즈니의 '마블'이나 워너의 'DC', '해리포터'처럼 수십 년간 매년 수조 원의 수익을 확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S급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았다. <미션 임파서블>은 톰 크루즈라는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스타트렉>은 팬덤은 견고하지만 폭발적인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즉, 포트폴리오는 매력적이지만 '규모의 전쟁'을 할 정도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파라마운트 플러스는 경쟁에서 치고 올라갈 힘이 부족해 보이고, 플루토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띄고 있을 뿐이다. 성장세가 높다곤 하지만,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이었다. FAST 열풍을 이야기하지만, 찬찬히 셈을 해 보면 나쁘지 않은 정도지, 그렇다고 알파를 쳐 주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더더욱 파라마운트의 손에 있다면 더더욱.


그러나 데이비드는 이 파라마운트를 사고 싶어 했다. 업계에서는 구애라고 표현할 정도다. 냉정하게 거절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구애를 던지는, 스토킹 아닐까 의심을 받을 정도의 구애였다. 앞서 살펴본 대로 앨리슨은 지난 15여 년간 파라마운트와 공동제작을 하면서 이 기업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엘리슨은 <탑건: 매버릭>을 함께 만들며 이 스튜디오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024년 한 해 동안 엘리슨은 샤리 레드스톤(Shari Redstone)과 수차례의 결렬과 재개를 반복했다. 소니 픽처스 같은 거대 경쟁자들이 훨씬 높은 현금을 제시하며 엘리슨을 위협했을 때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엘리슨의 영리함이 드러난다. 자본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는 우회 전략을 생각해 낸다. 파라마운트 글로벌을 직접 인수하는 대신에, 지배구조 꼭대기에 있는 샤리 레드스톤의 개인 지주회사 내셔널 어뮤즈먼트(NAI)를 먼저 인수하는 것이었다. NAI는 파라마운트 글로벌의 전체 주식 지분율은 낮았지만, 의결권이 있는 '클래스 A' 주식의 약 77%를 가지고 있었다. 엘리슨은 이 '의결권의 비대칭성'을 공략해 단 한 번의 거래로 제국의 '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소액 주주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엘리슨은 합병 법인에 현금을 수혈하는 보완책을 제시하며 결국 협상을 성사시켰다.


파라마운트에 관심을 가졌던 소니와 사모펀드들은 쓸 수 없는 카드였다. CBS는 외국계 지분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소니는 인수하자마자 매각해야 했다. 사모펀드도 인수하자마자 스튜디오만 챙기고 채널사업은 해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샤리 레드스톤은 파라마운트를 쪼개서 팔 생각이 없었고, 무조건 통째로 넘길 생각이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데이비드가 소니와 사모펀드보다는 유리했다.


엘리슨이 파라마운트를 통해 본 미디어 사업

데이비드 엘리슨은 인수를 확정 지은 후 1) 조직을 통폐합하고, 2) 비용을 재구성했다. 엘리슨은 주주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한에서 연간 20억 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을 약속했다. 이는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과는 별개로 100년 된 레거시 공룡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겠다는 것이었다.


과거 파라마운트 글로벌은 일종의 레이블 회사였다. CBS, MTV, 니켈로디언, 파라마운트 픽처스 등 모두 각기 다른 회사였다. 엘리슨은 백오피스를 통합했다. 각 채널마다 따로 존재하던 마케팅, 인사(HR), 법무, 재무 부서를 하나의 공통 지원 센터로 통합했다. 이를 통해 연간 약 20억 달러(약 2.8조 원) 규모의 운영 비용을 절감하며, 의결 결정 속도를 실리콘밸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백오피스만 통합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CBS 광고팀과 MTV 광고팀이 따로 광고주를 만났다. 독립된 사업체였으니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뉴 파라마운트'라는 단일 창구에서 지상파, 케이블, OTT(Paramount+), FAST(Pluto TV)의 광고를 모두 판매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통합 패키지 광고가 가능해진 것이다. 광고주에게 더 정교한 타기팅 데이터를 제공하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 인프라도 통합 수준을 밟는다. 제각각이던 각 서비스의 서버와 데이터 센터를 오라클 클라우드로 통합한다. AI를 활용해 가입자의 이탈을 예측하고, 추천 알고리즘을 단일화하여 Paramount+의 사용자 경험을 넷플릭스 수준으로 표준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제작 쪽도 큰 틀에서 IP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과거에는 영화 부서가 <스타트렉> 영화를 만들고, TV 부서가 <스타트렉> 드라마를 만들었다. 이때 서로 간섭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협력을 하지도 않았다. 뉴 파라마운트는 이를 '프랜차이즈 중심 구조'로 완전히 바꿀 계획이다. 프랜차이즈 매니저를 도입해서 특정 IP(예: 탑건, 미션 임파서블, 옐로우스톤) 전체를 총괄하는 전담 리더를 임명한다. 이 리더는 영화 극장 개봉, OTT 드라마 제작, 애니메이션 확장, 게임 라이선싱을 한 호흡으로 기획한다.


스카이댄스가 보유한 AAA급 게임 제작 역량(스카이댄스 인터랙티브)과 고품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파라마운트의 영화 IP와 즉각 결합한다. 영화 시나리오 단계부터 게임 스토리를 함께 기획하여 팬들에게 끊김 없는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고 수익원을 다각화한다.


어김없이 데이터가 등장한다. 단순히 제작자의 감에 의존해 영화 제작(Greenlight)을 결정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서 오라클의 AI 분석을 통해 특정 IP가 글로벌 시장에서 가질 잠재력, 타 플랫폼 라이선싱 시의 예상 수익 등을 시뮬레이션하여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인수가 마무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현재, 이러한 파격적인 재구조화의 실질적인 흥행 성적가 나오지는 않았다. 엘리슨의 이 거대한 도박이 약속한 '질적 도약'을 증명해 낼지, 전 세계 미디어 시장은 산꼭대기의 새로운 주인이 내놓을 첫 번째 결과물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엘리슨은 파라마운트를 테크 플랫폼으로 정의했다. 뉴 파라마운트는 "할리우드의 창의성을 실리콘밸리의 운영 엔진으로 돌리는 회사"다. 밀은 그럴듯하다. 가장 매력적인 단어의 결합이다. 창의성과 실리콘 밸리의 결합이라니,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조합이 있을까?


말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100년 전 냅킨 위의 낙서로 시작된 파라마운트의 전설은, 이제 실리콘밸리의 기술력을 탑재하고 클라우드 위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채 파라마운트의 인수 확정과 PMI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엘리슨은 보다 큰 도박을 시도했다. 바로 WBD의 인수다. 이건 다음 이야기에서


To Be Continued



엘리슨과 스카이댄스의 무모한 미디어 도전기
1) 새로운 미디어 시장을 꿈꾸는 데이비디 엘리슨
2) 그는 왜 빚더미 속 설산을 품었나?


핑계김에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갑자기 페북이 브런치 글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것저것 만져 보았더니,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꼬였습니다. 당분간 혹은 어쩌면 앞으로 브런치 글을 페북에 공유하는 건 힘들지 싶어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브런치 구독자라면 굳이 뉴스레터를 신청하실 필요는 없어요. 브런치에 먼저 공개되고, 다시 뉴스레터로 만들 생각이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구경은 한번 오시는 건 어때요?

image.png https://talksonmedia.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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