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모바일 동영상人 들에게
*<미디어오늘>에서 주최한 <저널리즘의 미래 2016: 스토리텔링의 진화>에 초대받아 발표한 내용입니다. <미디어 오늘>은 발표 내용을 <우리에게 하우스오브카드는 없지만 잠뜰이 있다>로 정리를 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말하는 이가 생각했던 지점과 듣는 이가 받아들였던 지점의 차이도 한번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오늘은 거창한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모바일 동영상>을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고백을 하러 나왔습니다.
지난 1~2년간 모바일 동영상으로 상징되는 MCN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혹자는 MCN 전도사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셨고, 혹자는 돈도 안 되는 시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주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왜 제가 모바일 동영상 시장에 의미를 부여했는지 제 생각을 모바일 동영상 시장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먼저 이 땅의 모바일 동영상 시장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넷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 방송시장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넷플릭스(Netflix)와 유튜브(YouTube)로 상징되는 새로운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넷플릭스는 기존 유료 방송 시장을 파괴적으로 혁신했고, 유튜브는 동영상 시장의 문법 자체를 파괴했습니다.
파괴적 혁신으로 밀려드는 상황에 컴캐스트(Comcast)와 타임워너케이블(Time Warner Cable)과 같은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이 대응을 해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공격적으로 때론 방어적으로 응대했습니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존의 연대를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어느새 우리는 기존 방송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콘텐츠들을 오리지널(Original)이란 이름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스, 아마존 오리지널스, 훌루 오리지널스, 유튜브 오리지널스 등등.
플랫폼 시장에서 시작된 혁신이 콘텐츠 영역으로 이전되고 있는 것이죠. 이 즈음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우리는요?
인터넷 강국. 우리도 인터넷 초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홈페이지를 구축하자 말자 KBS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방송을 했고, VOD도 제공했습니다. KBS의 정체성 논쟁이 붙으면서 결국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변경되는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번 꺾인 거죠.
그런 뒤에 OTT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Tving이 문을 열었습니다. 지상파가 연합한 pooq이 등장했고, 에브리원 TV도 등장했습니다. 가장 넷플릭스와 유사한 형태의 사업인 Hoppin도 등장했죠. 어떤 서비스는 살아남았고, 어떤 서비스를 소멸했습니다.
가장 서비스의 완성도가 높았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호핀은 소멸한 사업입니다. 플랫폼 영역에서 파괴적 혁신이 시도되었으나 결과를 맺지 못했고,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기존 미디어를 시청하는 연령은 높아지기만 했습니다.
10대와 20대의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그들을 품어야 하지만 품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런 거야>는 그리 나쁘지 않은 시청률이었지만, 최악의 광고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팔 수 있는 광고 분량의 20% 정도만을 팔았다고 합니다.
2015년도에 있었던 <KBS 공사 창립 콘서트>는 이미자와 장사익을 내세웠습니다. 시청률 20.1% 기록했으니 꽤 성공적인 기획인 거죠. 그런데 시청자를 분석해 보면 시청한 이들의 80%가 50대 이상입니다. 광고 수익이 하락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거죠.
10대와 20대를 잃어버린 미디어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지표가 시청률인 상황에서 10대와 20대를 겨냥한 콘텐츠로 재무장할 여력이 지상파 방송사업자에겐 없습니다. tvn 등이 조금 나은 상황이긴 합니다만 그 역시도 10대와 20대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죠.
이 상황에서 분전하고 있는 사업자가 바로 모바일 동영상 사업자랍니다. 피키캐스트는 사회성이 좋은 여고생을, 메이크어스는 23세 여성을, 샌드박스 네트워크는 9~12세 어린이를 품었습니다. <오구실>이나 <연예인 중고거래 체험기>와 같은 콘텐츠들도 등장했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에 최적화시켜야 하고, 척박한 수익 구조속에서도 생존하고 지속하기 위해서 비용 구조가 확보되었고, 고객을 파악하려는 능력도 기존의 방송사업자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합니다. 이 모든 것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역설적으로 기존 방송사업자의 플랫폼 역량이나 비용구조나 Data 활용능력이 탁월합니다. 가히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플랫폼 혁신이 콘텐츠 혁신으로 이어지는 그림과는 달리 콘텐츠 영역에서 혁신이 시작되고, 그 혁신이 플랫폼 등 전체 방송시장으로 확산되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이 험한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도 큽니다.
2006년 아프리카 TV가 이 시장에 진입한 이후 BJ(Broadcasting Jockey)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VJ와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스스로 방송 자키라는 용어를 사용한 셈입니다. 개인방송이란 호칭은 그렇게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늘어난 숫자만큼이나 일탈은 늘었습니다. '개인방송'으로 간단히 구글링을 해 보면 제법 요상한 사진들과 자태들이 드러납니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이나 핀터레스트(Pinterest)를 사용해보면 더더욱 그렇구요.
2007년 말부터 슬금슬금 이 시장의 '경박함'과 '저질스러움'을 논하는 글들이 늘어났습니다. 특히 별풍선이라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탁월한 BM 구조가 일탈을 조장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KBS 뉴스 시간에도 언급될 정도였으니까요? 규제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가 종종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BJ는 경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국내 최상급 대표 크리에이터를 대상으로 온갖 욕설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한쪽의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모바일 동영상 사업자의 포맷을 지상파 방송 등이 허락 없이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욕의 반만큼이라도 먹고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10만 view를 기록해도 겨우 3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는 것이 이 시장입니다. 그러니 별풍선에 목을 매달았겠죠. 이 수익 구조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하고, 버티려고 하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시장입니다. 이런 시장에 <모바일 동영상 사업자>들을 밀어 넣는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한 것 같아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부탁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힘들지만 조금만 버텨 주셨으면 합니다.
과도한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방송시장의 혁신의 맹아가 모바일 동영상 콘텐츠 일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좀 더 시장에서 버텨 살아남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보다 2016년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건 잘 압니다만, 다행히 시장 상황이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TV의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이 모두 상승했습니다. 절대 금액으로 보면 얼마 안 되는 금액처럼 보이지만, 성장률로 보면 30% 가까이 상승한 셈입니다.
더구나 국가인 직업분류체계에 정식으로 크리에이터와 모바일 동영상 사업자가 등록되었습니다. 한해에도 수많은 직업들이 등장했다 소멸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인증해 줄 수 있는 직업으로 성장한 셈이죠. SBS가 모비딕이란 이름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제 방송 3사가 모두 뛰어든 셈이죠. 그들로서도 이 시장이 바라보고만 있을 시장이 아니라고 판단한 셈입니다.
여러분들이 고생해서 일군 이 시장이 소멸되는 시장이거나 한때의 바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겠지만 시장의 파이는 더 커지겠죠.
때맞추어 중국에서도 왕홍 경제가 들썩거립니다. 수십조의 시장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누군가는 왕홍 경제가 커져서 한국 사업자가 진입할 기회가 없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없고, 있는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요소(risk)는 줄어들었다는 셈이죠.
시장이 활발하게 확장되는 만큼, 한국의 능력 있는 사업자가 진입해서 일정한 파이를 차지할 가능성은 더 커졌습니다.
박한 시장에 인심이 납니다. 힘이 드니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우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갑니다. 그걸 시장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역동성이라고 하죠.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길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이죠.
연대의 기회도 생겼습니다. 길을 뚫기가 힘들지, 일단 길이 만들어지면 항상 길은 일상이 됩니다. 다이아 TV의 크리에이터와 비디오 빌리지의 크리에이터가 손을 잡고 억셉호란 채널을 열었습니다. SM의 가수와 YG 가수의 콜레보레이션인 셈이죠. 그 의미를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모바일에 갇혀 있던 콘텐츠가 상위 플랫폼으로 이동했습니다. 100만 가입자를 가진 대표 크리에이터인 도티는 <애니맥스> 채널에 콘텐츠를 제공했고, 캐리 소프트는 오프라인 뮤지컬은 물론이고 EBS와 손을 잡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불안해 보였던 커머스 시장도 홈쇼핑 사업자의 손을 잡고 조금은 안정화될 듯싶습니다. 전 크리에이터 중심의 커머스 시장은 뉴스 시장의 블로거와 흡사하다고 합니다. 한때 파워 블로거들이 수억의 수익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죠. 새로운 뉴스 시장을 개척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파워 블로거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상품 리뷰 등을 통해 커머스 시장에 간접 진출했었죠. 그런데 그 결말이 생각처럼 좋지 않았습니다.
이용자들은 블로거들이 자신들을 속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성을 의미하기 시작한 것이죠. 크리에이터가 나서는 커머스 시장도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홈쇼핑 사업자가 크리에이터를 활용해서 커머스를 직접 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에이터=커머스란 공식이 만들어지게 되면 크리에이터가 특정 상품을 소개하더라도 거부감이 덜어집니다. 그러니 블로거 시장처럼 한 번에 붕괴될 가능성은 낮아지는 것이죠.
물론 콘텐츠의 성격과 크리에이터의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다양한 스펙트럼이 형성될 것이긴 하지만, 최소한 허들 하나는 넘어선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오리지널 콘텐츠 시대가 열립니다.
미국에서만 일어날 것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물론 어느 플랫폼이든 이런저런 콘텐츠를 독점 공급하기도 했죠. 네이버도 이른바 네이버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했었구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플랫폼 사업자의 의도에 부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옥수수와 카카오가 손을 잡고 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가 분명합니다. 웹툰 시장에서 유명한 작품의 프리퀄을 만든 <통, 메모리지>는 3일 만에 100만 뷰를 기록했고, 10일 만에 6 백만뷰를 넘어섰습니다. (9월 1일 MCN 시장의 미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말하다에 오셔서 담당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세요)
플랫폼 사업자들이 콘텐츠를 무기화해서 차별화 전략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아마도 옥수수와 카카오는 후속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이에 영향받아 다른 플랫폼 사업자들도 노력을 하겠죠. 모바일 동영상을 만드시는 분들에게는 작지만 숨 한번 쉴 수 있는 공간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힘들지만 조금만 더 부탁드립니다.
이 척박한 미디어 땅에 혁신의 싹을 틔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수익 구조가 척박해서 먹고사는 문제와 여전히 힘겹게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