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PFORMATS에서 영상시장의 변화를 엿보다 #1
"세로 영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뜬금없는 질문이다. Le Brunch란 작은 레스토랑, Cannes, 주적거리는 비, 진한 커피. 이 모든 조건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다. 성지환 대표, 서권석 이사, 김원만 감독과 같이한 점심 시간 자리의 질문이다.
"모바일에 갇혀 있는 문법?"
#1
2015년에 글 하나를 쓴 적이 있다. 페리스코프가 세로영상을 도입했을 때, 모바일 세상이 왔다고 썼다. 가로가 지배하는 영상 시장에서 세로를 주장하는 것은 이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결기고, 의지라고 썼다. 영상 전문가들의 고집을 내려놓고, 일상의 사람들이 모바일을 사용하는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썼다. 나름 승부였고, 도전이었던 셈이다.
개인들은 열광했다. 더이상 전문가들이 정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았다. 여러 플랫폼들이 세로 영상을 허용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세로를 볼 수 있다는 것일 뿐 엄밀한 의미에서 세로 영상 전문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냅챗이 미지의 세계에 한 걸음을 내 딛었다. 바로 세로 전문을 선언한 것이다.
2015년 Snapchat은 광고주와 브랜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Snapchat의 주 이용층이 소위 밀레니얼 세대고, 이들은 그들만의 문법대로 문화를 소비했다. 그들에게 가로영상은 번잡스럽기만 했다. 그들은 세로를 사랑했고, 편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상 광고도 세로형이어야 조금 더 이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용자들이 모여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세로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을 위해서 세로 영상을 추가로 제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히 가치있는 일이지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설득'이란 표현은 적절했다.
사실 세로 영상은 쉽지 않다. 여러 플랫폼에서 세로를 차용하긴 했지만, 이내 가로를 허용했다. 국내에서도 네오터치포인트가 내손남 내손녀 시리즈를 선보이면 세로 영상의 가능성을 탐색했지만, 이 실험은 지속되지 못했다. 세로 영상은 전문가들의 시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YouTube 등 대부분의 영상이 가로 기반인 상황, 모바일 시장의 협소함 등은 영상전문가들의 외면을 받았다. 세로 영상을 고집하는 것은 가로 영상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일 터다. 개인들은 세로 영상을 올렸지만, 범용성을 생각하는 전문가들은 가로를 버리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성지환은 "영상제작자에게 세로영상은 VR과마찬가지예요" 라고 답했다.
문법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적합한 스토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로 영상은 단순히 포맷이 아니라 장면 전환 등 모든 문법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세로 영상에 걸맞는 문법이 만들어지 못한 상황에서 세로 영상은 스토리텔링 도구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한적인 의미에서 활용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2015년 세로 영상을 도입한 Snapchat은 세로영상을 외면하지 않았다.
"We're starting to meet with the top creatives at agencies and CMOs, and in terms of education, shooting vertical is in that conversation,"
세로 영상은 단순히 세로가 아니다. Snapchat의 입장에서 세로는 대화였다. 지속적으로 설득을 해 나갔다. 페리스코프가 가로 영상을 허용하면서 세로 온리를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Snapchat은 세로를 고집했다. 그리고 2016년 조금씩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We're excited because in the last 18 months, Snapchat has been a lone wolf in this fight, but we now have the opportunity to really make this the new standard.
Virool CEO인 Alex Debelov의 발언이다. 외로운 늑대로 존재했던 세로영상이 조금씩 시장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곳에서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세로 영상은 문법을 완성해 갔다.
#2
갑자기 떠올랐다 주섬주섬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냈다. 전원을 켜고 MIPFORMATS에서 Eurodata TV의 발표 장표를 뒤졌다. 그리고 성지환에서 보여주었다.
"새로운 세로 영상이 가능할 거 같아요."
장표에 있는 영상은 2017년 2월에 SNL이 Snapchat 전용으로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 <Boycott>다. 트럼프 대통령을 보이코트하는 방법을 코메디화 한 영상이다. Snapchat이 세로영상지향이기 때문에 Boycott도 세로형이다. 그런데 편집이 새롭다. 장면전환을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하고, 비율을 조절해서 리듬을 살렸다. 세로영상을 세로로 찍지 않고 가로로 찍은 뒤 편집한 것처럼 보이는 작업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pJt8Vdkodw&t=61s
사실 Snapchat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표했다는 기사를 2017년 2월에 읽긴 했지만,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모두 오리지널 콘텐츠를 이야기하는 마당이라서 이 트렌드에 Snapchat도 동참했구나 정도의 의미만을 부여했을 뿐이다.
그 사이에 Snapchat의 세로 정책에 부합하는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Jimmy Fallon의 Snapchat 영상도 다양한 방식으로 세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장이 만들어지고 문법이 정교화되고 있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적절한 정보와 기막힌 질문이 합쳐서 세로 영상의 의미를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성지환이 말했다.
"굉장히 힘들 것 같긴 하지만 가로형과 세로형을 모두 고려하여 양쪽 모두로 제작할 수 있는 문법을 완성하고 나면 이 시장 다 먹겠는데요?"
그리곤 김원만 감독을 쳐다봤다.
2017년 4월 1일, Cannes의 점심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