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를 위한 변명
5월 10일. 넷플릭스의 CEO Reed Hastings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올렸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린 <옥자>를 6월 28일 넷플릭스를 통해서 동시 송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날 선 표현을 했다.
"극장 체인들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옥자>가 출품되는 걸 방해했다"
(Theatre chains want to block us from entering into Cannes film festival competiion)
5월 11일. 칸 영화제는 경쟁부문 출품 작품의 자격 요건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경쟁 부분 출품작은 반드시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조건이라면 넷플릭스의 차기 작품이 칸 영화제에 진입할 가능성이 사라진다. 프랑스 극장들은 동시 상영작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Any film that wishes to compete in competition at Cannes will have to commit itself to being distributed in French movie theatres.
진의가 왜곡되었다고 나중에는 진화를 하긴 했지만,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ovar)도 영화관에 상영되지 않는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I personally don’t perceive the Palme d’Or [should be] given to a film that is then not seen on the big screen.
팽팽하다. 넷플릭스는 들어가려고 하고 영화인은 막으려고 한다.
한쪽에서는 보수적인 칸 영화제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불쾌해했다.
CGV 등 국내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은 장고다. 그제는 안 한다고 했다가, 어제는 단정은 아니라고 말하고, 오늘은 절대 불가를 외친다.
대립군이 채 1주 만에 극장 시장에서 밀려나는 상황에서 옥자가 덧씌워지면서 CGV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만만잖다. 극장 우선 원칙을 내세우는 CGV의 논리가 엉성하다고 비난하는 글도 보인다. <옥자>의 시사회도 메가박스나 CGV가 아닌 대한극장에서 열린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하다.
예술은 감성일 수 있지만, 시장에 대한 판단은 이성적이어야 한다.
기업과 기업의 전략적 행위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혹은 갑과 을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경쟁행위'의 범위를 논할 수 있지만, 글로벌 기업인 넷플릭스와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업체인 CGV를 두고 이를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면 조금은 냉정하게 이 현상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16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2017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초대받았다.
<아가씨>는 지역별로 배급사를 선정했는데, 미국 배급사는 Amazon Studio였고,
<Okja>는 Netflix가 단독 배급사였다.
단독과 One of Them이란 차이가 있긴 하다. 이 차이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에도 <아가씨>를 두고 칸 영화제 위원회나 영화 산업자들이 Amazon Studio와 갈등을 일으켰다는 뉴스는 없었다. 반면에 <옥자>에 관한 이야기는 넘쳐난다.
Amazon은 수년 동안 영화 제작과 배급을 해 왔다. 2018년 극장용 라인업만 해도 수십 편이다. 그런데도 Amazon Studio의 영화에 대해서 영화 배급사나 멀티플렉스가 공개적으로 거부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일단 OTT 사업자 중에서 극장 영화를 제작하는 사업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영화 전문 OTT들 조차도 유통만 담당할 뿐이고, 소니 등 일부 제작 사업자들이 자사만의 독립적인 OTT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이 역시도 유통에 목적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독특한 위치다.
Again. 아마존은 수년 전부터 영화 제작을 해 왔다. Wikipedia의 Amazon Studio 자료를 재구성해 보면 2015년부터 제법 꽤 많은 영화들을 제작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아마존은 기존의 유통질서를 준수했다. 극장 상영일과 Prime Video 상영일 (혹은 DVD 출시일)이 상이했다. 이는 기존 영화의 배급 순서를 가급적 유지하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심지어 지분 비율이 높아서 Prime Video로 바로 가져오는 경우에 조차도 극장 상영일과 Prime Video의 출시일 간 차이를 유지했다.
반면에 넷플릭스는 2015년도 인디영화 수준이긴 하지만 Beasts of No Nation를 제작했다. 그때도 유통방식은 극장과 자사 OTT 서비스 동시 상영이었다. 최근에는 극장 체인 중 하나인 iPic와 향후 10편의 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iPic은 독립 영화체인으로 대형 사업자와 법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등 극장계의 매버릭이다. 그러했기에 넷플릭스와 이해관계가 맞았을 수 있다.)
2017년 5월 31일 reCode가 주최하는 Code Conference에서 Reed Hastings는 TV 시장이 파괴되었듯이 영화 시장도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중은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극장에서도,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왜 극장인들이 넷플릭스와 적대적 관계를 숨기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이런 노이즈를 즐기기까지 했다. 여러 논쟁 덕분에 옥자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은 기본적으로 가입자 사업이다. 더 많은 가입자를 모셔오는 것이 그들의 핵심 사업이다. Reed Hastings는 소비자의 선택을 강조하지만, 1만 원을 지불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볼 것인지, 아니면 1만 원을 지불하고 옥자를 비롯해서 한 달 동안 무제한의 콘텐츠를 시청할 것인지를 놓고 소비자의 선택을 강요한다면, 후자의 매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즉 소비자의 선택권을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옥자>를 가입자 확대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 셈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론 손해 볼 게 없다. <옥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 극장에 걸리면 걸리는 대로, 넷플릭스 단독 상영이 되면 상영이 되는대로 이득이다. 극장에 걸린다면 단기간에 비용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에 극장에 걸리지 않더라도 충분한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오리지널 콘텐츠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
최근에 시즌 제작 중지를 선언한 <센스 8>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9백만 달러다. 시즌 2의 경우 11편의 에피소드가 제작되었으니 총제작비가 9천9백만 달러에 이른다. 다른 시리즈물의 경우에도 제작비가 상상을 초월한다. 옥자 한 편의 제작비는 5천만 달러였다. 이렇게만 보면 극장용 영화를 제작하는 것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Reed Hastings은 Code Conference에서 명쾌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TV용 시리즈물은 자신들이 개척한 몰아보기(Binge Viewing)를 통해 시청하는
반면에, 영화는 사람들이 한편을 반복적으로 시청한다
그러니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적당한 노이즈만 받쳐줄 수 있다면, 더구나 Cannes 경쟁부문이란 명성이 있다면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략이 넷플릭스가 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CGV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단순히 한 편의 영화였다면 CGV는 <옥자>를 상영하는 것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초기에 <옥자>의 상영 가능성을 내비친 이유이기도 하다. 430억을 투자해서 만든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9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서 투자 비용을 상회하는 600억 원대의 수익을 거두었다. CGV 입장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갖는 이름값과 전작의 성공을 감안하면, <옥자>를 거부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당기간 상영 여부를 놓고 왔다 갔다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영화 한 편이 아니라 본질적인 극장 산업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더구나 동시상영이란 조건이 붙으면 전망이 복잡해진다.
넷플릭스의 <옥자>를 상영하기로 결정했다고 치자. Cannes에서의 반응 등등을 보면 <설국 열차>만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다. 설국열차만큼 잠재적 관객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넷플릭스 정액제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전체 관객의 수는 감소한다.
반면에 <옥자>를 상영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중량급 영화 하나를 놓친다. 하지만 현 시점에 선택하고 상영할 수 있는 영화가 많다. 만약에라도 동시상영의 극장과 OTT에서 모두 성공하게 되면, 영화제작사업자들의 선택이 달라지고, 영화 플랫폼 사업자로서 극장사업자의 위상이 떨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극장사업자들이 OTT로 전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득과 실을 따져보면 상영거부 결정이 확률적으로 나은 선택이다.
더구나 장기적으로 넷플릭스가 이야기하듯이 영화의 유통구조가 바뀐다고 한다면 CGV는 바뀌는 시장에 맞추어 자신도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전투에서 지더라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고, 혹여 나중에 동시 상영이 보편화되는 시점이 오더라도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만들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CGV는 <옥자>의 상영을 거부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단기적으로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 않을까?
전략적인 선택의 결과가 성패 여부를 현시점에서 예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서로 경쟁하는 사업자가 자신의 시장을 방어하려는 노력 그 자체에 대한 비난은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넷플릭스 <옥자>에 대한 CGV의 판단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을 던져보자.
<옥자>가 CGV 등 멀티플렉스에 상영되면 국내 영화시장이 활성화될까? 아니 넷플릭스 단독 상영이 되면 국내 영화사업에 문제가 생길까?
<옥자>가 극장에 상영되지 않으면 관객의 관람권이 훼손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흔쾌히 yes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CGV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생존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