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게임 뒤의 세상 상상하기
2016년 기준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SVOD 가입 가구의 수가 대략 4천만 정도이고, 글로벌은 약 2억 5천만 가구 수준이니 5년여 만에 엄청난 증가를 기록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원래 시장 전망은 과거의 성장 추세와 현재의 물리적 조건에 대한 고려에서 시작한다. 이 맥락에서 보면 매년 OTT의 증가세가 눈에 띈다는 것을 전망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장기 전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trategy Analytics)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 세계 OTT 및 SVOD 시장의 매출 규모가 503억 달러에 이르고 디지털 동영상 광고 시장도 200억 달러에 이르러 전체 광고 시장의 18%를 차지할 전망이다. OTT는 선택이 아니라 이제 실체인 셈이다.
여기서 분별이 필요하다. 시장과 사업자는 다르다. 전체 시장이 OTT로 전환되고 있다고 해서, OTT 사업자가 해당 시장의 주역이 되었다고 단언해선 안된다. 넷플릭스(Netflix)가 전체 시장이 OTT화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렇다고 향후 모든 미디어가 OTT가 되는 시장에서도 현재의 OTT 사업자가 1위 사업자가 될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넷플릭스의 주가가 아무리 상승하고 있다지만, 컴캐스트(Comcast)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의 시가총액에 비해서는 1/3에 불과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아마존이 월마트를 넘어섰고, 테슬라가 지엠(GM, General Motors)을 넘어선 다른 시장과 미디어 시장은 마주하는 현실이 다르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와 조건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현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다. 북미시장에서만 대략 100여 개의 OTT 서비스가 서로 경쟁을 하고 있고 글로벌 단위에서는 1만 7천여 개의 OTT 서비스가 경쟁하고 있다. 전수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가입자를 확보한 숫자가 이렇다는 이야기일 터다.
더구나 OTT는 경쟁 구역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면전 양상이다. 향후 시장이 OTT로 모두 바뀐다고 전제하면, 지금과는 달리 시장 참여자의 숫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경쟁을 참여하는 사업자의 수로 단순화시키면 당분간 이 시장은 엄청나게 많은 사업자들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OTT 영역 내에서는 넷플릭스의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 심지어 OTT 시장을 넷플릭스와 넷플릭스가 아닌 사업자로 구분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넷플릭스나 아마존 등 일부 사업자의 공세가 치열하고,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지위가 공고하다고 보긴 힘들다.
일단 기존 유료 방송 시장과 달리 OTT 서비스는 해지가 자유롭다. 2년이나 3년 약정과 같은 방식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해지가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해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파크 어쏘시에이트(Parks Associate)의 보고 자료에 따르면 2016년 OTT 서비스의 연간 해지율은 대략 19%다. 2015년 대비 1% 정도 개선 효과가 있긴 했지만, 가입자의 1/5 정도가 매년 이런저런 OTT로 갈아탄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이용자들은 하나의 OTT 서비스가 아니라 두서너 개의 OTT 서비스를 복수로 이용한다. 3개 이상을 이용한다는 이용자도 19%에 달한다. 설사 넷플릭스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이 시작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OTT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별로 없다. 향후 시장 성장은 눈에 보이고, 심지어 실적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전통 TV 시장의 강자들도 슬슬 OTT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거나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21세기 폭스도 OTT를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다. 디스커버리(Discovery)도 USB 글로벌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콘퍼런스에 참석해서 2017년도에는 OTT 서비스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CBS는 이미 자사 OTT인 CBS 올 액세스(CBS All Access)와 쇼타임(Showtime)을 통해서 가입자 시장에 뛰어들었다. CBS 올 액세스는 9.9달러(한화 약 1만 1천 원)의 요금을 제시하며 2016년 말 12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HBO도 이미 독립형 OTT인 HBO 나우(HBO Now)를 제공하고 있다. 버라이존(Verizon)은 고 90(GO90)을 들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야심 차게 시장에 진입했던 사업자들이 시장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캐나다의 OTT 서비스인 쇼미(shomi)가 2016년 11월에 종료했다. 손실액만 캐나다달러
기준으로 1억 600만 달러(한화 약 901억 6천만 원)에 이른다.
플랫폼 사업의 본질은 아주 단순하다.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경쟁이다. 내 가입자를 뺏기지 말아야 하고, 남의 가입자를 모시고 와야 한다. 초기 시장에서는 가격이나 서비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5월 열린 한국 언론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SBS 미디어 비즈니스 김혁 센터장의 발언을 빌리자면, 북미 시장에서는 유료방송서비스 대비 1/10의 가격으로 OTT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했다.
가격 경쟁력이다. 그리고 모바일 등 N-Screen 서비스로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플랫폼 경쟁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넷플릭스가 시도했던 어댑티브 테크(Adaptive Tech)와 같은 기술은 범용 기술이 되었고, 추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 서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가격도 무료 서비스가 등장하고 엇비슷한 가격이 책정되면서 가격으로 만 경쟁을 하는 것도 요원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 내 플랫폼 가입자를 뺏기지 않고, 남의 플랫폼 가입자를 뺏어올 수 있는 경쟁 수단이 필요하다. 무료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 플랫폼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더구나 이제 콘텐츠 사업자들은 주류가 된 OTT 플랫폼에 헐값으로 콘텐츠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 숙제를 풀어야 한다. 높은 해지율을 방어해야 하고, 기술은 범용화 된 상황에서 경쟁사업자들과 차별화된 무엇을 제공해야 한다는 숙제. 이에 대한 플랫폼 사업자들의 답이 바로 오리지널 콘텐츠(Original Contents)다.
넷플릭스가 먼저 시작했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다른 사업자들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이제 시장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자와 그렇지 않은 플랫폼 사업자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OTT 1위 사업자답게 넷플릭스는 물량공세로 다른 사업자를 압도했다. 넷플릭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인 테드 사란도스(Ted Sarandos, CCO)는 2017년에 20편의 무대본 (unscripted)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총 1천 시간 분량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천명했다.
2015년에 450시간 정도 분량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했고, 2016년에는 600시간 분량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한 것에 비해서 2017년에는 총 60억 달러를 오리지널 콘텐츠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더구나 오리지널을 특정 영역에 가두지 않고 여러 영역으로 확장하는 상태다. 얼티메이트 비스트 마스터(Ultimate Beastmaster)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까지 확대했다.
일부 네트워크 망이 원활하지 않은 지역이나 가입자 규모가 많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다운로드 서비스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열린 결말의 양방향 오리지널 콘텐츠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용자가 스토리의 진행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옵션이 있고, 그에 따라서 전혀 다른 스토리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이런 열린 결말 방식은 1980년대에 <당신의 모험을 선택하세요>(Choose your adventure) 등에서 시도한 적도 있고, DVD 시대에 간혹 별도의 부가 서비스로 새로운 결말을 제공하는 것에서 한발 더 진화한 셈이다.
넷플릭스가 치고 나가자 시장이 분주해졌다. HBO도 콘텐츠 예산을 확충했다. 구체적인 금액을 밝히는 대신에 ‘상당한 금액(pretty hefty)’이란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아마존은 NFL과 거액의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2016년도에 트위터가 계약한 금액과 비교해 보면 5배다. 이미 미국 프로축구 중계권을 확보했으며 크리켓도 확보한 상태다.
우디 알렌(Woody Allen) 감독과 신작 영화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몇 년 동안 2천만~4천만 달러 규모 영화 투자와 배급 부문에서 중요한 사업자로 떠오르고 있다. 자사 OTT 서비스인 프라임 비디오(Prime Video)를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제공할 계획도 세웠다.
동영상을 차세대 먹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페이스북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MLB와 실시간 스트리밍 계약을 맺었다. 지난 5월 18일부터 20개의 정규시즌 야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정규경기는 처음이다. ESL과도 손을 잡았다. e스포츠 콘텐츠를 스트리밍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2017년 하반기에는 오리지널 동영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와 같은 장편 드라마는 물론이고, 5~10분 정도의 저예산 스낵 드라마도 포함될 예정이다.
심지어 가상현실 데이트 쇼도 공개할 예정이다. 2017년 4월로 예정된 것이었으나 최근 연기를 했다. 연기의 이유는 모르나, 중요한 건 소셜 미디어였던 페이스북 미디어 사업자로 전환 중이고, 이 와중에 콘텐츠, 오리지널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2월에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해 MTV의 부사장을 역임한 미나 레페브(Mina Lefevre)를 개발 부문 책임자로 영입했다. 복스 미디어(Vox Media) 등과 협력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선언했다.
애플 뮤직도 오리지널 동영상 10여 편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리얼리티 쇼와 토크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오리지널 동영상 확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애플의 강경한 요구와 콘텐츠 사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면서 사실상 중단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10대들의 플랫폼, 스냅챗도 A+E Networks 등과 손을 잡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제휴를 체결하고, 2017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유통하기 시작했다. 5월에는 NBC 등과도 제휴를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에 돌입할 태세다.
이외에도 여러 기업들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동남아 OTT인 아이플릭스(iflix) 는 물론이고, CNN고(CNNgo)와 훌루(Hulu)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였다. 스타벅스 같은 비 미디어 사업자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해서 가입자나 이용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에 결국 레거시 미디어 기업도 동참했다. 컴캐스트도 자사 OTT 서비스에 오리지널 동영상을 유통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플랫폼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콘텐츠가 필요했던 셈이다.
2015년에 워처블(Watchable)이란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했지만, 이들 콘텐츠는 다른 곳에서도 이용 가능한 것들이어서 제공 숫자가 작은 워처블을 이용해야 할 동기가 부족했다. 워처블 익스클루시브(Watchable Exclusives)란 이름으로 리파이너리 29(Refinery29), 미투(mitu), 컷 닷컴(Cut.com)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대상이다.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으나, 오리지널 콘텐츠 제공시점부터 즐거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워처블의 모바일 트래픽은 매월 40% 증가하고 있으며, 이용 시간도 평균 30분을 넘어섰다.
그러나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은 ‘수건 돌리기’ 이거나 치킨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콘텐츠 제작은 비용은 높은 반면 위험도 큰 사업 영역이다. 그런 사업에 플랫폼 사업자가 뛰어들었다. 단순히 규모만을 무기로 제휴 등을 통해 콘텐츠를 수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넷플릭스나 아마존처럼 자체 스튜디오 등을 통하거나 직접 감수 등을 하면서 제작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 위험 사업에 노출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들 콘텐츠가 해당 플랫폼에 독점적인 콘텐츠라는 점이다. 콘텐츠 종류와는 상관없다. 넷플릭스는 그나마 스트리밍 위주로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을 짜고 있는 반면에, 아마존과 페이스북 등은 실시간 방송까지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짠다. 정액제 서비스를 채택하고 있지 않은 그들의 사업 구조상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위험부담은 더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페이스북과 아마존은 광고나 커머스 산업을 위한 부가 산업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나마 수급비용의 조절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넷플릭스는 그렇지 못한 구조다. 장기적으로 분명히 콘텐츠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는 있겠지만, 단기적인 현금 흐름은 어렵다. 2016년도에 이미 오리지널 콘텐츠 수급 때문에 부채 규모가 늘어났고, 최근에는 채권을 발행해서 8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한 것도 이 맥락일 터다.
오범(OVUM)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현재의 지출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서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제작 및 배급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야 하지만, 광고나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즉각적인 수익 확보로 이어지지 않는 탓이다. 단지 가입자 수를 증가를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진퇴양난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구조다. 시장의 구조상 지금 오리지널 콘텐츠를 포기하면 넷플릭스는 현재의 가입자를 유지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 진영을 압도해서 명실상부 1위 사업자로 올라서는 수밖에 없다.
치킨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치킨 게임이 끝난 뒤의 시장은 어떨까?
이 글은 KOCCA의 <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2017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윗 글의 자세한 참고문헌은 붙인 PDF파일을 확인하시길.